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심 작명소] 2% 부족한 드라마 제목을 위한 제언

입력 2016-02-01 18:23


MBC '내 딸, 금사월' -> '섬뜩한 신득예'

'내 딸, 금사월'(이하 금사월)은 시청률이 35%에 육박하며 평일드라마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MBC의 간판 드라마로 떠올랐다. 특별한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욕하면서도 보게 만드는 막장 드라마의 공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정통 막장 드라마다. 내용은 주인공 금사월(백진희 분)이 복수와 증오의 감정에 휩싸여 풍비박산 난 한 가정을 다시금 재조립하고 그 속에서 가족애를 발견해 나가는 훈훈한 휴먼스토리를 기반으로 한다. 여기서 금사월은 강만후(손창민 분), 신득예(전인화 분) 등의 쟁쟁한 중견 배우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악으로 버텨내는 캐릭터다. 그러나 금사월 속 금사월은 드라마 타이틀에 어울리는 이름값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강만후, 신득예 등의 캐릭터가 제대로 된 막장 연기를 펼치며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지난 주말 방송에서 신득예는 친딸과 남편의 혼외아들을 결혼시키며 금사월을 복수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섬뜩한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 '양들의 침묵' 시리즈에서 살인마 한니발을 전면에 내세우며 '한니발'이라 타이틀을 지었듯이 금사월 역시 '섬뜩한 신득예' 정도로 바꾸는 게 알맞아 보인다. 그래야 뭔가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현재보다는 극단을 향해 치닫는 드라마 분위기를 잘 반영하기도 할테고.





SBS '육룡이 나르샤' -> '2015 용의 눈물'

제목만 들었을 땐 이제 드라마 제목도 막장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나의 무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육룡이 나르샤'라는 표현은 현대 인터넷 세대의 조악한 언어가 아니라 세종대왕의 그 유명한 용비어천가 1장에 표기된 순우리말이었던 것이다.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부터 태종 이방원 등의 조선건국 당시 왕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육룡을 다르게 정의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 드라마로 인해 인터넷 검색에서 '수혜 아닌 수혜'를 입은 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나르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제목을 '2015 용의 눈물'로 바꿔보면 어떨까? '용의 눈물'은 20여 년 전에 KBS에서 방송된 드라마였지만 당시 이방원 역을 맡았던 유동근의 비중이 크게 다루어졌던 걸 떠올리면 드라마에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양산하는 유아인과 그 성격이 닮아 있다. 곧 본격적으로 그려질 왕자의 난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 될 걸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유아인은 작년 SBS 연기대상에서도 이 드라마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년 전 용의 눈물이 오버랩되는 육룡이 나르샤에는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까?





KBS '무림학교' -> '전투화'

초기의 결연한 의지에 비해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대학교 학점 시청률'이라는 오명을 안으며 벌써부터 조기종영를 예고하고 있다. 1차원적인 제목만 보면 뭔가 학교에서 무예에 능한 학생들의 난투극이 벌어지고 그 사이에서 로맨스가 피어날 것만 같다. 예상은 그대로 적중한다. 작품 소개에서도 '무림캠퍼스에서 벌어지는 20대 청춘들의 액션 로맨스 드라마'로 정의하고 있다. 안될 노릇이다. 'SIMPLE IS THE BEST'라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경구 속 가르침은 잘 이어받았지만 단순하기만 할 뿐이다. 제목 안에 응축된 무언가로 하여금 시청자를 끌어들여야 한다. 무협 영화 '화산고'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이 바람직한 작명의 예라 하겠다. 바로 옆동네의 '육룡이 나르샤'는 도대체 왜 제목이 저 모양인지 궁금증을 느낀 시청자들을 TV 앞에 앉히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감히 '전투화'라는 제목을 제안해 본다. 여기에는 '전투(액션) 속에서 피어나는 꽃(로맨스)'이라는 나름의 심오한 작명 의도가 담겨 있다. 꽃미남 배우 이현우와 떠오르는 여배우 서예지가 나오는 드라마에 왜 전투화라는 제목이 붙었는지 궁금해서 보지 않고는 못 배길 거다. 여기에 제대 후 미화된 군 시절의 추억을 가진 대한민국 320만 예비군을 TV로 끌어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