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같은 민간 기업의 각개전투로는 해외수주를 따낼 수 없다"
"중국은 막대한 금융을 등에 업고 오는데...우리는 이게 뭐냐?"
"발목 잡힌 공기업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부가 한쪽 뒷다리를 잡고 있으면서...어떻게 중국과 일본을 이기겠는가?"
"머잖아 글로벌 건설시장에서 중국 하청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취재를 하면서 들은 취재원들의 목소리다.
▲고꾸라지는 해외수주
우리나라 해외수주는 말 그대로 '비상'이다.
2014년 660억 달러였던 지난해 461억 달러로 30%나 급감했고 올해 역시 더욱 부진할 것으로 로 보인다. 3월 현재만 봐도 동기대비 31%가량 줄어들었다.
이유가 뭘까? 업계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글로벌 경기위축과 주요 발주국인 산유국들이 발주 자체를 줄였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속내를 들여다 보고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다시 물어보자. 이유가 뭘까? 그 동안 국내 건설사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단순 도급사업 성과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 주세요" 하면 " 네. 알겠습니다. 열심히 만들어 드리죠" 가 해외 수주의 전부였다. 편하게 하는 도급사업이 이제는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그래서 대형건설사 CEO들이 "디벨로퍼로 가자" "투자개발형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만들겠다" 는 식으로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도급사업의 한계...디벨로퍼로의 변신은 가능할까?
국내 대형건설사 CEO와 임원들의 임기는 대표이사는 2~3년, 임원은 1년 단위로 재계약된다. 만약에 해외사업 임원이 우리 회사의 10년, 20년 뒤 먹거리를 위해 아프리카에 철도를 놔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면 과연 받아들여 질까? 아마도 "야! 10년뒤를 어떻게 알아? 네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쓸데 없는 소리 말고 수주나 따와!" 이렇게 반응이 나올 것이다. CEO도 마찬가지이다. 국내 건설사 CEO 중에 과연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해외 투자개발형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오너'가 있을까? 없다. 현장에서 뛰는 오너도 예전 쌍용건설 김석준 회장 외에는 없다. 모두가 월급사장 일 것이다. 2~3년 임기의 월급 CEO가 장기 비전을 실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오너가 집에 가라면 가야 하는데 말이다. 당장 수익이 안 나더라도 미래성장 사업을 발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국내 민간 기업들이 디벨로퍼로 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투자개발형 사업을 설명해본다.
예를 들어서 아시아 A지역의 고속철도 100억달러 프로젝트가 나왔을 때 B라는 국가는 100억 달러의 차관 또는 글로벌 본드 등으로 자금을 마련해 수년 동안 고속철을 만든 다음에 수십년 동안(일반적으로 30년) 그 나라 고속철을 운영하면서 이자까지 합쳐서 200억불 또는 그 이상을 뽑아내는 것이다.
▲날고 있는(飛上) 중국 그리고 강자 일본
우리가 해외수주 특히 메가 프로젝트에서 밀리고 있는 사이 중국과 일본은 세계 시장을 싹쓸이 하고 있다. 생각나는 것만 열거해도 최근 중국은 56억달러의 인도네시아 고속철도, 120억달러의 나이지리아 철도 공사 등을 수주했고 일본은 150억달러의 인도 고속철을 수주했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대형 프로젝트들은 이들 국가가 따내고 있다. 특히 중국은 중국철도공사 (CRCC)를 통한 수주를 전세계 지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실로 엄청나다. 이들에게는 막대한 금융이 있다. 지금 전세계 관심은 이란에 쏠려 있다. 마치 우리도 이란에 가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란은 조건을 들고 있다. "너희들이 돈을 가지고 와서 지어"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비교를 한번 해보겠다. 우리나라 수출입은행의 총자산은 73조6천억원 약 600억달러이다. 일본국제협력은행(JBIC) 총자산은 18조4천억 엔 약 1600억 달러이다. 우리 수출입은행보다 약 3배 정도 많다. 그렇다면 중국은? 중국 건설은행(CCB) 총자산은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16조7천억 위안 약 2조 7천억달러 이다. 우리보다 약 45배나 많은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돈으로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국가 대항전으로 변하고 있는 해외수주 전쟁
지난 2009년 12월 27일. 아랍에미리트에서 대형프로젝트 수주 낭보가 날아왔다.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 것이다. 총 수출액은 플랜트 건설 등 직접 수주액이 약 200억 달러, 그리고 후속 수출액이 약 200억 달러 도합 400억 달러에 이른다. 리비아 대수로 2차공사 이후 가장 큰 해외수주 성공사례일 것이다.
대형 프로젝트는 국가 대항전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도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을 제치고 우리가 따낸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국가 대항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은 막대한 금융을 등에 업고 그리고 공기업 등을 포함한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수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공사대금에 대해서 국가가 보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뒤에는 수십 개의 자국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 사단'을 갖추고 들어오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일단 우리 공기업들은 나갈 수 없다. 알다시피 예전에 수자원공사,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등이 국내외 사업을 펼치다 수십 조 날리고 그것을 세금으로 채워 넣고 하는 흑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제는 300억 이상 사업에 대해선 예비타당성 심의를 받아야 한다. 300억원 이면 3천만 달러인데 그 정도이면 해외현장 아주 작은 것들도 모두 예타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기재부에서 300억원을 500억원으로 올린다고 하는데,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결국 국가(공기업)이 나서야 한다. 그런데...
결국 국가대항전을 펼치기 위해선 국가가 나서야 한다. 공기업을 앞세워서 말이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지만 공기업은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시 뭔가 한다고 하면 수많은 여론의 뭇매를 맞을지도 모른다.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다고 안 할 것인가? 그것도 어렵다. 이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열심히 립서비스를 하고 있다. 16일 강호인 건설교통부 장관은 건설,엔지니어링 업계 간담회에서 "우리 기업의 해외수주를 위해 고위급 회담, 수주지원단 파견 등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항상 하던 이야기다. 정부가 돈을 대지 못하는데 고위급 회담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측면 지원만을 하겠다는 것이다. 즉 해외건설 자금 조달의 리스크는 민간 건설사가 지라고 은근이 떠미는 것이다. 민간 기업 입장에서도 그리할 리 만무하다. 건설사들은 단순 시공만 하고 조금만 먹고 빠져야 하는데 길게 가라고 하면 부담스러워한다. 그런다고 정부가 개런티를 해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민관이 리스크를 가지고 '핑퐁'게임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쿠웨이트는 2014년 우리나라와 200억달러 규모의 신도시 개발 MOU를 체결했다. 쿠웨이트와 같이 돈이 많은 나라도 우리나라가 돈을 가지고 와서 도시를 건설해 달라고 했다. 이게 글로벌 발주 흐름이다. 담당은 LH인데 지금 서류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LH는 중간에서 수수료만 먹을 생각인 모양이다. 가장 좋은 그림은 LH가 전면에 나서서 수주를 하고 국내 수십여개의 건설사 대형 선단을 이끌고 쿠웨이트에 입성하는 것인데 쉽지 않은 모양이다. LH의 지상과제는 부채감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현재 철도시설공단은 120억달러의 말레이시아 싱가폴 고속철 수주를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한번 해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발주가 중단된 상태이다.
글로벌 메가 건설 프로젝트 수주는 국가 대항전이다. 우리는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없다. 이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욕먹는게 무섭기 때문이다.
▲ 욕먹을 걸 무서워 말라...진정한 국익을 생각하자
이대로 5년 10년이 지났다고 치자. 아마도 중국과 일본, 유럽 기업들이 메가 프로젝트를 대부분 따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중국 시행사가 주는 하청을 받아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도급사업이다. 업계에서는 7~8년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메가 프로젝트가 서서히 발주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건설업계 아니 우리나라에는 또 한번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욕먹을 걸 무서워 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국익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준비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