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기업의 신용등급 강등 건수가 1998년 이후 연간 기준으로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국경제신문이 보도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출이 어려워진 데다 내수 부진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의 실적과 재무 상태가 급격히 악화한 결과다.
국내 신용평가업계는 중국 경기 둔화와 유가 하락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불확실성이 올해도 계속되면서 대부분의 기업이 낮아진 신용도를 회복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신용등급 강등 17년 만에 '최다'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의 '2015년 신용등급 변동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들 3사는 지난해 기업 신용등급을 총 168차례(부도기업 제외) 낮췄다.
이는 1998년(171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평가사별로는 한국기업평가가 57건, 한국신용평가가 56건, 나이스신용평가가 55건이었다.
신용평가사 한 곳당 피평가업체가 약 400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 일곱 곳 중 한 개꼴로 신용등급을 떨어뜨린 것이다.
반면 지난해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올린 건수는 SK(주)(AA0→AA+)와 SK하이닉스(A+→AA-), 쌍용양회공업(BBB0→BBB+) 등 총 37건에 그쳤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본부장은 "지난해 국내 자본시장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기업들의 신용등급 줄강등 사태였다"며 "그 여파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회사도 속출했다"고 말했다.
업종별로는 건설, 조선, 정유, 철강 등 '수출 절벽'에 부딪힌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제조업체의 타격이 가장 컸다.
이 업종에서는 1년 동안에만 신용등급이 두 단계 이상 급락(LRC·large rating changes)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건설·엔지니어링 회사 중에선 해외 부실 우려가 불거진 GS건설(A+→A0), SK건설(A0→A-), 삼성엔지니어링(A+→BBB+), 한화건설(A-→BBB+) 등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됐다.
해외 플랜트 부문에서 생긴 손실로 지난해 3분기까지 총 7조3천억원대 영업손실을 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의 신용등급은 각각 2~6단계 급락했다.
중국의 철강 수요 부진으로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철강회사(포스코, 세아창원특수강, 동국제강 등)와 국제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정유회사(SK에너지, GS칼텍스 등)도 등급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4월 1995년부터 20년간 유지해온 최상위 신용등급(AAA)을 박탈당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 "올해는 더 어렵다"
국내 대표 기업조차 신용등급이 줄줄이 낮아지면서 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신용등급이 떨어진 한 대기업 관계자는 "실적 개선이 느린 건 맞지만 자구 노력을 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며 "신용평가사들이 섣불리 등급을 떨어뜨려 위기감만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신용평가사들은 올해 기업들의 사정이 지난해보다 좋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올해 경영 환경이 어두운 업종이 전체 평가 업종 22개 중 10개에 달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1년 전 6개 업종에서 4개 더 늘어났다.
장기 취약 업종으로 꼽혀온 건설, 조선, 철강, 해운 외에도 디스플레이, 은행, 신용카드, 호텔이 추가됐다.
전망이 밝은 업종은 유가 하락의 수혜를 받는 항공 등 2개에 그쳤다.
나이스신용평가도 전체 41개 업종 중 14개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조선사들은 해양 플랜트 부문의 부실 가능성이 남아 있고, 철강사들도 철강 소비 둔화세가 지속되면서 해외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주택 분양 열기에 힘입어 반짝 호황을 누렸던 건설사에대해서도 "지난해 같은 호실적을 유지하기 어려운 데다 해외 사업에서도 부실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성장 한계에 직면한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지연되면서 올해도 지난해와 같은 신용등급 강등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