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편. 내년 글로벌 증시 최대 변수 '파이널 드로(final draw)' 현상이란?

입력 2015-12-28 07:56
수정 2015-12-28 09:38




275편. 내년 글로벌 증시 최대 변수 '파이널 드로(final draw)' 현상이란?

'유가 40달러 붕괴…석유수출국기구(OPEC) 깨지나', '1유로=1달러 깨진 유로…유럽통합 어떻게 되나', '금값 1천 달러 깨져…잠 못 이루는 투자자'.

내년 경제지 1면 톱에 오를 수 있는 '파이널 드루(final draw)'와 관련된 가상적인 제목들이다. 파이널 드루란 전쟁에서 뚫리면 패전과 직결되는 최후 방어선으로 재테크 변수에서는 '마지노선 붕괴'를 말한다.

유로화 환율은 구등가선인 '1유로=1달러'가 깨질 가능성이 높다. 구등가선은 1999년 유로화 출범 당시 11개 회원국과 미국의 경제규모와 같은 점을 감안해 설정됐던 출발선이다. 현재는 유로 회원국이 19개국으로 늘어나 '1유로=1.1달러'를 신등가선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구등가선의 의미가 더 크다.

재정위기에 이어 난민, 테러 등이 새로운 '팻 테일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유로 경기둔화는 불가피하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내년 9월까지 매월 600억 유로를 공급하는 양적완화 계획에 추가 금융완화를 시사했다. 특히 미국이 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유로화 가치는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구등가선이 깨지면 유럽통합의 회의론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스페인의 바스크와 카탈루냐, 북부 이탈리아, 핀란드 등에서 분리 독립 혹은 유로 존을 탈퇴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통합이 깨진다면 세계경제에 미칠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미국과 유로존의 금리 추이





주 : EU 통합 이전 자료는 분데스방크 금리

자료 : 블룸버그

내년에는 금값도 1천 달러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예측기관이 지배적이다. 달러 가치와 금값 간 상관계수는 -0.7에 달할 정도로 금융위기 이후 대체성이 더 높아졌다. 투자자가 선택할 수 있는 안전자산 범위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국이 금리를 추가적으로 인상할 경우 금 수요는 줄어들면서 추가 금값 하락이 예상된다.

금값이 1천 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미국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 떨어질 무렵 금본위제 도입을 겨냥해 크게 늘렸던 각국 금 보유분의 평가손이 의외로 클 수 있다. 골드 뱅킹(금을 이용해 돈을 버는 재테크로 '유럽식'과 '미국식'으로 나뉨) 차원에서 금을 가장 선호해 왔던 우리 국민도 커다란 손실이 우려된다.

은값도 10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 최근 은값은 14달러대까지 떨어져 금융위기 이후 50달러에 육박했던 때와 비교하면 70% 이상 폭락했다. 은과 관련된 각종 금융상품(DLS)도 '손실 구간(knock-in)'에 들어섰다. 시장에 적체물량이 워낙 많아 내년에도 은값이 회복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측기관이 많다.

이색적인 것은 은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이유 중의 하나로 젊은 연인 사이에 변하는 커플반지 풍속도를 꼽고 있는 점이다. 금값이 강세를 보일 때 급증했던 은 커플반지 대체수요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연인 간 애정도 가격이 따라야 한다는 세태를 반영하는 풍조로 이해돼 개운치 않다.

미국 10년 물 국채금리가 3%를 돌파(국채 값 급락)할 것인가도 주목된다. 어렵게 금리인상을 단행한 미국 중앙은행(Fed)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옐런 수수께끼'다. 옐런 수수께끼란 2004년 이후 정책금리 인상에도 국채금리가 떨어진 ‘그린스펀 수수께끼’와 달리 정책금리 인상폭 이상으로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현상을 말한다.

금융위기가 7년 이상 지속되면서 투자자의 채권보유물량이 과다해 부담이 가중돼 왔다. Fed의 금리인상을 계기로 보유분이 한순간에 출회되면 채권 값이 '순간 폭락(flash crash)'하고 채권금리는 급등한다. 이때 Fed 역사상 최대 치욕으로 여기는 ‘에클스 실수’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심각한 것이 국제유가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유가 움직임에 좌우되는 천수답(수리시설이 안돼 비가 오면 풍작, 안오면 흉작)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다우존스지수 등 각국 대표주가지수에 에너지 비중이 높은 요인도 있긴 하지만 유가가 ‘파이널 드로’로 여겨졌던 배럴당 40달러선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유가가 급락함에 따라 많은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은 악화된 재정사정을 보충하기 위해 오랜만에 국채를 발행했다. 브라질 등 원유 수출국은 경제위기에 몰린지 오래됐다. 각국 경제에 ‘D’ 공포를 몰고 와 종전 경제이론과 통화정책의 뿌리를 흔들어놓고 있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그 어느 국가보다 크다. 국내 건설사의 중동 수주뿐만 아니라 대중동 수출도 급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피난처(shelter) 목적으로 들어왔던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 회원국의 국부펀드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국내 증시의 외국인 자금매도세를 주도하고 있다.

두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하나는 종전처럼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감산을 통해 유가 떠받치기에 노력하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비OPEC 산유국도 감산은 고사하고 증산에 열을 올리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전략원유비축분을 풀고 오랫동안 묶어왔던 대륙붕 개발을 허용하는 조치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OPEC는 대표적인 생산 카르텔이다. 회원국 간 결속력 못지않게 감산해 유가도 끌어 올리면서 원유판매대금도 늘리려면 원유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비탄력적'이어야 한다. 만약 탄력적이라면 감산하더라도 유가 상승폭보다 원유수요 감소폭이 더 크게 줄어들어 원유판매대금이 감산 이전보다 줄어드는 자충수를 두게 된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특정재화의 가격이 변하면 그 재화의 수요량이 얼마나 변동하는가를 나타내주는 지표다. 수요량 변동량(Q/Q)를 가격 변동폭(P/P)으로 나눠 산출한다. '1'보다 크면 '탄력적', 작으면 '비탄력적'이라 부른다. 특정재화의 대체재가 많아질수록 탄력적으로 변한다.

1960년 9월 창립된 OPEC은 두 차례의 오일 쇼크가 발생했던 1980년대 이전까지는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그 후 대체에너지 개발이 속속 이뤄지면서 국제원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지고 원유수요곡선도 탄력적으로 변해 감산하더라도 원유판매대금이 늘어나지 않았다. 특히 미국이 세일가스 개발 등으로 원유판매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지고 있다.

또 하나의 의문점은 비OPEC 국가도 최근처럼 유가가 급락하는데도 감산보다 증산에 참여하게 하느냐를 간단한 게임이론인 '죄수의 딜레마'로 풀어보자. 국제원유시장은 OPEC와 비OPEC로 양분돼 있다. 갈수록 비OPEC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두 시장참여자가 쓸 수 있는 전략을 '감산'과 '증산' 밖에 없다고 가정하면 그 답은 명확하다.

OPEC 회원국과 비OPEC 국가가 감산하면 최소한 유가는 오른다. 하지만 상대방이 증산하게 되면 오히려 감산에 참여한 시장 참여자만 손해를 보게 된다. 특히 최근처럼 원유공급물량이 적체된 상황에서는 감산한 국가는 유가와 생산량이 동시에 떨어져 원유판매대금이 급감하고 상대방에게 주도권도 빼앗기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모두 증산에 참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게임 결과가 도출('내쉬 균형'이라 부른다)된다.

앞으로 유가는 공급 요인보다 수요 요인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 요인으로 유가가 오르려면 대형 산유업체가 파산돼야 가능하다. 하지만 파리 신기후변화체제에 화석연료에 대한 규제 강화, 중국 등 세계경기 둔화, 미국 금리인상 이후 달러 강세에 대한 기대감 등을 감안하면 원유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대부분 예측기관이 ‘파이널 드로’라 여겨졌던 배럴당 40달러가 붕괴된 유가가 내년에도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달러 밑으로 급락할 것으로 보는 예측기관도 있다. 당분간 글로벌 증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는 국제유가 움직임이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