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와 유럽중앙은행(ECB)는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양대 축으로 같은 길을 걸어 왔다. ’위대한 수렴(GC?Great Convergence)‘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길을 걷는다. ECB는 추가로 금융을 완화하는 대신 Fed는 금리를 올려야 한다. ’위대한 발산(GD?Divergence)’이다.
‘GC’와 ‘GD’는 세계화 논쟁에서 비롯됐다. 전자는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선진국과 신흥국 간 격차가 줄어든다고 파이낸셜 타임즈의 마틴 울프가 주장했다. 후자는 오히려 그 격차가 벌어진다고 캐네스 포메란츠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가 반박했다. Fed와 ECB의 위상이 큰 만큼 앞으로 달리 가야 할 통화정책에 ‘GD’가 붙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GD’는 벌써 시작됐다. 2015년 12월에 열렸던 ECB 회의에서 추가 금융완화책을 내놓았다. 예금금리 마이너스 폭을 확대하고 양적완화 시한을 2017년 3월까지 연장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추가 금융완화책을 보완하겠다는 의사도 빼놓지 않았다.
Fed는 금리인상 국면에 들어갔다. 2014년 10월말 양적완화(QE) 종료에 이어 두 번째 출구전략 조치다. 출구전략이란 금융위기로 흐트러졌던 비정상 국면을 정상 국면으로 돌려놓는 것을 말한다. ‘푸는 것’보다 ‘회수하는 것’이 더 어려운 통화정책 관행을 감안하면 또 하나의 험난한 길이 시작되는 셈이다.
미국과 유럽은 실물경제 여건 면에서 격차가 크지 않는 한 동일한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기하기 위한 묵시적인 합의 때문이다. Fed와 ECB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은 1994년 이후 21년 만에, 1999년 ECB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GD가 일어났던 1994년 이후 상황을 보면 독일 분데스방크는 금리를 5%에서 4.5%로 내렸다. 같은 시점에 Fed는 3.75%에서 4.25%로 인상한 이후 1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 안에 6%까지 올렸다. 1995년 4월에는 일본경제를 살리기 위해 엔저?달러 강세를 유도하기 위한 ‘역플라자 합의’도 도출됐다.
미국 경제도 견실했다. 빌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이 주력산업으로 부상하면서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경제 위상도 높았다. 그 결과 ‘외자 유입->자산가격 상승->부(富)의 효과->추가 성장’ 간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됐다.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이탈에 시달렸다.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국가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신흥국 위기가 발생(‘그린스펀 쇼크’라 부른다)했다. 미국도 슈퍼 달러의 부작용을 버티지 못하고 2000년 이후에는 ‘IT 버블붕괴’라는 위기상황을 맞았다.
2015년 내내 반드시 가야 할 금리인상을 놓고 재닛 옐런 Fed 의장이 고민해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21년 전과 달리 실물경제 여건이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 GD로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된다면 경기가 언제든지 침체국면에 재추락할 위험이 높다. 현실화된다면 ‘제2의 에클스 실수’에 해당하는 ‘옐런의 실수‘다.
신흥국도 마찬가지다. 2008년 이후 미국, 유럽으로 이어지는 선진국 위기와 2012년 이후 국제원자재 가격의 슈퍼 사이클 국면이 종료되면서 경기침체 국면을 맞고 있다. 1990년대 중반보다 못한 펀더멘털 여건에서 미국 금리인상에 따라 자금이탈까지 겹칠 경우 원자재 수출국을 필두로 위기 재발이 불가피해 보인다.
현 여건에서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될 경우 미국과 신흥국 모두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을 수 있다. Fed는 최악의 결과(pay-off)를 낳을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다. 이 때문에 금리인상 이후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될 수 있는 GD가 나타나지 않도록 보완책을 강구할 가능성이 높다.
두 가지 조합이 예상된다. 하나는 금리인상 이후 달러 강세 기대심리를 차단하기 위해 인상속도를 완만하게 가져갈 것이라는 의사를 피력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금리인상을 계기로 시장금리가 급등(‘옐런 수수께끼’라 부른다)할 경우 장기채를 매입하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추진해 GD의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경우다.
한국은 1994년 이후 상황과 다르다. 당시에는 대규모 경상적자가 외환위기로 치달으면서 원?달러 환율이 2000원선까지 급등했다. 지금은 경상흑자(GDP대비)가 세계 1, 2위를 다툰다. 미국 금리인상 이후 슈퍼 달러를 겨냥해 달러 사재기 열풍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열풍이 불면 투자자는 반드시 덴다”. 중용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위대한 발산이 시작되면 원자재 시장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광물성, 비광물성 가릴 것 없이 1999년 이후 원자재 가격은 같은 운명(커플링)을 걸어왔다. ‘상승’과 ‘하락’으로 세분하면 2011년까지는 ‘슈퍼 업 싸이클’, 2012년 이후에는 ‘슈퍼 다운 싸이클’로 구별된다. 앞으로는 광물성은 ‘하락’, 비광물성은 ‘상승’ 국면으로 다른 길(디커플링)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디커플링 현상과 함께 하락세가 지속될 광물성 원자재 가격에서 예의주시해서 바라봐야 할 것은 ‘과연 파이널 드로(final draw) 현상이 나타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파이널 드루란 치열한 전투에서 뚫리면 곧바로 패전과 직결되는 최후 방어선으로, 재테크 시장에서는 ’마지노선 붕괴‘를 말한다.
유가는 이미 배럴당 40달러가 붕괴됐다. 150달러에 육박했던 때와 비교하면 무려 70% 넘게 급락한 수준이다. 지구온난화 방지 차원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규제, 중국 경기둔화 등을 감안해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예측기관이 많다. 20달러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예상치도 눈에 띤다.
국제유가 급락은 이미 많은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브라질 등 원유 수출국은 경제위기에 몰린지 오래됐다. 베네수엘라 등 일부 OPEC 회원국은 고유가 시대에 쌓아놓은 외화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브릭스’란 용어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각국 거시경제에 ‘D’ 공포를 몰고 와 종전 경제이론과 통화정책의 뿌리를 흔들어놓고 있다.
금값도 온스당 1000달러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예측기관이 지배적이다. 달러 가치와 금값 간 상관계수는 ?0.7에 달할 정도로 금융위기 이후 대체성이 더 높아졌다. 투자자가 선택할 수 있는 안전자산 범위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금리인상 이후 금 수요는 더 줄어들면서 추가 금값 하락이 예상된다.
금값이 100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미국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 떨어질 무렵 금본위제 도입을 겨냥해 크게 늘렸던 각국 금 보유분의 평가손이 의외로 클 수 있다. 골드 뱅킹(금을 이용해 돈을 버는 재테크로 ‘유럽식’과 ‘미국식’으로 나뉨) 차원에서 금을 가장 선호해 왔던 우리 국민도 커다란 손실이 우려된다.
은값도 온스당 10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 최근 은값은 14달러대까지 떨어져 금융위기 이후 50달러에 육박했던 때와 비교하면 70% 이상 폭락했다. 은과 관련된 각종 금융상품(DLS)도 ‘손실 구간(knock-in)’에 들어섰다. 시장에 적체물량이 워낙 많아 당분간 은값이 회복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측하는 기관이 많다.
이색적인 것은 은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이유 중의 하나로 젊은 연인 사이에 변하는 커플반지 풍속도를 꼽고 있는 점이다. 금값이 강세를 보일 때 급증했던 은 커플반지 대체수요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연인 간 애정도 가격이 따라야 한다는 요즘의 세태를 반영하는 풍조로 이해돼 뒷맛이 개운치 않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