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은 먹을거리에 보수적이다.
늘 먹고 마시던 제품에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
오래전 출시된 제품들이 꾸준히 사랑받는 반면, 수없이 쏟아지는 신제품들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기 십상인 이유다.
그러나 처음부터 '장수'하는 제품은 없다.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끊임없는 혁신과 연구개발(R&D)이 필수적이다.
최근 '대박' 제품들의 성공 이면에도 R&D 노력이 있다.
지난해 '짜왕'과 '맛짬뽕' 등으로 굵은 면 열풍을 몰고 온 농심은 면발 혁신에 집중했다.
농심 면개발팀원들은 2013년 초여름 차세대 면발 개발에 착수했다.
10명의 연구원은 칼국수면에서 모티브를 얻어 1년 만에 굵고 납작한면 개발에 성공했다.
생면의 쫄깃함을 그대로 구현하면서 시간이 지나도 쉽게 퍼지지 않는 면발을 위해 면 내부의 열 전달률을 높이고 수분 침투는 지연시키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농심은 "짜왕에는 3㎜ 면발에 다시마 가루를 넣었고 맛짬뽕 면발에는 굴곡을 만드는 등 굵은 면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며 "올해에는 기름에 튀기지 않는 방식의 건면(乾麵)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짬뽕라면 전쟁을 선도하고 있는 '진짬뽕'을 개발한 오뚜기 연구진은 중화요리용 팬인 웍(Wok)의 원리로 불맛을 냈다.
채소를 기름에 볶을 때 순간적으로 표면 수분이 증발돼 그을리면서 발생하는 향을 요리에 입히는 방식이다.
또 면발이 굵어질수록 자칫 겉 부분만 익고 속은 덜 익은 식감이 나타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면폭이 3㎜ 이상인 '태면(太麵)'을 만들었다.
진한 국물을 위해서는 국내 짬뽕 전문점뿐만 아니라 일본의 짬뽕 맛집까지 찾아 닭과 사골 육수를 개발했다.
국내 만두시장 사상 최초로 단일 브랜드 월 매출 100억원을 돌파한 CJ제일제당 '비비고 왕교자'의 성공도 과감한 R&D 투자의 결실이다.
20년 넘게 만두만 개발한 수석연구원을 중심으로 총 9명이 담백하면서도 물리지 않는 만두 만들기에 골몰했고, 개발까지 총 2년이 걸렸다.
CJ제일제당은 고기와 채소를 갈아서 만두소를 만들던 기존 제조방식을 포기하고 재료를 칼로 써는 공정을 새롭게 도입했다.
이를 통해 돼지고기를 손상시키지 않고 보존하면서 원물 그대로의 조직감과 육즙을 살렸다.
경기도 수원에 통합 R&D 센터를 운영 중인 CJ제일제당은 고체형 건더기 블록 대신 '비비고 왕교자' 외에도 액상 소스를 사용한 '햇반 컵반' 등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 외 달콤한 감자스낵 열풍의 주역인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과 과일맛 소주를 유행시킨 롯데주류의 '순하리 처음처럼' 등도 한발 앞선 기획과 개발로 시장을 뒤흔들었다.
감자스낵은 짜다는 고정관념을 깬 '허니버터칩'은 품귀 현상이 빚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며 감자스낵 시장 전체 규모를 키웠다.
해태제과는 허니버터칩에 이어 허니통통으로 과일맛 감자스낵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순하리'는 과즙과 향이 들어 있는 소주 바탕의 칵테일 주류로, 알코올 도수가 일반 소주보다 낮은 14도이다.
순하리의 '대박'에 경쟁사들이 서둘러 비슷한 제품을 내놓으며 주류시장에 한동안 저도주 열풍이 일었다.
순하리를 비롯해 클라우드, 롯데리아 강정버거, 롯데제과 말랑카우 등은 롯데 식품 계열사들의 연구 기능을 모은 롯데중앙연구소가 개발한 제품들이다.
롯데그룹은 내년 6월 서울 마곡산업단지에 새 통합식품연구소를 열 계획이다.
2,200억원이 투입되는 이 연구소는 현재보다 5배 이상 크며, 연구 인력도 300여명에서 600여명으로 늘어난다.
최근 적극적인 R&D를 통해 성공하는 제품들이 나오고 있지만 국내 식품업계는 여전히 타사의 성공한 제품을 베끼는 '미투(me too)' 전략에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식품업계에 도미노 가격 인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가격보다는 획기적인 신제품으로 수익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 국내 식품업계의 R&D 투자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내 식품업체들의 연구개발비는 매출액의 0.69%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제조업 평균인 3.09%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같은 조사에서 R&D 조직을 보유한 식품기업의 매출은 3년간 30% 증가해 전체 식품제조업 매출 증가율 18%보다 높았다.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