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어떻게 살 것인가?

입력 2016-03-04 09:27
10편. 어떻게 살 것인가?

'할아버지는 늘 주변에 있는 가족의 도움을 받았고, '나이가 있었음에도'가 아니라, 바로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가족 전체의 존경을 받았다'

하버드대학 의대를 졸업한 외과의사 아툴 가완디(Atul Gawande)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에서 100세가 넘도록 인도에 살았던 자신의 할아버지를 그렇게 묘사했다. 인류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시스템' 즉 한 지붕 아래의 3대가 같이 사는 경우, 나이든 구성원은 젊은 구성원들의 존경과 보살핌을 받았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산업화와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성년이 된 자녀들은 집을 떠났고, 노인들이 홀로 남기 시작했다. 사실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시스템'에서는 노후를 위해 특별히 저축을 해둘 필요가 없었다. 연금도 특별히 의미가 없었고, 요양원에 갈 필요도 없었다. 자식들이 노부모를 보살펴줄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암묵적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면 자식농사가 노후준비였던 시대였다.

가완디에 따르면 과거에는 노인으로 살아남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 노인은 전통과 지식, 역사의 수호자로서 특별한 기능을 하였고, 집안의 우두머리라는 지위와 권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많았다. 따라서 과거에는 나이가 어린 것 보다 '나이가 많은 척'하는 것이 더 유리했다. 이런 현상을 인구학자들은 '나이 반올림'(Age heaping)이라고 하는데, 나이에 대한 거짓말의 방향이 18세기부터는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즉, 이제는 나이를 줄여 말하는 것이 훨씬 유리해졌다는 것이다.

노인이 존경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게 된 원인에 대해 가완디는 몇 가지 이유를 꼽았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고령이 더 이상 희귀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노인이 가지는 존엄을 유지하기에 너무 많은 노인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1790년 미국의 65세이상 인구비율이 2%도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고령사회(65세이상 인구비율이 14% 이상인 사회)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도 2018년이면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고,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65세이상 인구비율이 20% 이상)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이유는 노인들이 누렸던 지식과 지혜에 대한 독점적인 지위가 학문과 통신기술의 발달 등으로 오랜 경험과 노련한 판단 등에 대한 가치가 퇴색하였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젊은이와 노인 사이의 관계가 변화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자녀들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삶에 필요한 조언, 경제적 보호 등을 받고, 나이가 들어 부모로부터 재산 등 부의 상속을 받아 경제적 안정의 기틀을 만들었다. 그러나 부모가 과거보다 오래 살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틀이 무너지는 새로운 긴장관계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 번째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즉, 노인으로서, 고령자로서 존경이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여러 이유 중에서, 사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는 사회적 변화이며, 그 자체로서 역사적인 흐름이며, 원인이자 결과이다. 그러나 세 번째 이유인 '새로운 긴장관계'는 노력여하에 따라 바꿀 수도 있고, 더 나은 대안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들은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노후에 대한 부담이 커졌으며, 자녀들은 조기에 넘어오지 않는 상속재산 때문에 자립적인 경제활동이 더욱 압박 받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가정 내 긴장관계는 사회적 경쟁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흔적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발견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영업 사업체수는 381만여개로 전년도에 비해 14만여개가 늘었다. 특이한 것은 60대이상이 대표인 사업체수가 70만 1천여개로 전년도보다 무려 7만3천여개가 더 늘었다는 것이다. 이 증가 폭은 전체 순증 14만여개의 절반에 해당하는(52.7%) 숫자이다. 물론 여기엔 2013년이후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창업이 크게 늘었는데, 그들이 60대로 진입한 것도 일부 영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창업이 아니라 은퇴창업, 노년창업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문제는 창업만 느는 것이 아니라, 폐업도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사실 늘 창업자수보다 폐업자수가 많았다) 2011년에 60대이상 창업은 7만9천여명, 폐업은 10만4천여명이었지만, 2014년에는 창업 9만3천여명, 폐업11만8천여명으로 창업보다 폐업이 훨씬 많아지고 있다.

사실 베이비붐세대의 창업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퇴직연금 수령방법만 보더라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2분기중에 퇴직연금 수급요건을 갖춘 55세이상의 퇴직자중에 95%가 연금형태로 수령하지 않고 일시금으로 수령했다. 즉, 거의 모든 퇴직자들이 세제측면에서 30%나 절감되는 연금형을 선택하지 않고 굳이 목돈인 일시금으로 수령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노후준비가 쉽지 않은 상황임을 보여준다. 자녀의 결혼이나 창업비용 등이 퇴직금의 사용처가 되었을 공산이 크다. 실제 우리나라 개인사업자의 대출금액은 239조원인데, 이중 50대의 비중이 39%로 다른 연령층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60대이상까지 포함하면 63%로 노장년층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지난해에 늘어난 개인사업자의 대출금액의 33%인 9조8천억원이 60대이상 고령층에서 발생했다. 앞서 말한 창업자수 순증의 절반이 60대이상이라는 통계와 거의 맞아 떨어진다. 결국 50~60대의 퇴직금 일시금 수령이나 창업시도 및 사업자금 대출의 큰 폭 증가는 스스로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이 시대 노장년층의 경제적으로 어려운 은퇴상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의 상황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증거는 자신들의 미래와 노후의 안전판인 보험계약을 해지하는 비율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해(1월~11월) 국내 25개 생명보험회사 누적해약환급금은 약 16조 8천억원으로 2014년에 비해 7%이상 증가했다. 근데 이 수준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 닥쳤던 2008년 같은 기간 동안의 해약환급금 15조 7천억원을 훨씬 넘어선다. 역대 최대수준이다. 연간으로는 2008년 기록인 17조 8천억원수준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마이너스통장의 대출규모도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2014년 1조9천억원의 4배이상인 8조원을 기록하는 등 생활자금의 대출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물론 보험해약이나 마이너통장대출이 50대이상 노장년층에서 모두 일어났다고 볼 수는 없지만, 보험계약이 장기계약의 성격을 띤다는 점과 마이너스통장이 생활자금성격이 강하다는 점, 그리고 앞서 본 개인사업자 대출이나 창업흐름을 볼 때, 이들 50대이상 노장년층이 주요대상일 가능성이 크다.

50대 이상 노장년층의 은퇴준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쉽지 않다. 연금제도의 역사가 30년도 채 안 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인 노후대책은 자식농사 외에 '자산의 연금화'전략이었다. 즉, 스스로가 생애소득을 차곡차곡 모아서 자산으로 구축한 후 그 자산을 스스로 연금화하는 전략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먼저 금융자산을 스스로 연금화 하는 전략이다. 가장 손 쉬운 방법으로 본인의 저축금액을 은행에 예치하여 그 이자로 노후생활비를 충당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큰 제약이 따른다. 먼저 금융자산의 이자소득이 노후생활비가 되려면 꽤 큰 규모여야 한다는 사실과 적당히 높은 이자율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과거 10억원의 저축이 있는 은퇴자가 은행금리 10% 시절에는 원금 훼손 없이 매월 833만원의 이자수익으로 아주 풍족한 은퇴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1.5%의 초저금리 시대에는 67억원이 있어야 매달 833만원의 이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10억원도 큰돈인데, 67억원은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모아둔 돈이 10억원이라면 이자수익으로만 가지고 '자산의 연금화전략'은 불가능하다. 결국 저축한 원금을 허물어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을 연금화하는 방법이다. 아파트나 상가, 혹은 오피스텔을 임대하여 거기서 나오는 임대수익으로 노후 생활비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절대 저금금리시대가 되면서 빠르게 수익률이 낮아지고 있다. 현재 서울시내 오피스텔의 임대수익률은 5.42%로 2010년이후 최저수준이다. 반면 평균매매가격은(2016년 1월) 2억1973만원으로 지난해 1월에 비해 97만원이나 올랐다. 가격은 오르고 수익률은 하락한 셈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 오피스텔 한 채를 가지고 있다면 매달 99만원의 임대수익이 발생하는 셈이다. 그러나 가장 큰 위험요인인 공실에 대한 부담과 지속적인 임대수익률의 하락 가능성으로 이 역시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앞서 말한 '금융자산 연금화전략'의 현실적인 대안이 개인연금과 즉시연금이고, '실물자산 연금화전략'의 현실적인 답은 주택연금 등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치부한다면, 답은 오직 한가지이다. 젊어서부터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개인연금을 들고, 오랫동안 일하며, 은퇴시기를 늦추는 길 외에는 없다.

가완디의 말처럼 과거에 노인은 특별한 지위와 권위를 누렸고, 존경과 복종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스스로의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단한 계층이 되어 가고 있다. 가장 많이 창업을 하고, 이를 위해 가장 많이 대출을 일으키는 연령층. 보험해약과 마이너스통장에 의존하는 세대. 더 이상 이자소득도 기대하기 어렵고, 임대소득도 마땅치 않아버린 시대에 노후준비를 해야 하는 세대. 결국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를 고민하기 앞서 '어떻게 살 것인가'(How to Living)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