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싸이클 이론으로 본 올 2분기 이후 ‘한국 증시 위기론’ 점검

입력 2016-03-28 09:29
수정 2016-03-28 09:37


올 들어 ‘칵테일 위기’라 불리울 만큼 악재가 잇달아 터져 나오면서 세계 경기와 증시가 크게 흔들림에 따라 각국은 정책적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탁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은 금리인상에 나섰으나 완만한 실물경기 회복, 낮은 물가 등을 감안한다면 여전히 경기 부양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일본의 아베노믹스와 유럽의 양적완화 정책은 갈수록 성공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도 둔화되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양책이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금리인상 이후 가속화되는 외자이탈에 대한 방지책이 절실한 국면에 몰리고 있다.

정책이나 경기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함에 따라 기업인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가격변수의 순응성이 커지면서 롤러코스트 장세가 재현되고 있다. 순응성이란 금융시스템이 경기변동을 증폭시킴으로써 금융불안을 초래하는 금융과 실물간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말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기와 증시는 ‘大안정기(great stabilization)’와 ‘大침체기(great recession)’가 반복됨에 따라 이제는 ‘大싸이클론(great business cycle)’이 정형화된 사실로 굳어졌다. 작년 12월 미국 금리인상 이후 세계 경기와 증시 혼돈이 대안정기 이후 찾아오는 대침체기를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급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닛 옐런이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 취임했던 2014년 2월 이후 세계 경기와 증시는 재차 ‘대안정기’에 접어들었다. 2009년 2분기 이후 약 2년 동안 지속됐던 ‘1차 대안정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각종 공포지수가 안전지수라 불리울 만큼 경제주체들의 위기의식이 급속히 사라졌다.

이 때문에 ‘2차 대안정기’ 이후 ‘2차 대침체기’가 언제 올 것인가에 대한 경고가 위기관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돼 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작년 5월 이후 상황이 2008년에 발생했던 금융위기 직전을 연상케 한다’며 조만간 세계 증시는 대폭발이 올 것이라는 이른바 ‘폭풍전야설’을 경고한 적이 있었다.

길게 보면 최근과 같은 현상은 리먼 사태 이후 세계 경기와 증시는 롤러코스트로 비유될 만큼 기복이 심했던 추세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리먼 사태 직후 세계 경기와 증시는 ‘대침체기’라고 불릴 만큼 어려움을 겪었지만, 2009년 2분기 이후 2011년 7월까지는 ‘대안정기’라고 불릴만한 회복기가 지속됐다.

2008년 9월 당시 리먼 사태로 크게 동요하자 많은 예측기관들은 세계 경기와 증시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토록 빠른 속도로 큰 폭의 침체를 겪게 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 경기와 증시가 같은 해 2분기를 저점으로 그 후 그토록 빨리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도 많지 않았다.

심리 요인이 크게 작용했던 ‘1차 대안정기’와 달리 ‘2차 대안정기’가 찾아온 가장 큰 것은 선진국 중앙은행의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돈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로 상징되는 선진국의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은 작년 8월 유럽중앙은행(ECB), 올해 2월에는 일본은행(BOJ)이 ‘마이너스 금리 예치제’까지 도입했다.

하지만 이런 기조가 특정시점에 바뀔 때는 위험성과 변동성이 다시 확대되면서 ‘대침체기’를 맞는다. 특히 옐런 의장 취임 이후 세계 경기 회복국면은 총수요 면에서 소비, 투자, 수출 등 지출요인과 총공급 면에서 노동, 자본, 총요소생산성 등 생산함수 구성항목이 모두 종전 회복기에 비해 부진해 대침체기가 오면 그 폭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대안정기에서 대폭락기로 돌아설 때에는 ‘하이먼-민스크의 리스크 이론’이나 ‘조지 소로스의 자기암시가설’ 등에서 지적한 데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순간 폭락(flash crash)’ 현상이 동반하기 때문이다. 3차 아베노믹스 수정안인 마이너스 금리제 효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2월 9일 하루에 900포인트 넘게 폭락한 것이 가장 최근의 예다.

기초여건(fundamentals) 개선 없이 금융완화만으로 위기극복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황에서 대침체기가 오느냐 여부는 ‘위기 후 과제(after crisis)’를 얼마다 잘 극복하느냐 여부에 좌우된다. ‘위기 후 과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브라운식 방식(1930년대 루즈벨트 방식)으로 비상사태에 준하는 위기극복 대책을 추진했던 선진국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문제로 이미 유럽재정위기로 가시화됐다.

다른 하나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기 충격이 덜했던 신흥국이 선진국의 위기극복 과정에서 유입됐던 과다 유동성에 따른 후유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2013년 5월말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총재가 출구전략을 언급한 이후 신흥국이 ‘긴축 발작(taper tantrum)’에 시달렸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위기 후 과제’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경기회복을 너무 낙관해 금리인상 등의 긴축기조로 성급하게 돌아서면 ‘제2의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제로 금리, 양적완화로 어렵게 돋은 ‘싹(green shoots)’을 다시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yellow weeds)’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미국 금리인상이 너무 성급하지 않았느냐는 비판과 함께 ‘옐런의 실수(Ellen’ failure)’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증시의 ‘大침체기’와 ‘大안정기’ 논란 속에 한국 증시의 앞날도 혼탁하다. 주가, 환율을 비롯한 대부분 가격변수는 작년대비 2배에 달할 정도로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특히 올해 2분기 이후 ‘위기설’과 ‘반등설’이 공존하고 있어 투자자를 비롯한 시장 참여자는 더 혼란스럽다.



두 설 모두 한국 증시가 어렵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위기설은 지금도 어려운 상황인데 올해 2분기 이후 악재가 더 터져 나오면 주가가 급락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반등설은 주가가 어느 정도 떨어진 상황에서 약간의 호재만 받쳐준다면 본격적으로 살아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작용하고 있다.

두 설의 근거로 가장 먼저 꼽고 있는 것이 국제유가다. 올들어 S&P지수와 유가 간 상관계수가 0.9에 달할 정도로 글로벌 증시가 유가 향방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설은 올해 2분기 이후 원유 비수기에 접어들면서 유가와 주가가 동시에 떨어지고, 반등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하면 감산하면 유가와 주가가 동반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계절적 원유수요 감소, OPEC 감산기대 여부와 관계없이 두 설은 ‘비이성적 시장행태’에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이성적 시장행태’라면 유가와 주가는 ‘부(負)의 상관관계’이어야 한다. 하지만 올들어 유가와 주가 간 ‘정(正)의 상관관계’로 변한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 계수가 0.9에 달하는 것은 더 이해되지 않는다.

두 설의 두 번째 근거는 세계 경기가 더 침체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위기설이 특별히 제기될 만큼 올해 2분기 이후에 세계 경기를 더 침체시킬 만한 특별한 요인은 없어 보인다. 지금의 둔화세가 지속되는 정도일 뿐이다. 더 이해되지 못하는 것은 세계 경기가 더 침체되면 추가 금융완화책이 나와 글로벌 증시가 살아날 것이라고 보는 반등설이다.



특히 ECB와 BOJ의 추가 금융완화조치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제2 유동성 장세’가 올 것이라는 낙관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발권력, 양적완화, 마이너스 금리예치제와 같은 극약처방을 다 동원한 ECB와 BOJ 입장에서 더 내놓을 수 있는 금융완화조치는 기껏해야 마이너스 금리폭을 확대하는 수단밖에 없다.

마이너스 금리예치제는 은행이 자금을 적극적으로 대출을 도모하라는 취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다. 경험국의 사례를 보면 이 제도는 민간예금의 마이너스 금리로 귀착된다. 민간이 예금할 때 수수료를 낸다면 여유자금을 은행에 예치하기보다 소비하면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상황이 발생한다. 오히려 이 제도 도입 이전에 예금했던 자금을 인출해 시장에서 퇴장시키면서 금융과 실물 간 연계성은 더 떨어진다.

두 설의 세 번째 근거로 미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다. 2분기 이후 Fed 회의에서 위기설은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반면, 반등설은 낮다고 보고 있다. 두 설은 유동성 면에서만 증시를 보는 시각이다. 경기 면에서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회복’, 낮아진 것은 ‘둔화’를 의미해 유동성 요인과 정반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위기설(혹은 비관론)과 반등설(혹은 낙관론)과 관련해 유명한 격언이 있다. 미국의 저명한 경기 예측론자인 웨슬리 미첼은 “그릇된 비관론이 위기에 봉착하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 과정에서 그릇된 낙관론이 태어난다”며 “새로 탄생된 오류는 신생아가 아니라 거인의 위력을 발휘한다”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각종 설은 믿을 수 없다는 의미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날로 증가한다. 특히 금융위기 이전보다 더 영향력이 커진 ‘심리요인’과 ‘네트워킹 효과’로 긍(肯·긍정)과 ‘부(否·부정)’, ‘부(浮·부상)’와 ‘침(沈·침체)’이 겹치면서 앞날을 내다보기가 더 힘들어 졌다. 이런 추세는 증시를 비롯한 금융시장에 고스란히 반영돼 변동성 확대로 나타난다.

위기든 반등이든 OO설을 믿고 투자하는 것은 금물이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쓸데없는 정보에 휩싸이는 ‘인포데믹’과 위험을 판단하는 ‘리스크데믹’을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 세계 경기와 증시는 ‘골디락스’라고 비유될 만큼 좋아지는 때는 없다고 봐야 한다. 위기상시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기본과 균형을 지키는 일만이 최대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