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자기자본보다 우발채무(숨은 빚)가 많은 5개 증권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한국경제신문이 보도했다.
경기가 급격히 꺾여 우발채무가 동시다발적으로 현실화되면 이들 증권사가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메리츠종금과 교보, HMC, 하이투자, IBK 등 자기자본 대비 우발채무 비중이 100%를 넘는 증권사들에 우발채무 증가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관리하라고 권고했다.
우발채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금융당국 차원에서 별도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뜻도 전달했다.
우발채무는 현재는 채무가 아니지만 돌발사태가 발생하면 채무로 확정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인 채무를 말한다.
급할 때 빌려주겠다고 약속한 대출 약정 등이 대표적이다.
금융위원회도 증권사의 우발채무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새로운 건전성 규제도입을 준비 중이다.
레버리지 비율(자기자본 대비 총자산 비율)을 계산할 때 우발채무를 포함하거나 별도의 충당금을 쌓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레버리지 비율이 1,100% 이상인 증권사는 경영개선 권고, 1,300%를 넘으면 경영개선 요구를 받는다.
금감원에 따르면 메리츠종금증권(276.5%)과 교보증권(200.4%)은 우발채무가 자기자본의 두 배에 달한다.
HMC투자증권(159.6%), 하이투자증권(155.9%), IBK투자증권(103.5%)도 자기자본보다 많은 잠재적 채무를 안고 있다.
이들 5개 증권사의 우발채무 총액은 8조8천억원에 달한다.
금융당국이 증권사 우발채무 관리를 강화하고 나선 것은 경기가 급속도로 나빠지면 해당 증권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2013년 이후 아파트 개발사업 시행사가 자금난에 빠지면 대출을 해주겠다고 약속(약정)하는 방식으로 우발채무를 늘려왔다.
증권사들은 통상 미분양 아파트 가치(평가액)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대출해주는 약정을 건설사 등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대출 약정금액의 2% 이상을 수수료 명목으로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들이 건설사 등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기피하자 증권사들이 틈새를 파고든 것이다.
증권사들의 이런 우발채무 잔액은 2012년 3월 말 2조8천억원에서 지난해 9월 말 16조7천억원(매입보장약정 제외)으로 불어났다.
부동산 경기가 꺾여 미분양이 급증하면 건설사들로부터 동시다발적인 대출요구가 쇄도할 수 있다.
증권사들이 확보한 담보물의 가치가 높더라도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사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이에 대해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만기를 3~4년으로 분산시키는 등 리스크 관리를 면밀히 하고 있어 위험이 일시에 현실화될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