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대호' 뒤틀린 욕망의 끝에 봄은 없다

입력 2015-12-10 00:00
[김민서 기자] 박제된 고통, 그 속에 포진한 삶에 대한 열망. 뒤틀린 욕망은 생생할 수록 잔인해지고, 그 끝에 봄은 없다.

일제 강점기,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과 지리산 산군(山君) 대호의 운명적인 관계를 그린 영화 '대호'는 끝끝내 묵직했다. 온통 비극으로 점철된 이 드라마의 시작은 그러나 단순하다.



조선 최고의 전리품인 호랑이 가죽을 얻기 위해 살생을 마다 않는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 조선인이기를 거부한 일본군 장교 류(정석원)와 먹고 살기 급급한 조선 포수대는 각각의 이유로 마에조노에 조력한다. 그러나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를 사냥하는 것은 쉽지 않다.

총으로 쌓인 업을 털어내려는 듯, 약초나 캐며 살아가는 명포수 천만덕은 '산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인 조선의 사냥꾼. 그러나 시대는 변해가고 목숨 같은 아들 석이(성유빈)도 더 이상 제 손아귀의 자식이 아니다.

그렇게 비극은 어느 순간 휘몰아친다. 시대는 사랑을 찢어 놓고, 아들은 아비를 거부하고, 인간은 자연을 배신한다. 제각각의 욕망은 목적도 의식도 없이 쏟아져 나올 뿐, 이들의 욕망에 정도(正道)는 없다.



인간을 즐거이 하고자 만들어진 꽹과리가 호랑이 살생의 도구로 쓰인다. '박제 동물'을 모으는 마에조노의 가벼운 취미가 수 백의 사람을 죽이고, 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한다. 목적을 잃은 것이다. 사라진 모든 것들은 마에조노의 것이 아니기에, 욕망은 무섭게 돌진한다.

그러나 영화의 시선은 '사라진 것들'을 쫓는다. '욕망'이 아니다. 상실의 아픔을 겪어본 자들의 시선의 흐름을 따라간다. 여기에 천만덕과 구포수(정만식) 그리고 대호의 끈질긴 연은 극의 주제와 궤를 함께 하며 몰입도를 끌어 올린다.

때로는 무겁고 거친 이들의 관계가 지리멸렬하다. 그러나 이내 괜찮다. 꽉 조였다 풀어지는 그 지점에 '칠구'(김상호)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 "특별한 철학이 없어 더욱 특별하다"던 김상호의 말처럼, 칠구는 꽉 막힌 캐릭터들 곁을 배회하며 모난 부분을 털어내 준다. 마치 관객의 말을 대신 전해주 듯, 그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존재로 극에 힘을 싣는다.



영화 '대호'의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누구나 한 번쯤 봤을 '호랑이 설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평범하진 않다. 하나의 주제가 굵직하게 영화 전체를 무겁게 관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지루하지 않기 때문. 복잡한 듯 단순하고, 평범한 듯 특별한 이 영화의 힘은 '익숙한 것'에서 비롯되기에 더욱 의미를 가진다.

박진감 넘치는 영상미는 덤이다. 산 속을 맹렬히 뛰어다니는 대호의 모습은 '꽤 잘 빠졌다'. 긴장감 넘치는 액션과 생생한 자연의 풍경은 대작임을 실감케 한다. 볼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전히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영화가 남기고자 하는 메시지. "지리산의 겨울을 이길 수 없다. 내년 봄에 다시 오겠다"는 마에조노의 말은 틀렸다. 그릇된 욕망은 언제나 무채색일 뿐이다. 나와 너의 삶을 갈망하던 사라진 모든 것들에 봄이 오기를. 12월 16일 개봉. 러닝타임139분. (사진=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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