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신분, 직종을 숨긴 스타들이 목소리만으로 실력을 뽐내는 미스테리 음악 쇼'.
MBC '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의 슬로건이자 기획의도다. 확실히 복면가왕은 취지에 맞게 프로그램을 매우 잘 운영해오고 있다. 야구선수 이종범, SG워너비 메인 보컬 김진호에 가려졌었던 서브 보컬 이석훈, 그리고 홍석천의 남성적인 면모가 돋보였던 무대까지. 외모가 수려하든 수려하지 않든, 특급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스타이든 아니든, 복면가왕에 도전한 이들은 기획취지 그대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편견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노래 실력을 마음껏 뽐내왔다.
복면가왕은 참 잘 만든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다. 과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MBC '나는 가수다', JTBC '히든싱어'를 잇는 '3대 음악 예능'에 꼽힐 정도로 포맷과 취지가 명확하며 기발하다.
하지만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듯, 복면가왕 역시 나름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약점은 지난 1월부터 등장해 가왕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동네 음악대장의 연승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우승, 또 우승, 그리고 또 우승. 무려 7연승의 기록을 세워나가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복면가왕의 '가왕', 우리동네 음악대장.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과 화제가 됐었던 '라젠카, 세이브 어스' 이후로 그는 2주에 한 번씩 진행되는 가왕방어전에서 매번 예상치 못한 곡을 선정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모든 곡을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왔다. '음악적 완벽'이라는 것의 기준과 잣대가 무엇인지는 정의할 수 없지만, 7연승이라는 기록은 적어도 그간 음악대장이 꾸린 무대가 그 어떤 무대보다 강렬했고, 관중과 시청자들을 음악적 카타르시스에 빠지게 만들어 왔다는 증거다.
더 이상 화려한 기교와 감성으로 승부하는 애절한 발라드 곡이 먹히지 않는다. 휘황찬란한 퍼포먼스도 안 먹힌다. 음악대장은 록을 기본으로 발라드도 미디엄 템포의 곡도, 심지어 아이돌 그룹의 음악까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방황과 고뇌에서 나오는 깊이 있는 감성을 끌어내는 특출난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를 표현에 옮기는 능력까지 갖춘 뮤지션이다.
음악대장이 '노래하는 사람'일 거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가 노래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제껏 그가 복면가왕 속에서 보여준 능력은, 휴대폰 영업사원에서 팝페라 가수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된 영국의 폴 포츠 사례와 맞먹는 일일 것이다.
복면가왕의 백미는 두 가지다. 첫째는 정체를 알 수 없던 능력자가 복면을 벗었을 때 전해져오는 짜릿한 충격이며 두 번째는 새로운 '노래강자'가 등장해 이전까지 가왕 자리를 지키던 '왕'을 끌어내리는 순간이다.
하지만 여기서 곤란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 음악대장이라는 존재의 등장과 그가 이루어내고 있는 길고 긴 연승이다. 물론, 복면가왕 방송 이후 포털에 하루가 꼬박 넘도록 검색어에 걸려있는 음악대장에 관한 관심과 응원을 보았을 때, 시청자들은 아직도 그의 노래에 질리지 않았고, 프로그램 패널인 김구라는 "여름까지 그의 노래를 듣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대중은 그의 새로운 노래를 계속해서 원하고 기대하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전에 없던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음악대장이 갖게 될 부담감과 압박감이다. 실제 그는 지난 방송에서 "가면을 벗었을 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된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24일 방송 이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음악대장이 신해철 노래로 시작해서 신해철 노래로 끝내고 내려오려던 것 아닌가"라는 누리꾼들의 추측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복면가왕이 가지고 있는 휘발성이다. 음악대장의 음악적 능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하고 그간 7번의 우승이 증명하듯 현재로썬 복면가왕에 출연해 그를 이길 수 있는 상대는 많지 않아 보인다(물론 우리가 이른바 ‘레전드 가수’라고 부르고 있는 데뷔 2, 30년이 넘은 뮤지션은 예외로 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영원한 승자는 있을 수 없는 법, 그는 언젠가 자의든 타의든 가왕의 자리에서 내려가야 할 것이며 대중은 음악대장을 꺾은 새로운 복면가수의 정체에 또다시 무한한 관심을 쏟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김연우, 코스모스 거미, 캣츠걸 차지연 역시 복면가왕 출연 당시 폭풍 같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지만, 가왕의 자리에서 내려간 후 복면가왕 출연의 후광을 크게 얻지는 못하고 자신들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음악대장이 복면가왕 출연 이후 돌아갈 자기 자리가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관심이 복면가왕 이후 눈에 띄게 줄어든다면, 이만한 음악적 실력을 갖춘 이가 최종적으로 얻게 될 대가치고는 서운한 광경이 아닐까 싶다.
음악대장은 복면가왕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연승을 기록하고 있던 캣츠컬 차지연에 대한 불만이 일부 제기되고 있던 당시 복면가왕을 현존하는 최고의 음악 예능으로 일으켜 세운 장본인이다. 그의 연승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복면가왕 측에서 음악대장으로서가 아닌, 실제 그의 노래를 뽐낼 수 있는 기회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차라리 지금부터, 복면을 쓴 채로 실제 자신의 노래만 부르면서 다시 연승을 이어가는 모습 또한 흥미로운 광경이 아닐까? 음악대장이 아닌,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도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