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장재인이 컴백했다. 투병으로 음악 활동을 쉰 지 3년 만이다. 미니앨범 'LIQUID'는 지금껏 장재인이 보여준 음악에서 더욱 담백하고 깔끔해진 포크 넘버가 가득했다. 또한 성장과 변화도 담겨 있었다. 그녀는 앨범 전 곡을 작사하는 성과를 보였다. 그리고 몸에 붙어있는 것만 같던 기타를 내려놓고 노래했다. 그렇게 살풋한 미소만 짓던 겁 많은 소녀는 좀 더 나른해진 처녀로 돌아왔다. 그리고 올해 겨울, 장재인을 만났다. 그녀가 말하는 올해의 후련함과 아쉬움. 그리고 내년의 기대.
올해 장재인의 컴백은 당신이 그간 앓았던 희귀병을 고백하면서 이목을 모았다. 근긴장이상증. 사람들이 잘 모르는 병이다. 이젠 좀 어떤가?지금은 더 괜찮아졌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좀 흔치 않은 증상이지만, 뮤지션 중에는 앓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안다. 장기하 오빠도 드럼을 치다가 이 증상 때문에 보컬로 변경했다고 하고.
병의 원인이 기타였나?전적으로 기타 때문은 아니다. 여러 가지 스트레스 등 복합적인 게 많다. 지금은 치료나 운동 등으로 증상이 많이 완화됐다. 이걸 병이라고 생각하고 이겨내려 하니 되려 고통스럽더라. 오히려 ‘이게 내 몸이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게 낫다.
미니 앨범 활동이 대부분 보컬 위주였다. 병의 영향인가?물론 기타를 못 치는 건 아니다. 당장 어제만 해도 기타를 치면서 공연했다. 여태껏 기타 치며 노래해 온 연습량이 있어서 몸에 익은 게 있다. 다만 악기는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야 하는데 그게 예전만큼 수월하지는 않다. 노래는 오로지 성대를 쓰다 보니 소리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좀 더 낫고. 두 방식 다 장단이 있다.
아니면 아예 밴드를 하는 건 어떨까. 어릴 때 에이브릴 라빈을 꿈꿨다고 다른 인터뷰에서 말한 걸 봤다.처음에는 밴드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욕구가 강하다. 남들의 생각과 다른 방향을 보여주고 싶다.
지금까지 해온 결과물 중에서 스스로 생각해도 파격이 있었나?없다. 충분히 사람들이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움직였던 거 같다.
지금 예상 범위를 벗어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가?아니. 지금 하는 일이 딱히 없다. 논다.
너무 부럽다. 요새 제일 재밌고 즐거웠던 건?여행. 9월에서 10월 동안 유럽을 다녀왔다. 새로운 문화를 보니 시야가 넓어지더라. 다음 앨범이나 음악에 이 영감을 반영하고 싶다. 그러려면 윤종신 대표님을 설득해야 하겠지(웃음).
유럽 어디가 좋았나?베를린. 물가가 싸더라. 아보카도가 800원이다! 거리는 멋진 그래피티로 가득하고. 예술하기 좋은 환경이다.
최근 김예림 싱글 앨범 ‘Stay Ever’ 작사에 참여했다. 가사가 야릇해서 즐겁게 들었다. ‘LUQIUD’ 앨범에서도 섹슈얼한 상황을 그리는 가사가 많았고. 화법이 재밌더라. 영화로 치면 섹스신 보다 섹스 전후의 흥분되거나 노곤한 분위기를 그리는 듯하다.남들이 안 하는 걸 하려는 시도 중 하나였는데 만족스럽다. 장재인만의 문체와 어법이 있는 가사를 보여주고 싶다.
음악 말고 다른 재주가 있나?초등학생 때 미술이나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꽤 받았다.
누구나 그런 거 하나씩은 받잖아. 사실 다른 재주 없다고 하면 술 마시는 재주 있느냐고 물어보려 했다.예전엔 많이 마셨는데 지금은 잘 마시지 않는다.
방금 그 멘트는 한국 연예인 협회에서 인터뷰 메뉴얼로 정해주나 보다. 다들 판에 박힌 듯 똑같다. 주량이 얼마?정말 기억이 안 난다. 너무 안 마셔서... 와인 두 세잔 마시고 만다. 취하면 정신력으로 버틴다. 끝까지 멀쩡해 보여서 남들은 나를 잘 마신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스스로를 잡는 방법을 알고 있지.
어떻게?한번 실수해본 사람은 알 거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주량을. 그 시기가 왔다 싶으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거다. 그리고 걸어갈 때 합장을 하고 걷는다. 길거리의 반듯한 선 하나를 딱 잡고.
길거리의 반듯한 선을 딱 잡고 합장한 채 오로지 직진하는 여자를 보면 세상 모두가 저 여자 취했다고 생각한다.아니다! 제일 빠르게 앞을 걸어가면 모른다! 그리고 집 가면 쓰러진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많은데? 그런데 점점 방송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데뷔 초에는 예능에 꽤 나왔는데 말이다. 물론 예능이 그렇게 맞는 옷 같지는 않았지만.회사가 생각하는 가수의 이미지가 있으니까. 이번 앨범 활동은 예능에서는 조금 빠지는 느낌이었다. 내 생각도 있지만, 회사를 비롯한 전체의 의견을 따르자는 주의다.
그럼 장재인 본인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데 주위 사람들이 안전하게 가자고 설득하면?이번 앨범이 그랬다. 윤종신 PD님께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가사의 주제 등을 비롯해 앨범 전체의 장르나 느낌까지 PD님 의견을 많이 따랐다. 다음 앨범에서는 내 의견도 반영해 볼 생각이다. 나만의 목소리를 낸다는 건 멋있는 일이고, 설령 미숙하더라도 그걸 잃으면 안 된다.
잘하는 사람 의견을 따르는 게 손해는 없으니까. 손에 타투는 언제 했나?20대 초에 했다. 몸 여러 군데에 있는데 한 번에 했다.
아직도 장재인을 기타 치는 순진한 소녀로 생각하는 남자가 많다. 타투는커녕 남자도 잘 모르는.이 직업을 시작하고 너무 재밌는 게 모든 사람이 나를 다르게 생각한다. 그래서 더 담담하려 한다. 혹시나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의 견해에 휩쓸리면 내가 금세 없어지는 거다. 사람들 말은 ‘그냥 그렇구나’라고 듣고, 내가 나를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
확실한 건 비율은 무척 좋다고 생각한다.고맙다(웃음). 나도 내 몸을 좋아한다. 가수를 하고 나서 이런 점이 참 좋다.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됐다는 것. 이전에는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데뷔하고 난 후 매거진 촬영 등에서 사진 작가님들이나 에디터님들이 외모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해줬다. 그때마다 너무 즐겁고 모델의 재미를 알게 되면서 자기애가 생긴 거 같다.아, 내가 예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당연하지. 예뻐 죽겠다. 그럼 가수가 되고 나서 후회하는 건 없나?일에 기복이 있다는 점. 어떤 직업을 갖게 되면 고정적인 시간과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서게 되는데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고정적이지 않다. 일이 들어올 때는 너무너무 바쁘다가도, 갑자기 일이 없어지면 어떤 걸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당황스럽다. 연예인 생활을 오래 한 분들은 나름의 노하우를 찾더라. 나도 찾아가는 중이다.
어떤 노하우를 찾았나?주로 배우는 쪽에 집중한다. 레슨이나 운동 같은. 사실 올해에서나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했지, 그전까지는 안절부절이었다.
혹시 연기 레슨도 받나?받고 있다. 어릴 때부터 연기에 관심이 있었는데, 차마 내 길이 아닌 거 같아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아는 피디님의 연락으로 한 드라마에 엑스트라로 나갔다. 연기가 너무 재미있더라. 그 후로 좋게 말하면 신중함이겠지만, 1년 동안 고민만 했다. 그러는 중에 회사에서 계속 연기 쪽을 제안해서 마음을 굳히고 한창 연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