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노래는 2036년에도 재생될 수 있을까?

입력 2016-01-21 16:26




MBC '무한도전-토토가'로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복고 음악 열풍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해체했던 구시대의 아이돌마저 완전체로 복귀하게 만들 정도니. 

얼마 전 종영한 tvN '응답하라 1988' 최종회는 평균 19.6%, 최고 21.6%의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OST 역시 말 그대로 '초대박' 행진을 이어간다. 혁오밴드의 오혁이 부른 1985년 발표된 이문세의 '소녀'외에도 김창완 밴드의 김창완이 피처링에 참여한 1981년 발표된 산울림의 곡 '청춘' 등 거의 모든 곡이 순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은 야다, 노이즈, 김돈규, 정재욱 등 시쳇말로 '고인'이 됐던 '옛날' 가수를 추억하는 프로그램이다. 시청률은 유재석과 유희열 투톱을 앞세운 것치고는 2%대로 높지 않지만, 화제성만큼은 동시간대 다른 프로그램 못지않다. 





#감성

이렇게 80, 90년, 2000년 초반의 노래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관심을 얻고 사랑받는 데는 감성이란 녀석의 역할이 지대하다. 

감성은 계량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개인의 영역이고 한 대상에 대한 인간의 감성은 다양한 방향과 방법으로 표출되기 나름이다. 하지만 그런 감성이 일정한 규칙을 갖고 방향성을 갖게 되기도 하는데 그게 바로 '공감대'라는 것이다. 

이렇게 한 번 생성된 공감대는 개인의 감성보다는 긴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강력하다. 당시 음악 프로의 1위를 차지했던 곡들이 몇 주간 아니 몇 달동안이나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공감대가 바탕이 된다. 

그런데 최근 발표되는 노래는 감성과 공감이라는 측면보다는 판매가 우선되고 있다. 자신들을 소비하길 바랄 뿐이지 더는 노래를 통한 공감을 요구하지 않는다. "내 노래를 들어줘"가 아닌 "내 노래를 사줘"라고 외치는 듯하다.

물론, 셀 수 없이 많은 신인의 등장, 다양화된 대중의 요구 등 과거와는 판도를 달리하는 가요계에서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다. 덕분에 노래 한 곡, 앨범 하나의 생명력은 한 달을 넘기기 힘들다. 그래서 무게가 실린 정규 앨범보다 가볍고 쉽게 소비가 가능한 미니 앨범, 디지털 싱글 등이 등장한다. 



#가사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의 시작점은 어딜까. 바로 노래의 가사다. 

'요즘'의 노래는 '요즘' 사람조차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트렌디하고 난해하다. 부모님 세대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 듣지도 못하는 노래를 뭘 듣고 있느냐"며 아이돌 노래를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때 가수가 '노래를 하는 직업이 아니라 춤추는 직업이 아니냐'는 비판이 돌던 이유도 이와 궤를 함께한다. '들리는' 가사보다 '보이는' 춤이 더 강렬하고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가 '공감'하고 '열광'하는 그 시절의 노래는 어떨까. 가사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지금도 알 수 있다. 표현은 시적이며 아름답다. 가사에는 '기승전결'의 흐름이 있어 감정의 이입도 쉽다. 

반면, 요즘 노래는 그러하지 못하다. 노래의 흐름보다는 어떻게든 대중의 뇌리를 스쳐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 잡고 있다. '후킹' 역할을 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가사의 반복으로 대중에게 어필한다. 최근 다시 돌아온 '그 시절' 가수들마저 '그 시절'의 감성을 잃고 그저 그런 '감성팔이'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과연 지금 시대의 노래로 20년 뒤에도 공감할 수 있을까? 2016년의 노래는 2036년에도 재생될 수 있을까? 굳이 강산이 두 번 바뀐 뒤에 살고 있을 후손들이 현재 우리의 '감성'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냥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자료가 되도 상관없다. 

미래의 그들이 공감할 수 없다해도 이는 가수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를 소비하는 대중 역시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노래의 생명력은 가수와 대중 사이의 그 어딘가에서 결정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