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현대캐피탈
현대캐피탈의 질주는 끝나지 않았다.
9일 천안에서 펼쳐진 현대캐피탈과 OK저축은행의 시즌 5번째 맞대결에서 현대캐피탈이 세트 스코어 3-0으로 승리. 파죽의 12연승 행진을 이어나갔다. 또한 현대캐피탈은 이날 승리로 1위 OK저축은행과 승점 2점차로 좁혔다. 반면 5라운드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으며 퍼팩트 연승을 이어가던 OK저축은행은 5연승을 마감했다.
올 시즌 최종 순위와 별개로 현대캐피탈은 V리그에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 것이 매우 고무적인 부분이다.
지난 시즌까지 현역 선수로 뛰었던 최태웅 감독은 시즌 종료와 함께 신임 사령탑에 올랐다. 이는 매우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많은 이들의 우려 속에서 시작된 최태웅 감독의 감독 데뷔 시즌은 현재까지의 성과만으로 성공한 시즌으로 볼 수 있다.
최태웅 감독은 ‘스피드 배구’를 선언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포부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시즌 초반 오레올을 제외하고는 노재욱 세터와 호흡이 전혀 맞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일각에서는 스피드 배구가 아닌 ‘스피드 몰빵’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또한 배구인들도 최태웅 감독의 시도를 응원하면서도 문제점을 더욱 부각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이들의 우려를 뒤로하고 현대캐피탈은 새로운 배구 색깔을 입히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시즌 전 리그 최하위 후보로도 거론됐던 현대캐피탈이 시즌 중반 이후 새로운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상위권에서 레이스를 펼쳤고, 현재는 선두 탈환을 넘보는 위치까지 올라왔다.현대캐피탈의 선수 구성원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트레이드를 통해 노재욱 세터가 새롭게 합류했고 외국인 선수가 바뀌었을 뿐이다. 신영석이 합류했지만 이는 최근 일이다. 그럼에도 한 시즌 만에 다른 팀이 됐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대캐피탈은 여전히 변화를 하고 있고, 점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 더욱 기대가 된다.
V리그 출범 후 현대캐피탈은 높이를 앞세운 토털배구를 펼쳤다. 그리고 2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에 대항해 삼성화재가 외국인 공격수의 높이를 앞세운 일명 몰빵 배구로 V리그를 평정했다. 그러자 V리그의 모든 팀들은 강력한 높이를 앞세운 외국인 선수를 선호하게 됐고 삼성화재의 스타일을 모두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외국인 공격수에 절대적인 의존을 하는 배구를 하면서 좋게 말하면 역할 분담, 나쁘게 말하면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면 사실상 역할이 축소 됐다. 미들 블로커들은 가끔 속공을 하는 것이 전부였고 레프트 공격수들은 외국인 선수를 위한 또 다른 리시버로 전락했다. 이런 풍토는 한국 배구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현대캐피탈의 새로운 시도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물론 현대캐피탈에서 처음 시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라이트 공격수가 중앙에서 공격을 시도하고 중앙 공격수가 라이트 공격을 하는 모습도 종종 보여준다. 토종 레프트 포지션의 선수도 리시브만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블로킹과 가끔 속공이 전부였던 중앙 공격수의 역할도 확대됐다. 리시브가 흔들리더라도 윙 공격과 같은 속공을 하기도 한다.
현대캐피탈은 스피드 배구라고 내세우지만 사실 과거보다 업그레이드 된 토털 배구를 구사한다고 할 수도 있다. 실업리그 시절처럼 선수들이 주포지션은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팀들이 똑같은(?) 배구를 하고 있는 V리그에서 현대캐피탈의 과감한 시도는 매우 파격적이면서도 다른 색깔의 배구로 팬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물론 리그와 한국 배구가 추구해야 하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현대캐피탈의 연승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분명 관심사다. 하지만 그보다 최태웅 감독이 추구하는 배구가 완성됐을 때 현대캐피탈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매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