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녀’, 평강공주가 되어 돌아왔다. 바보 온달이 된 견우는 덤이다.
15년 전, 대한민국은 물론 아시아를 들썩이게 했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부활했다. 전작의 ‘엽기녀’ 전지현은 없지만 ‘견우’ 차태현은 그대로다. 전지현의 배턴을 이어받은 이는 다름 아닌 빅토리아. 긴 생머리에 청순한 이미지, 발랄한 매력까지 고루 갖춘 그가 새로운 ‘엽기녀’로 등장한다.
세월이 흐른 만큼 견우도 변했다. 비구니가 되어 속세를 떠난 ‘그녀’(전지현) 때문에 속 썩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첫사랑 새로운 ‘그녀’를 만나 실연의 아픔을 털어낸다. 전작의 ‘그녀’와 알콩달콩한 연애를 했다면, 이번엔 결혼이다.
모든 것이 속전속결이다. 실연, 연애, 결혼, 이별, 재회까지 모든 과정이 숨 가쁘게 흘러간다.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안에 대한민국 취업준비생의 아픔, 대기업의 갑질 등 사회적 이슈는 물론, 한 남자의 성장기까지 곁들였다.
홀로 정체돼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 뿐이다. 취업준비생 견우가 그녀 덕분에 대기업에 입사하고, 치열한 사회생활에 지쳐 내적 갈등을 겪게 되고, 고민과 반성을 거듭하며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그녀'는 언제나 그림자다. 영화 속 ‘그녀'가 철저히 견우를 뒷받침하는 존재로 남는다는데서 깊은 아쉬움을 느낀다.
다양한 ‘문화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영화를 통해 아시아의 문화적 간격을 좁히고 싶다”던 조근식 감독의 의도는 좋았으나, 가능성은 미지수다. 중국의 절경이 펼쳐지는 장면이나 전통 혼례식 등은 ‘볼거리’로 충분하다. 여기에 일본인 배우 후지이 미나, 중국인 배우 빅토리아까지 등장, 한-중-일의 배우들이 모두 모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모은다. 그러나 중국의 볼거리, 그 하나를 제외하고는 문화적 공감이나 차이를 느낄만한 부분을 찾을 수 없다는 데서 다소 의문을 남긴다.
배우들의 호흡도 좋았다. 차태현의 연기는 논할 필요가 없다. 캐스팅 이후,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낳았던 빅토리아의 연기도 기대 이상이다. 다소 어눌한 한국어 연기는 오히려 사랑스러운 매력을 높이는 결과를 불렀을 정도. 충무로 대표 신스틸러 배성우도 한 몫했다. 캐릭터 자체의 불쾌한 요소를 접어두고 본다면, 영화 속 가장 많은 웃음을 유발한 존재였다. 다만, 캐릭터들이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기에 배우들의 연기력마저도 의심하게 되는 묘한 기분이 밀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전작을 넘는 속편이 나오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엽기적인 그녀'의 경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작'으로 꼽는 작품인 만큼, 후속작으로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터. 그러나 전작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아쉬움을 남긴다. '엽기적인 그녀2'의 그녀는 '엽기녀'가 아니다. 단지 바보가 되어버린 견우를 위한 존재일 뿐. 12일 개봉. 러닝타임 99분. (사진=리틀빅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