잇따른 외자이탈과 환율예측 대실수··투자자와 기업인만 멍들었다

입력 2016-07-04 09:43


과대 해석됐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충격이 일단 진정됐다. 당사국인 영국의 대표 주가는 FTSE 100 지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전 수준보다 더 높아졌다. 국내 금융시장도 빠르게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가장 우려했던 ‘마진 콜(증거금 부족현상)’에 따른 ‘디레버리지(투자자산 회수)’ 현상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영란은행이 유동성 확보에 최우선순위를 둔 선제적인 통화정책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위기극복 전도사’라 불리는 마크 커니 영란은행 총재는 2500억 파운드에 달하는 유동성 공급계획을 밝혔다.

월가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에서는 브렉시트 우려보다 조심스런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 예정돼 있었던 미국 추가 금리인상, 중국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신흥국 지수 편입 등 빅 이벤트가 큰 무리 없이 지나갔다. 브렉시트 여파도 아직까지는 ‘찬잔 속 미풍’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브렉시트가 올해 하반기에 우려됐던 양대 악재를 완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미국 추가 금리인상폭은 올해 안에 한 단계(0.25%p), 경우에 따라서는 인하될 것이라는 시각도 대두되고 있다. ‘이변’의 심각성을 일깨워진 브렉시트 투표 이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

국내 증시에서도 영국계 자금 움직임에 별다른 변화는 없다. 36조원에 달하는 영국계 자금의 이탈로 코스피 지수가 1800선 밑으로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이 1500원으로 치솟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대조적’이다. 중국의 MSCI 신흥국 편입점검 때도 외자이탈이 10조원이 넘고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연이은 외자이탈과 환율예측 대실수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 간 자금흐름은 대부분 캐리 트레이드다. 캐리 트레이드는 증권브로커가 차입한 자금으로 주식과 같은 유가증권의 투자를 늘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 투자한 유가증권의 수익률이 차입금리보다 높을 경우 ‘포지티브 캐리’, 반대의 경우를 ‘네거티브 캐리’라 부른다. 차입한 통화에 따라 엔 캐리 트레이드와 달러 캐리 트레이드로 구별된다.

이론적 근거는 환율을 감안한 국제간 ‘자금이동설(m=rd-(re+e), m: 자금유입규모, rd: 투자대상국 수익률, re: 차입국 금리, e: 환율변동분)’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투자대상국이 수익률이 환율을 감안한 차입국 금리보다 높으면 차입국 통화로 표시된 자금을 차입해 투자대상국의 유가증권에 투자하게 된다. 금리차익과 환차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캐리 트레이드는 반드시 레버리지(증거금 대비 총투자 가능금액 비율) 투자와 결부된다는 점이다. 어떤 국가에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유입될 때마다 레버리지 투자로 자금이 증폭돼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자산거품이 쉽게 발생하고 투자대상국의 경제를 어렵게 한다.

반대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이탈되면 디레버리지 현상까지 겹쳐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신용경색(credit crunch)이 일어나고 투자대상국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를 불안하게 한다.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움(국가채무 불이행),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는 1998년 이후부터 엔-케리 트레이드 자금이 많이 유입됐다. 당시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와 선진국간의 달러가치 부양을 위한 역(逆)플라자 합의 이후 ‘제로’ 수준에 가까운 일본 금리와 엔화 약세를 배경으로 국내기업들이 엔화 자금을 많이 활용했다. 지금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국내기업들의 엔화 차입자금이 상당한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증시도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많이 유입돼 주가가 크게 올랐다.

2001년 이후에는 국내증시를 중심으로 달러-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많이 들어왔다. 미국의 금리인하를 계기로 달러화 가치가 약세를 보임에 따라 달러화 자금의 차입금리가 국내투자 수익률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시대가 지속됐다. 정도 차가 있지만 2009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에도 동일한 현상이 반복됐다.

올해 하반기 이후 자금원천별 국내 증시에 외국인 자금의 유출입 여건을 예상해 보면 상반기보다 개선(유입)될 소지가 많다. 달러계 자금은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폭이 낮아지면 포지티브 캐리 트레이드 여건이 더 충족된다. 과열된 미국 국채시장에서 ‘프래쉬 크래쉬(flash crash?순간 폭락)’ 현상이 나타나면 의외로 많이 유입될 수도 있다.

마이너스 금리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엔화와 유럽의 유로 자금은 포지티브 캐리 트레이드 여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브렉시트 투표 이후 최대 피해국인 일본이 대규모 양적완화에 나설 경우 국내 금융시장에서 와다나베 부인(엔 캐리 자금주도 세력)의 활동이 눈에 띠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중동계 자금은 들어오기는 당분간 힘들어 보인다. 세계경기 둔화, 파리 기후 신협약 등에 따른 화석연료 규제 등으로 원유수요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적다. 유가가 50달러 이상 상승하면 세일가스 등 대체에너지 공급도 재개되기 때문이다. 인수합병(M&A)을 겨냥한 중국계 자금의 유입은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건은 우리다. 올해 하반기에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여건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투자매력이 있어야 실제로 유입될 수 있다. 우리 경제는 하반기에도 어렵다. 브렉시트 투표 직후 투매 자제 등 우리 국민이 성숙한 자세를 보여준 만큼 이제부터는 정치인과 정책당국자가 보여줘야 할 때다. 위기는 기회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