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전문 채널 XTM의 자동차 관련 정보들을 디테일하게 소개해주는 자동차 전문 정보 프로그램 '더 벙커(The Bunker)'가 어느덧 여섯 번째 시즌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영국에 '탑기어(Top Gear)'가 있다면 한국에는 '더 벙커'가 있달까. 그 정도로 '더 벙커'는 일반 시청자들에게 파급력이 있었다.
초창기의 '더 벙커'는 지금과는 다르게 굳이 자동차 튜닝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자동차 관련 정보들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자동차 휠의 크기를 키우면 타이어 사이드월이 낮아져 코너링 시 안정적이게 되고, 접지면적이 늘어나 제동거리가 짧아져 좋지만, 연비는 하락할 수 있다' 등 자동차에 관한 좀 더 현실적이고 포괄적인 정보 전달이 주였다. 자동차 튜닝의 장단점을 보여주면서 시청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시즌이 거듭되면서 어느새 '더 벙커'는 '일방통행 광고판'이 돼버렸다.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자동차 분야에서 각광받는 산업인 튜닝 산업이 규제 완화 수술대에 올랐고 그에 힘입은 프로그램이 바로 '더 벙커'다. 제작진은 차를 가져와서 대놓고 서스펜션부터 헤드라이트, 휠, 브레이크, 외관 도색 등 이곳저곳 튜닝했다. 튜닝에 들어가는 돈은 수백 수천만 원으로 자동차 구입 비용을 웃도는 튜닝도 서슴지 않았다.
튜닝업체들도 '더 벙커'를 반겼다. 이전까지는 '불법 튜닝' 업체였지만, 덕분에 여러 업체가 '방송 인증'받은 안전한 튜닝업체 반열에 올라섰다(불법 튜닝이라고 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단지 법체계 내에서 그렇게 표현할 뿐이다). 각 자동차 동호회에서는 '더 벙커' 인증을 받은 튜닝 업체를 모시기에 바빴고, "더 벙커 협찬 업체"라는 타이틀은 안전하고 믿을만한 튜닝의 보증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됐다.
'17단 감쇄력 조절 서스펜션'이나 '6P 대용량 캘리퍼' 등은 '더 벙커'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튜닝 품목이다. 거의 모든 차에 '무조건 좋은 것'처럼 장착하기에 바쁘다. 자동차의 용도나 콘셉트는 상관없이 모든 차에 거의 똑같은 튜닝을 한다. 선택이 가능한 사항도 아니고 이유와 방향마저 잃어버린 튜닝이다.
감쇄력 조절 서스펜션이나 대용량 캘리퍼로 튜닝하면 일상적으로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오히려 불편하다. 서스펜션을 바꿀 경우, 기본적으로 서스펜션이 순정보다 더 단단해져 승차감이 안 좋아진다. '비싼 돈 들였는데 왜 이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대용량 캘리퍼 역시 브레이크가 과도하게 민감해져서 제동 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더 벙커'는 스포츠 주행에 어울릴만한 이런 튜닝을 가족용 세단에도 무차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자동차 튜닝 시장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큰 광고판이 된 '더 벙커'. '더 벙커'가 광고판이 된 게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이건 어느 용도로 언제 사용할 때 좋다'와 같은 이유 있는 제대로 된 광고를 하면 된다. 공감하기 어려운 주입식 광고는 좋은 광고가 아니다. 현명해진 소비자들의 반감만 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