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곱씹게 된다, 어쩐지 자꾸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입력 2016-01-07 13:59
[김민서 기자] 멜로가 미스테리를 품었다. '기억상실'이라는 통속적인 소재가 뻔하지 않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는 교통사고로 인해 10년의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 석원(정우성)과 그 주변을 맴도는 여자 진영(김하늘)의 사랑을 그린 작품.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담고 싶었다"던 배우와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남녀의 진한 멜로를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제 실종신고를 하고 싶습니다"라는 담담한 석원의 말로 시작된다. 시작부터 퍼즐조각을 던져준 셈이다. 그렇게 석원의 시선을 따라 차근차근 증거를 찾아가다보면, 결국은 멜로다.

석원은 기억을 잃었다기엔 참 담담하다. 잃어버린 기억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혼란은 금세 찾아온다. 기억의 부재를 극복하는 것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기 때문. '괜찮다' 싶으면 불현듯 튀어나오는 조각난 기억이 괴롭다.

그런 석원에게 다가간 진영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기억을 되찾고 싶어하는 석원을 보며 진영은 초조해한다. 이들은 평범한 연인처럼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하지만 쉴새없이 불안감을 표출하며 관객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가 찜찜하다.

기억을 찾으려는 석원, 이를 거부하는 진영의 갈등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갈등이 절정에 이르고, 석원의 기억이 완성되면 진영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는 진영(김하늘)의 영화다"라던 정우성의 말처럼, 모든 것이 진영으로 귀결된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이윤정 감독의 첫 장편 영화. 그 만큼 신선한 시도들이 곳곳에 배치 돼 있다. 캐릭터들의 심리가 반영된 공간적 배경의 설정부터,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까지. 하나를 놓치면 또 하나를 놓치게 되는 이야기의 흐름도 꽤 흥미롭다.

한편으론 영화 중반까지 관객이 배제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불친절한 감정선의 흐름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불친절함이 실은 이 영화의 묘미라는 것을 깨닫는 것도 순간이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불완전한 전개는 석원의 불안정한 기억과 심리, 잠재의식을 대변하는 하나의 장치와 같다.

자칫 멜로가 미스테리에 휩쓸려 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잘 피해갔다. 여기엔 김하늘과 정우성이 한 몫 했다. '김하늘표 멜로', '정우성표 멜로'가 엎치락뒤치락 한다. 복잡하고 불안한 진영은 때때로 사랑스러워야 했고, 김하늘은 그 경계를 잘 넘나들었다. 정우성의 공허한 눈빛은 긴 여운을 남긴다.

영화가 참 독특하다. 기억을 곱씹는 것처럼 이 영화도 자꾸 곱씹어야 한다. 한 장면, 한 장면 곱씹는 묘미가 있다. 석원의 시선을 쫓다보면 진영을 알게 되는 이 영화, 단순 멜로가 아니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멜로다. 러닝타임 106분. 1월 7일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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