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여든 여섯에 찾아온 꿈..추억을 색칠하는 할머니의 이야기

입력 2016-07-04 08:40


KBS 1TV ‘인간극장’은 4~8일 오전 7시50분 ‘어머니의 스케치북’ 편을 방송된다.

충청남도 태안, 읍에서도 30km를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바다 끝자락의 만대마을 이곳에는 일만 알고 살아온 시골 농사꾼 할머니가 살고 계신다.

전용매(86) 어머니가 그 주인공. 그의 집 마당 곳곳에는 범상치 않는 작품들이 놓여있다. 죽은 나무와 산 나무를 접목해 일명 ‘삶과 죽음’을 표현한 도예가 양승호(62) 씨의 야심찬 작품. 하지만 어머니 눈에는 그저 산 나무를 못 살게 구는 아들의 장난(?)이 못마땅하다.

평생 바다에서 굴을 캐, 육남매는 물론 몸이 약한 남편과 시부모님을 대신해 대식구 생계를 홀로 꾸려온 용매 어머니는 예술은커녕 꽃이 지고 피는 것도 모르고 60년, 가족만을 위해 살아왔다.

본인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하는 예술가 아들을 볼 때면 어머니는 지독히 가난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곤 하신다.

“요즘 시대에 태어났으면 다 할 수 있지. 그 전에는 내가 일을 안 하면 못 살잖아,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니까 무조건 일만 했지”라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생 일과 자식밖에 모르고 살던 어머니에게도 취미가 생겼다.

◆ 할머니의 인생은 여든 여섯부터

작년 1월, 허리를 다친 이후로 굴 까는 작업이 힘들게 되자 심심풀이로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다는 용매 할머니. ‘그리다 보니까 그림이 되네, 그러니까 신기해서 계속 그리지’ 하시며 밭에서 일하다가도, 바다에서 굴을 캐다가도 이제는 틈만 나면 앉아 그림을 그리신다.

화려하진 않아도, 정감 있게 그려내는 어머니의 그림을 보고 며느리 최화정(45) 씨가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사다 드렸다.

그렇게 몇 달 사이 스케치북 몇 권을 훌쩍 완성해냈다.

어머니의 그림 소재는 농사꾼답게 감자며, 고구마, 마늘 같은 농산물. 특히 철마다 피고 지는 꽃도 많이 그린다. 병약한 남편 대신 가족들 생계를 책임지랴 일만 했던 어머니에게 한 떨기 꽃이 바로 ‘위로’였다.

어머니가 얼마나 고된 세월을 보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식들은 뒤늦게 그림이란 취미를 가지게 된 어머니를 열심히 응원한다.

◆ 추억을 색칠하는 어머니

해외생활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도예가 아들 승호 씨는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답게 늘 엉뚱하고 천진난만한 행동으로 종종 어머니의 속을 끓게 하곤 한다.

하지만 아들 덕분에 매사 긍정적이고 애교 많은 며느리 화정 씨를 얻었으니 어머니는 아들내외와 함께 살며 웃는 나날 속 안정기를 찾았다.

재작년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적적했던 어머니 곁을 지키며 큰 힘이 되어준 자녀들. 먹고살기 바빠 한 번도 다정하게 안아주지 못한 것이 어머니는 지금도 마음에 한이 된다 하신다. 때문에 어머니는 요즘 자신이 그토록 되고 싶었던 신사임당 그림을 많이 그리신다.

기억할 수 있을 때, 힘이 남아 있을 때 행복한 추억들을 더 많이 그려놓고 싶다는 전용매 어머니. 자식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선물하는 것이 어머니의 작은 꿈이다.

어머니에게 그림이란, 정신을 붙들어주는 유일한 도구이며 치열하게 살아왔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고마운 벗이다.

여든여섯 인생에 처음 찾아온 ‘꿈’. 용매 할매의 ‘인생 스케치북’ 파노라마를 '인간극장'에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