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비운의 국내 1위 '대우증권' 역사속으로

입력 2015-12-24 14:00


- 대우증권, 미래에셋증권과 합병…8조 공룡증권사 탄생

- 1970년 동양증권 출범, 대우 편입후 삼보증권 인수로 1위 발돋움

- IMF 외환위기 대우그룹 공중 분해…대우증권은 산업은행으로

- 대우 사라져도 '대우맨 정관계에서 맹활약'

- 김우중의 꿈 '세계경영'…박현주가 이루나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합병이 완료되면 자기자본 8조원에 육박하는 대형 증권사가 탄생하지만 국내 최초 민간경제연구소인 대우경제연구소를 계열사로 두고 강력한 리서치 능력을 과시하면서 반세기 가량 증권업계를 호령하던 대우증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970년 설립된 대우증권은 아시아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공중 분해되면서 2000년부터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됐다. 만년 3위 대우그룹에서 분리되면서 잠시 혼란은 있었지만 이후 줄곧 증권업계 1위를 고수했다. 창립 46년만에 대우증권은 사라지지만 '증권업계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대우증권 출신들은 한국의 경제, 정치 등 각계 요직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글로벌경영'을 외치던 대우그룹의 DNA를 과시하고 있다.

▶ 동양증권+삼보증권-> 대우증권 '업계1위'

대우증권의 전신은 1970년 9월 세워진 동양증권이다. 1973년 대우실업 계열사로 편입되었으며, 1975년 9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1983년 삼보증권과 동양증권을 합병한 후, 대우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하며 국내 초대형 증권사로 발돋움했다. 대우증권은 신뢰와 미래를 강조하며 '인재를 키우는 기업'으로 경영이념을 지향했다.

그룹의 글로벌 경영의 일환으로 대우증권은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영국·홍콩·헝가리 등 현지법인과 일본·중국·스위스·싱가포르 등에 사무소를 개설했다. 베트남·인도 등에 합자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등 해외에서도 국내 증권사 중 최고의 영업력을 과시했다. 대우증권은 1997년 IMF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위기를 맞기 전까지는 누구도 넘보기 힘든 1등 증권사로 군림했다.

1998년 당시 대우증권의 자산은 총 2조 5,000억여 원, 자본금 3,170억 원, 매출액 5,723억 원이고, 종업원은 2,320명이었다. 적어도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증권업계 독보적인 1위였다.



▶ 대우그룹 해체…"시련은 있어도 1위는 못 내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세계경영을 외치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외형 확장에 주력했지만 자회사 가운데 국내에서조차 1위를 한 기업은 대우증권이 유일했다. 대우전자, 대우조선,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 등 주력 계열사들은 현대와 삼성계열사에 밀려 2~3위에 머물렀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1999년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김우중 전 회장이 끝까지 내놓고 싶지 않았던 대우증권도 결국 매물로 나오게 됐다. 당시 시장점유율은 업계 5위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대우그룹의 부채가 워낙 커 채권금융기관들은 그룹내 '알짜' 기업인 대우증권을 팔아 손실을 일부 보전하기로 했다. 이듬해 5월 대우증권은 9개월 동안 매각 과정을 거쳐 결국 새 주인으로 산업은행을 맞게 된다. 산업은행은 이후 대우증권 해외 계열사를 잇따라 매각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대우증권은 불과 4년 만에 정상의 자리를 탈환한다. 구조조정 효과로 2004년 9월에는 브로커리지 (주식중개)점유율 1위를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탈환했다. 이후 리서치, 법인영업, 기업공개(IPO) 등도 1위 자리에 올랐다. 이어 2005년 7월 삼성증권을 제치고 시가총액 1위를 되찾는 기염을 토했다. 그동안 위축됐던 해외 확장도 속도를 내면서 2010년까지 일본, 베트남, 중국 등 해외 사무소를 다시 개설했으며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각했던 여의도 본사 사옥도 되찾았다. 2009년 산은금융그룹 출범 후 산은금융지주로 최대주주가 바뀌었고 산은금융그룹이 KDB로 통합 CI를 선포하면서 현재 KDB대우증권 이름을 달게 됐다. 지난해 NH농협증권이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면서 증권업계 자기자본 1위 자리를 NH투자증권에 내줬다. 하지만 KDB대우증권은 지난 2분기 30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기록하며 여전히 증권업계 수위권을 고수하고 있다.

▶ 대우 사라져도 "대우맨 살아 있네"

대우증권은 사라져도 '증권업계 사관학교'라는 명맥은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우증권이 지난 1984년에 새운 대우경제연구소는 1990년대 말까지 민간 '싱크탱크' 역할을 했고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효시가 됐다. 이들 대우증권과 대우경제연구소 출신들은 자본시장뿐 아니라 정치계로 입문해 대활약을 펼치고 있다. 대우증권 출신으로는 사원에서 사장 신화를 이뤄낸 현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을 비롯해서 증권업계 최장수 CEO인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김해준 교보증권 사장, 신성호 IBK투자증권 사장, 손복조 토러스증권 사장, 강창희 트로스톤 연금교육포럼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장도 대우증권 출신이다. 현 정부들어서는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정계에도 대우맨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경제 권력의 핵심인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비롯해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을 맡고 있는 강석훈 의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인 정희수 의원,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역임한 이한구 의원이 모두 대우경제연구소 출신이다. 이 위원은 1984년 대우그룹 회장 비서실 상무로 입사해 2000년 1월까지 대우경제연구소 마지막 사장을 지낸 바 있다.



[사진 : 박현주 미래에셋증권 회장(좌),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우)]



▶ 김우중의 꿈 '세계경영'…박현주가 이루나

미래에셋증권은 현재 자기자본(3조4620억원) 순위 4위다. 2위 대우중권(4조3967억원) 인수로 단숨에 자기자본 8조원대로 2위인 NH투자증권(4조6044억원)을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선다.

그동안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은 후진국 취급을 받았다. 정부는 여러 차례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육성하겠다고 외쳤지만 구두에 그쳤다. 새로운 합병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IB로 거듭나야 한다.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 인수한 후 10조 원대까지 자본금을 확대한다는 점은 이런면에서 긍정적이다. 이 정도 규모면 현재 일본 노무라증권의 자기자본 24조 원, 10조원 중반인 중국 중신증권과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서 자기자본을 바탕으로 위험자산 투자 등 해외 대형 투자은행과 본격 경쟁이 가능해진다. 금융 후진국의 꼬리표를 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2조4천억원이라는 통 큰 배팅으로 대우증권의 새 주인이 된 박현주 미래에셋증권 회장이 '승자의 저주'라는 우려를 떨쳐내고 대우증권의 좋은 DNA를 활용해 한국 자본시장 발전에 어떤 족적을 남길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