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3일(현지시간) 정책금리를 낮추고 전면적 양적완화 시행기간을 늘렸다.
ECB는 3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본부에서 정례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예금금리를 현행 -0.2%에서 -0.3%로 0.1%포인트 내리고, 전면적 양적완화 시행시한을 적어도 2017년 3월로까지 늘리기로 했다.
또 적어도 그 기간까지 만기 채권에 상응하는 원금분만큼 재투자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국채 뿐 아니라 특정 지역이나 지방정부가 발행한 채권도 매입 대상으로 확대하기로 하는 등 양적완화를 심화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기준금리와 한계대출금리는 추가 인하하지 않은 채 각기 0.05%와 0.3%로 유지하고, 시장 일부에서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었던 매월 양적완화 규모는 일단 유지하기로 했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회의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독일 등 일부 반대세력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만장일치로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확인하고 "필요 시 다른 정책수단을 구사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추후 여지를 뒀다.
드라기 총재는 "지금까지 양적완화 정책이 순조롭게 시행되고 있다"며 이번 조치가 그간의 정책 실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추가적 노력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만기 채권 재투자 정책에 대해서는 "지금껏 말해온 것보다 훨씬 긴 기간, 유동성 공급을 유지하는 데 매달리겠다는 것"이라고 각별히 방점을 찍었다.
ECB는 정례 발표하는 연도별 유로존 물가상승률 전망치에서 올해 0.1%, 내년 1%, 2017년 1.6%를 각각 제시했다.
직전 9월 발표때에는 각각 0.1%, 1.1%, 1.7%였다.
또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각각 1.5%, 1.7%, 1.9%로 전망해 지난 9월에 발표한 1.4%, 1.7%, 1.8%보다 다소 상향 조정했다.
ECB는 지난 3월부터 매월 국채 매입 등을 통한 600억 유로 규모의 전면적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ECB는 올해 초 이 계획을 발표할 때 적어도 내년 9월까지 양적완화를 시행하되 유로존의 인플레율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으면 기간을 연장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번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심화는 기대보다 낮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물가상승률을 제고하고 유로화 가치 저평가 기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저성장 흐름의 타개를 동시에 노린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ECB는 지난해 6월 예금금리에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0.1%)를 적용한 데 이어 같은해 9월 지금까지 유지한 -0.2%로 추가 인하를 단행한 바 있다.
시장 분석가들은 이날 회의에 즈음해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이 ECB가 중기 목표로 내세우는 2%보다 크게 낮기 때문에 예금금리 인하 외에 양적완화 규모를 늘리거나 기간을 확대하는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일찌감치 기대했다.
이번 정책 발표가 있기 직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예금금리 인하를 두고 자산매입 프로그램인 양적완화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을것으로 전망했다.
WSJ는 "3월부터 가동된 국채 매입을 통한 전면적 양적완화 프로그램의 효과는 단시일 내에 그쳐 장기금리는 다시 반등했지만 마이너스 예금금리는 단기금리를 사상 최저로 끌어내렸다"며 "이번 추가 인하가 기업과 가계 대출을 촉진하고 물가를 밀어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유로화 가치를 지금처럼 절하된 상태로 유지하고 그 덕에 수출을 통해 득을 보는 구조를 이어가는 데에도 금리 인하는 적절한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국채 금리를 끌어내려 ECB가 매입할 국채 규모를 늘리게 되기 때문에 양적완화 이행을 촉진하는 수단으로서 예금금리 추가 인하가 제격이라는 진단도 따랐다.
그동안 ECB가 국채 매입 기준을, 예금금리를 웃도는 수준의 국채로 한정해 실제 매입할 수 있는 국채가 적어 ECB의 자산매입 효과가 떨어졌다는 분석에서다.
하지만 ECB는 정작, 시장의 기대보다 보수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내놓으면서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가 오히려 오르는가 하면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지수가 전날보다 2.27% 하락했다.
영국 금융거래 중개업체 GKFX의 제임스 휴 수석애널리스트는 AP 통신에 "너무 많은 기대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ECB의 이번 부양책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뜻을 표현했다.
독일 은행 ING DiBa의 카르스텐 브르체스키 이코노미스트는 AFP 통신을 통해 드라기 총재를 '산타 마리오'로 부르며 "산타 마리오가 크리스마스를 망치는 악당으로 돌변하진 않았지만 시장참여자들을 크리스마스 이브때 기대만큼 선물을 못 받은 아이들처럼 실망하게 만들었다"고 촌평했다.
흔히 바주카포로 불리는 '한 방'을 고대했다가 실망한 이들과는 또다른 각도에서, 지금은 확장적 통화정책이 필요한 때가 아니라는 매파적 시각은 한층 더 비판적이다.
매파들은 유로존 경제가 점차 회복의 동력을 얻어가고 있을뿐 아니라 저인플레도 저유가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고 본다.
저유가는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인플레 제고를 억제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가계 소비 여력을 늘린다는 것이 이들의 안목이다.
애초 낮은 흐름을 보여온 유로화 가치를 유지하는 데 보탬이 되는 것 외에 약발이 그다지 크지 않고 오히려 시장 불안만 야기할 것이라는 전망은 그래서 나온다.
기업과 개인의 예금금리가 마이너스가 되고 예금 인출이 빨라져 은행의 대출 재원이 떨어지는 시나리오를 상정하면, 시중에 돈을 더 많이 돌게 하려는 양적완화의 목적 역시 달성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라보뱅크 인터내셔널의 런던 소재 리처드 맥과이어 금리전략책임자는 블룸버그에 "잘못하면 수익률이 계속 떨어지겠구나 하는 쪽으로 시장 기대감을 더 부추기는 덫에 ECB가 걸려드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CB와 정반대로 금리를 올리려는 미국 등 다른 금융시장으로 유럽 자금이 넘어가는 문제와, 추가 하향 여력이 별로 없는 금리정책이나 실물의 뒷받침 없이 유동성만 늘리는 양적완화 정책은 언젠가 꺼질지 모를 자산거품만 키우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함께 나온다.
양적완화가 자산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을 동반하면 임금 등 일정한 수입에 의존해 생활하는 보통 사람들과, 부(富)의 효과를 반기는 자산소득자들간 소득격차와 양극화 가 심화된다는 경제논리는 매파들의 깔고 있는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억눌렸던 임금의 인상에 따른 내수소비 회복으로 수출 악화의 완충판을 확보하고 안정적 저평가 유로화를 수출 주도 경제의 동력으로 삼는 최대 경제국 독일과 남유럽 위기채무국의 수혜 불균형을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유로존 회원국들의 성장친화적 재정정책 지향이라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동조화 경향과 남유럽 위험채무국들의 건실한 구조개혁이행이 충실하게 동반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정책패키지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 격이라는 비관론이 있다.
EU 차원의 대규모 투자정책이 시행되고,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통화정책만으론 어려운 만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회원국 정부 모두가 성장친화적인 재정정책에 매달려야 한다"고 계속 촉구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선(先)반영론 역시 이번 정책효과의 한계를 점치게 하는 포인트다.
시장은, 비교적 명료하게 미래의 정책방향을 언급한다는 평가를 받는드라기 총재가 한 과거의 누적된 발언으로 양적완화 심화 흐름을 읽고는 미리 이를 반영했기 때문에 이번 정책이 발휘할 추가적 실효가 크지않다는 것이다.
독일 최대보험사 알리안츠의 마하엘 하이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현지 언론에 "경제적으로 중요한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유로존 경제는 추가적 통화정책 지원이 필요한 게 아니다"면서 부실은행의 추가적 부실 심화를 우려했다.
독일 헬라바 은행의 게르트루트 트라우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통화정책은 기대효과 대비 비용이 너무 크다"면서 "주식과 부동산에 저렴한 자금이 흘러들어 가격 거품을 일으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