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동주’, 웰메이드 영화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입력 2016-02-05 09:01


[조은애 기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그의 시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가 보낸 청춘이 어떤 색깔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다. 그런 의미에서 ‘동주’는 고마운 영화다.

‘동주’는 1945년 스물아홉 짧은 생을 형무소에서 마감한 윤동주 시인과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빛나던 청춘을 그렸다. 내성적인 성격의 문학청년 동주는 시인의 꿈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창씨개명을 요구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시를 통해 아픔을 삭인다. 그런 동주의 옆에는 암울한 시대에 맞서 거침없이 행동하는 몽규가 있었다. 신념을 위해 펜 대신 총을 잡는 그는 동주에게 평생의 벗이자, 라이벌이었다.

분명 윤동주와 송몽규는 동시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절망적인 시대에 맞서는 법도, 문학을 대하는 방식도 서로 달랐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소신대로 자신만의 길을 걸었던, 그 시절 청춘이었을 뿐이다. 이처럼 두 사람의 대비되는 삶은 당시 청춘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외로움을 선명히 드러낸다. 특히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송몽규의 이야기는 윤동주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었던 영화적 서사의 풍성함을 더한다.

주목할만한 점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을 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윤동주의 질투, 패배심, 열등감, 승리감 등 인간적인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 ‘인간 윤동주’의 초상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의 인간적 면모는 송몽규와의 관계를 통해 더욱 극대화된다.



‘동주’가 웰메이드인 이유에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극 중 윤동주 시인 역의 강하늘은 그의 섬세한 감정변화를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백석의 시집을 안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부터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보낸 생의 끝까지, 그는 말갛게 빛나는 눈빛, 시선, 숨소리 하나 허투루 내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강하늘의 담담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윤동주의 시는 강력한 울림을 전한다.

여기에 그와 호흡을 맞춘 박정민 역시 송몽규의 고뇌와 패기를 완벽히 표현하며 몰입도를 높였다. 촬영 전 송몽규의 묘소를 방문하며 마음을 다잡았다는 그의 연기 고민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듯하다. 이미 독립영화계에서 탄탄한 연기 내공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크게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동주’는 제작비 5억 원을 살짝 웃도는 저예산 영화다. 하지만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소재와 배우들의 연기, 연출력까지 웰메이드 영화의 필요충분조건을 두루 갖췄다. 특히 3D 영화에 익숙한 요즘 관객들에게 다소 생경할 수 있는 흑백 연출은 오히려 신의 한수였다는 평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흑백 사진 속 윤동주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싶었다”는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채색되지 않은 화면 속 인물들이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듯 묘한 생동감을 주는 것은 물론, 이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가슴에 깊게 박힌다.

물론 다가오는 2017년이 윤동주-송몽규 탄생 100년 해라는 점이야말로 '동주'가 반갑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100년이란 숫자가 가지는 의미를 넘어서, 교과서에서 활자로만 읽히던 윤동주의 시가 어떤 배경을 거쳐 탄생했는지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더불어 살아생전 시인의 꿈을 이루지 못한 윤동주의 젊은 날은 물론, 후대에 크게 이름을 남기지 못한 송몽규의 아름다웠던 '과정'을 ‘동주’로 기억하게 됐음이 다행스럽다. 2월 18일 개봉.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eun@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