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 눈에 띈다. 영화가 개봉하면 원작 소설도 함께 관심을 얻으며 판매율이 높아지기도 한다. 이런 경향을 반영하듯 영화와 소설의 결합에 따른 신조어도 생겼다. 영화를 뜻하는 스크린(screen)과 베스트셀러(bestseller)를 합친 스크린셀러가 그것이다. 스크린셀러는 영화로 제작돼 주목받는 원작 소설 또는 흥행한 영화를 소설화한 작품을 뜻한다.
잘 써진 이야기는 다양한 장르로 분화되어 관객들, 또는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소설과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사례가 되어 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같은 내용을 다룬 한국경제TV MAXIM의 기사 ['스크린셀러' 영화 속으로 들어온 문학의 재탄생①]편에 이어 스크린셀러 작품을 소개한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5)
"죽을 뻔했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대사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형수 정윤수(강동원 분)가 사형 집행 바로 전 식사를 하다 목에 사레가 걸려 물을 마신 후 내뱉은 말이다. 이 대사는 곧 죽음을 맞이할 사형수의 내면에 자리 잡은, '살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은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언제 올지 모를 그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죽음만을 생각하던 윤수는 유정(이나영 분)과 만난 후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부유하고 능력 있는 집안의 딸인 유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할 만큼 삶에 대한 애정이 없다. 외면의 화려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초라한 내면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이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여자와 살고 싶어도 죽어야 하는 사형수가 한 공간에서 운명처럼 만난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1시까지, 일주일에 단 세 시간의 만남을 가진다. 첫 만남의 서늘한 눈빛은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뀌며 이 시간은 그들의 '행복한 시간'이 된다.
영화는 원작의 이야기를 대부분 충실히 반영한 편이지만, 슬픔이 절정에 이르기 직전에 다음 장면으로 이동하며 두 주인공의 아픔을 축소했다는 점에서 원작과 차이가 있다. 또 유정과 윤수 사이에 존재했던 주변 인물들의 관계가 많이 생략됐다. 그 빈자리는 오롯이 두 배우가 채워야 했고, 이나영과 강동원은 완벽한 연기를 보여줬다.
◆우아한 거짓말(2009)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이한 감독의 영화 '우아한 거짓말(2013)'은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 '우아한 거짓말'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김려령의 '우아한 거짓말'은 평범해 보이던 열네 살 소녀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유서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동생 천지(김향기 분)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언니 만지(고아성 분)는 동생이 남긴 흔적을 찾게 되고, 숨겨져 있던 진실을 파헤친다.
자살, 왕따.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뤘지만, 이 영화는 천지를 죽게 만든 원인보다 천지가 가족들에게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말할 수 없었던 이유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죽은 천지의 내레이션을 통해 고통을 털어놓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폭력을 그리는 자극적인 장면보다는 절제된 장면이 주를 이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화목해 보이지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는 가족. 괴롭힘 당하는 걸 보면서도 침묵하는 친구들. 영화는 무관심하고 방관하는 것에 익숙해진 인간 관계를 꼬집는다.
◆내 심장을 쏴라(2009)
"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문제용 감독의 영화 '내 심장을 쏴라(2014)'는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수리희망병원이라는 정신병원에서 만난 스물다섯 동갑내기 두 청춘이 인생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스토리를 담았다. 각자 다른 이유로 정신병동에 들어온 승민(이민기 분)과 수명(여진구 분)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정신병원을 탈출한다.
원작이 병동 안에서 있었던 일과 주변 인물을 상세하게 그리며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렸다면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원작에서 조연 캐릭터의 존재감이 상당히 컸기 때문에 영화에서 주변 인물 상당수가 빠진 점은 아쉽다. 원작에 비해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원작의 유쾌함과 뭉클함은 그대로 살렸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2007)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고, 세상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있어. 그러니까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면서 살지는 마렴"
스웨덴 감독 플렉스 할그렌의 영화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2013)'은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이 지난 2007년에 발표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전 세계 500만 부 이상 판매된 특급 베스트셀러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1905년 스웨덴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살아온 백 년의 세월을 코믹하고도 유쾌하게 그렸다. 주인공 알란이 100세 이전에 겪은 모험담과 100세 이후의 양로원 탈출 사건을 교차해 보여준다. 계속되는 우연과 과장된 설정이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지만, 작가는 알란이 겪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긴다. 철학적이면서 유쾌한 알란의 여정 속에서 우리의 인생이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원작에 비교하면 영화는 좋은 점수를 주기에는 아쉽다. 114분의 러닝타임에 책 속의 내용을 모두 담아내지 못했다.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본다면 연결이 어색한 부분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원작에서 말하고자 하는 노익장의 삶의 지혜는 영화에서도 잘 표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