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길 기자의 세종특별 늬우스]② '서울영전'과 '세종좌천'···그 진실과 거짓

입력 2015-11-26 00:00
수정 2015-12-08 16:28


친구: 너 세종시로 인사발령 나서 갔다면서?

기자: 어, 어떻게 그렇게 됐어.

친구: 지낼만해?

기자: 어, 그럭저럭.

친구: 야, 내가 오랜 친구라서 하는 말인데, 너 혹시 회사 상사한테 뭐 잘못한 거 있는지 또는 업무상 뭐 실수한 거 없는 지 잘 생각해봐. 다른 사람들은 부담돼서 아마 이런 얘기 안했을 텐데 나니까 하는 거다.

기자: 글쎄, 특별히 뭐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친구: 네가 모르는 뭔가가 반드시 있다. 사내정치를 잘못했거나 네가 인지하지 못한 잘못이 분명 있을 거다. 이번 일을 거울삼아 문제를 파악해서 차후를 대비해야 한다.

기자: 어, 알았어. 근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친구: 야, 삼성그룹과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담당하면서 대한민국 정치 경제 중심인 여의도에서 놀던 놈이 세종시가 뭐냐? 분명히 니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잘 따져보고 나중에 얼굴 보면 다시 같이 점검해 보자.

기자: 어, 알았어, 고마워...

얼마 전 친하게 지내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와 나눈 전화통화 내용이다. 이 친구는 공무원 생활하다 그만두고 해외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 나름 조직생활과 비즈니스 생리를 잘 아는 녀석이다. 최근 서울에 와서 내 얘기 듣고 세종에 있는 나한테 전화를 한 거다. 나름 위로와 함께 다음에 만나 원인분석과 함께 대책을 마련해주기 위한 깊은 배려의 행동이었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했다. 정말 나 스스로도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걸까?

세종시로 온 것이...

친구로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만했다. 사실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도 그랬기 때문이다. 세종시로 발령났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얘기는 안하셨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주위 다수의 사람들도 대놓고 말은 안했지만 눈빛과 표정에서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서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뭔가 모를 편치 않은 이상한 느낌을 갖고 세종시로 내려왔다.



세종에 온 지 얼마 안됐을 때 세종 주재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자연스레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다수의 기자들이 역시 자신들도 그런 시선과 느낌이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공무원들은 정부 정책 결정에 따라 세종시로 와야만 했던 사람들이지만 기자들은 누구든 선택의 상황이어서 반드시 우리들이 와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선택됐을 뿐이다. 누군가는 와야 하는데 대부분 기자들은 세종시 오는 걸 기피했고 그런데 결국 우리가 선택됐다는 것. 그래서 그게 ’좌천‘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종 주재 기자들은 이를 일명 ’좌천 Feel'이라고 명명했다. 바로 이런 느낌과 상황이 업무 외에 이곳 기자들을 힘들게 하는 다른 외적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스트레스는 우리 뇌와 마음 속에, 나아가 우리 삶의 문화에 깊이 뿌리박혀있는 ‘서울중심 사고’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우리는 업무 내용과 역할보다는 지방에 간다는 사실 그 자체로 사람을 판단한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세종 주재 근무자들을 본사에서 밀려 좌천됐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것이 세종 주재 기자들을 힘들게 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1~2년 세종시에서 근무하면 서울 본사로 반드시 복귀하려는 움직임이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밀린다는 그런 생각. 잊혀진 기자가 된다는 것. 지방 근무자들의 전형적인, 어찌보면 자연스런 생각들이다.

회사마다 상황마다 사례는 다르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세종근무는 좌천’이라는 이상한 등식은 바로 ‘서울중심 사고’가 낳은 결과다. ‘6백년 고도 수도서울은 이미 관습헌법’으로 바꾸기 힘든 명제가 됐다. 따라서 ‘출세는 서울에서 해야한다’. ‘서울 떠나면 출세와는 멀어진다’. ‘서울 떠나 지방가면 좌천’. ‘지방에서 서울 올라가면 영전’. 이런 등식이 우리 대한민국 근로자와 국민들의 보편적인 사고 틀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임무를 부여받았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어디서 태어났니?, 어디서 살고 있니?, 회사는 어디 있니?, 그런데 너는 어디에서 근무하니?. 이렇게 'where'가 그 사람을 결정해 버린다. 즉 보이는 외형적인 것들로 사람을 판단하다보니, 결국 항상 지역(where)이 중요하다. 그 사람이 어떤 능력과 재능이 있고 어떤 역할로 무슨 필요 때문에 그곳에서 일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진국은 나라 전체가 균형되게 발전된 곳이다. 어디를 가든 수도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어 지내는데 문제가 없다면 그 곳이 선진국이다. 구글과 애플(본사 샌프란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본사 시애틀) 등 미국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워싱턴이나 뉴욕 등 미국 동부라인에만 있지 않다. 반대편 서부라인 도시들에 있다. 정치 경제 산업의 중심 핵이 분산되면서 고르게 발전하는 것이다. 미국의 한 주 보다도 작은 대한민국 국토에서 그것도 아주 일부분인 수도서울에 정치 경제 산업의 모든 핵심 기능이 집중돼 있다는 것은 넌센스다. 그 자체가 비효율이다. ‘서울중심 사고’를 낳는 근본적인 이유다. 6백년동안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사고의 틀이 경직될 수 밖에 없다. 서울을 떠나는 건 성공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제는 이런 사고를 바꿀 때가 됐다. 대한민국 어디(where)에서 살거나 일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재능과 능력을 갖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또한 지역 변수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비전과 콘텐츠에 따라 성공이 좌우되는 그런 나라 말이다.



위로의 전화를 줬던 그 동창 친구는 아직 만나지 않았다. 앞으로 만날 날이 기대된다. 정말 내가 모르는 나의 좌천 이유를 그 친구가 발견해 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동선 불편한 정부세종청사 주변을 누빈다.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할 정부정책 결정과정에 문제는 없는지, 더 효과적인 정책방향은 없는지, 취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활동이 ’좌천‘이라면 할 수 없다. 보다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작은 밀알이 될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종근무는 영전'이라는 인식을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도록 균형된 나라발전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

*[유은길 기자의 세종특별 늬우스] 정부세종청사와 세종시 취재를 담당하는 유은길 기자가 정부 정책 뒷얘기와 에피소드 그리고 세종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관련 다양한 소식을 전하는, ‘아주 특별한 세종특별시 이야기’ 연재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