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23일에는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영국의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브렉시트(Brexit)란 ‘Britain’과 Exit’의 합성어로 유럽통합(EU)에서 영국의 탈퇴를 의미한다. 일부 우려대로 브렉시트가 통과될 경우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보다 2배 이상 큰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통합은 자유사상가에 의해 ‘하나의 유럽구상’이 처음 나온 20세기 초를 깃점으로 한다면 110년, 이 구상이 처음 구체화된 1957년 로마 조약을 기준으로 한다면 60년에 달하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한 마디로 유럽 국민의 피와 땀이 맺히면서 어렵게 마련된 것이 바로 유럽통합이다.
유럽통합은 두 가지 경로로 추진돼 왔다. 하나는 회원국수를 늘리는 ‘확대’ 단계로 초기 7개국에서 28개국(유로존은 11개국에서 19개국)으로 늘어났다. 다른 하나는 통합의 단계를 끌어올리는 ‘심화’ 단계로 유로화로 상징되는 경제통합(EEU)에 이어 정치통합(EPU), 사회통합(ESU)까지 달성해 간다는 원대한 구상이었다.
하지만 유럽통합헌법에 대한 유로존 회원국의 동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주권 문제로 ‘심화’ 단계가 먼저 난관에 부딪쳤다. 오히려 EEU에 잠복됐던 불안요인인 재정위기가 터지면서 퇴보된 느낌이다. 유럽통합 과정에서 영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감안할 때 브렉시트가 통과된다면 ‘확대’ 단계도 커다란 시련이 예상된다.
다른 회원국 탈퇴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독일을 제외한 모든 회원국은 경기 침체 속에 난민, 테러 등이 겹치면서 유럽통합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특히 유럽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유로존 탈퇴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PIGS(포르투칼·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가 동참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분리 독립 운동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스페인의 카탈루냐와 바스크, 북부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와 근접한 동부 등이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회원국 탈퇴가 잇따르고 분리 독립 운동마저 일어난다면 유럽통합은 붕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가 결정될 경우 2030년까지 영국 경제가 6% 위축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가구당 연간 4천 300파운드(현재 환율로 702만원)의 손실을 가져다주는 커다란 규모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번주(5월 16일∼21일)중으로 브렉시트에 따른 경제적 파장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조셉 바이너(J. Viner) 등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처럼 경제발전단계가 비슷한 국가끼리 결합하면 무역창출효과가 무역전환효과보다 커 역내국과 역외국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통합에 가담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앞으로 유럽통합은 회원국의 현실적인 제약요건을 감안해 새로운 방향이 모색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면한 영국의 처리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브렉시트'와 ’B-EU(Britain+EU)' 방안이다. ‘B-EU’는 외형상으로 영국을 EU에 잔존시키면서 난민, 테러 등에 대해서는 자체적인 해결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때 영국은 EU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국 현안을 풀어갈 수 있어 ’브렉시트‘보다 현실적인 방안이다.
‘B-EU’가 선택된다면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과 같은 국수주의 움직임이 거센 회원국이 이 방식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B-EU’에 이어 ‘F-EU(France+EU)’까지 적용될 경우 유로존에 이어 EU 차원에서도 ‘이원적인 운용체계'가 공식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원적인 운용체계는 유로화가 도입위기 이전에 운영됐던 ‘유럽조정메커니즘(ERM=European Realignment Mechanism)’과 원리는 동일하다. 독일 등과 경제여건이 좋은 회원국(good apples)은 경제수렴조건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고, 그리스 등과 같은 나쁜 회원국(bad apples)은 느슨하게 운영됐다.
유로존의 기본골격도 보완될 가능성이 높다. EEU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통화통합과 재정통합이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주무부서로 유럽중앙은행(ECB)과 가칭 ‘유럽재정안정기구(EFSM=European Fiscal Stabilization Mechanism)’, 상징물로 유로화와 유로본드 간 ‘이원적 매트릭스' 체제를 갖춰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탈리아 천문학자와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극한 상황에서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던진 말 한 마디가 먼 훗날 높게 평가받으면서 '지동설‘이 확고해 졌다. 브렉시트 등으로 유럽통합 앞날이 당장은 어두워 보이지만 그 속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통합의 싹을 투자자는 읽어야 나중에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