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BOJ) 총재가 지난달 29일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전격 결정한 뒤 예상과 달리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판단 오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국경제신문이 보도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국제 유가 급락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 때문에 엔화가 오르는 것이라 마이너스 금리 정책만으론 막기 어려운데, 일본은행이 이를 전격 도입해 오히려 금융시장의 불안심리만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엔화가치 상승세가 이어지면 일본 기업의 실적 호조세가 꺾이면서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가 좌초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엔화가치 1년3개월 만에 최고
1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장중 1년3개월 만에 최고인 1달러에 110엔대까지 치솟았다.
지난 1일 1달러에 121엔을 밑돌던 엔화가치는 불과 8거래일 만에 11엔가량 급등했다.
이날 엔화 가치가 큰 폭으로 뛴 것은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기대가 후퇴한 탓이 컸다.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10일(현지시간)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보고에서 "미국 경제가 좋고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이 생각보다 빨리 정상화되면 금리를 빨리 올리는 게 좋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며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또 "광범위한 주가 하락과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면 미국의 경제활동과 고용시장에도 부담을 줄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발언을 내놨다.
설 연휴를 마치고 개장한 한국과 홍콩 등 아시아 증시가 급락하고, 국제유가가 1배럴에 27달러 선까지 추락한 점도 안전자산인 엔화에 대한 매수를 부추겼다.
◆ 원·엔 환율 100엔에 1,066원
엔화 가치가 치솟자 원·엔 환율은 2년 만에 최고(원화가치 최저)로 올랐다.
이날 원·엔 환율은 100엔에 1,066원71전으로 지난 5일(1,024원64전)보다 42원7전(4.1%) 급등했다.
2014년 2월4일(1,073원81전) 이후 가장 높았다.
달러에 견줘 엔화는 강세, 원화는 약세를 보인 결과다.
외국인이 국내 채권과 주식을 팔면서 오후엔 원화 약세가 더욱 두드러져 원·엔 환율이 100엔에 1,07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선성인 신한금융투자 이코노미스트는 "각국 주가와 유가가 하락하면서 위험 회피 심리가 높아진 점이 원화 약세의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원·엔 환율은 지난해 6월 100엔에 890원대까지 하락해 '엔저(低)' 우려를 키웠다.
국내 수출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던 엔화가 최근 강세로 돌아선 만큼 수출에 긍정적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환율이 오른다고 꼭 좋아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지적도 있다.
원화 약세가 계속된다고 해도 세계 경제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이 좋아지긴 힘들다는 것이다.
◆ 일본 경제, 2분기 만에 마이너스 성장하나
일본 외환시장에서는 엔화 가치가 단기적으로 1달러에 110엔 위로 오를 가능성을 배제하지않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좀처럼 잦아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와 기업들의 결산(3월)을 앞둔 2~3월은 일본 기관투자가와 수출기업이 벌어들인 외화를 엔화로 바꿔 일본으로 들여오는 시기여서 엔화가 강세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케오 가즈히토 게이오대 교수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구로다 총재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은 (그가 말한) '정책에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일 뿐"이라며 "'할 수 있다'는 것과 '효과적인 방안'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엔화 강세가 이어지면 아베노믹스에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 실적 개선을 통한 임금 인상과 투자 확대로 일본경제를 회복시킨다는 구상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제성장률 추정치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일본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10~12월)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추정치(평균)는 -0.76%(연율 기준)다.
일본 내각부는 15일 지난해 4분기 GDP 증가율 잠정치를 발표한다.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