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르기 그로저 (사진 = 삼성화재)
투혼과 선수생명을 맞바꿔도 되는 것일까?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투혼'을 매우 중요시한다. 선수가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출전한다면 많은 이들은 박수를 보낸다. 분명 박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프로에서 부상에도 불구하고 투혼으로 포장한다는 것은 옳은 일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삼성화재는 V리그 출범 후 처음으로 봄 배구 탈락 위기에 놓여 있다. 아직 시즌이 종료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코칭스텝과 선수단은 봄 배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어느 팀이든 가능성이 사라질 때 까지 최선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선수생명과 포스트 시즌 진출을 맞바꿔서는 안 된다.
삼성화재의 절대적인 에이스 괴르기 그로저는 최근 무릎 통증을 느꼈고 검진 결과 건염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앞서 지난 1일 한국전력과 경기에서 매우 힘겨운 모습을 연출했고 삼성화재는 2-3으로 패배를 당했다. 이후 3일 대한항공과 경기전까지 그로저의 출전이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로저는 스타팅으로 경기에 나섰고 1세트부터 4세트까지 모두 소화를 해냈다. 또한 그로저는 33득점 공격성공률 56%를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팀 입장에서는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선택을 한 것이다. 설령 그로저가 외국인 선수라고 해도 그의 선수생명은 보호받아야 한다. 이미 관행(?)처럼 굳어진 외국인 선수의 혹사로 "이전에는 더 했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물론 경기 후 임도헌 감독은 "그로저가 강하게 출전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지만 이는 국내 프로스포츠 지도자라면 고정된 멘트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선수들의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감독의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이 종료가 된다. 혹은 선수 스스로가 "팀을 위한 결정을 했다"고 하면 끝이다. 문제는 진짜 선수가 강력하게 요청한 경우도 있지만 감독의 판단에 이루어지는 사례가 더 많다는 것이다.
운동선수 그리고 프로 선수에게는 몸이 재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선수를 혹사 시키는 것은 사라져야 한다. 이는 결코 삼성화재와 임도헌 감독을 표적삼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로저의 경우는 하나의 사례 일뿐이고 국내 프로스포츠의 잘못된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종종 국내 선수들에게도 투지와 투혼을 요구하는 지도자들도 있다. 또한 일부 지도자들은 외국인 선수가 팀 공격의 50% 이상을 책임짐에도 불구하고 투지와 투혼이 없다고 선수를 비난하기도 한다. 종목은 다르지만 프로야구도 이런 사례가 많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잘못된 사고방식을 투지와 투혼으로 포장해서 선수생명을 맞바꾸려 하는 것일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들도 보호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국내 선수가 해외 진출을 해 마구잡이로 혹사를 당한다면 과연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어떤 말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