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속 깊은 맛, 생선 내장 밥상

입력 2015-11-19 14:24
수정 2015-11-19 14:26
▲속 깊은 맛, 생선 내장 밥상 (사진 = KBS)

속 깊은 맛, 생선 내장 밥상



어물전에선 버려지는 것이 당연한 신세인 줄 알았던 생선 내장이 어부를 만나 바다 진미로 재탄생했다. 모진 바다 바람에 꽁꽁 언 몸을 뜨끈하게 녹여주는 위로의 맛. 갓 잡아 올려 신선하기에 먹을 수 있었던 바다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영양식. 뱃사람들의 고달픈 인생을 닮은 속 깊은 어부들의 성찬이 차려진다.



▲부산 아낙의 애끓는 속을 위로하는 맛, 아귀애탕 (사진 = KBS)

부산 아낙의 애끓는 속을 위로하는 맛, 아귀애탕



다대포 아귀는 아귀찜의 원조인 마산에서도 가져 갈만큼 유명하다. 새벽부터 나가 몇 시간 만에 잡고 돌아오기 때문에 더욱 신선한 것이 그 이유이다. 하지만 이곳 아낙들은 싱싱한 아귀 보다 남편을 더 기다린다. ‘행여나 기운찬 바다 물살에 휩쓸리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에 속편할 날이 없다고.

그 애끓는 마음은 갖은 양념과 청양고추, 아귀 간까지 같이 넣고 끓여낸 얼큰한 아귀애탕으로 달래면 그만이었다. 생선 부위 중 가장 먼저 상하는 성질 때문에 다대포 사람들만 맛 볼 수 있었던 아귀내장의 맛- 몸집만큼이나 큰 아귀 간과 대창은 수육으로, 육고기 내장의 생김새와 비슷한 대창은 고춧가루 넣고 매콤하게 볶으면 별미다. 게다가 아귀의 간은 거위의 간인 푸아그라의 맛과도 비견된다고 하는데. 그 속을 알 수 없는 바다 때문에 속끓여야 했던 아내들을 위로해줬다는 아귀 내장의 맛은 과연 어떨까?



▲울릉도 앞바다를 가르며 고된 삶을 꾸린 잉꼬부부와 함께 한 맛, 방어내장탕 (사진 = KBS)

울릉도 앞바다를 가르며 고된 삶을 꾸린 잉꼬부부와 함께 한 맛, 방어내장탕

칠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바다 일을 하는 임상문씨. 그가 여태껏 그물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든든한 동반자 영란씨의 내조 덕분이다. 매서운 울릉도 바다는 남편인 상문씨가 상대하고, 부인인 영란씨는 울릉도 언덕배기 곳곳을 리어카 끌고 누비며 생선을 팔았다. 서러웠던 그 시절,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은 속살만 팔고 남은 방어 내장과 머리- 무와 고추로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을 내어 방어 내장, 머리를 넣어 푹 끓인 방어내장탕은 속살보다 더 맛이 좋았다. 여기에 요즘 부부가 잡고 있는 쥐치의 간까지 넣어 감칠맛을 더하면 울릉도의 바다를 한 입에 느낄 수 있다는데. 43년 연을 이어온 잉꼬부부와 함께 해온 속 깊은 바다의 맛을 만나보자.



▲외딴 섬사람들의 허기진 속을 달래주는 특별한 영양식, 오징어 내장 밥상 (사진 = KBS)

외딴 섬사람들의 허기진 속을 달래주는 특별한 영양식, 오징어 내장 밥상



제철을 맞은 오징어 탓에 울릉도는 요즘 분주하다. 이맘때 울릉도 아낙들은 잡아온 오징어를 손질하기에 여념이 없다. 경주에서 시집온 지 38년 됐다는 현자씨도 오징어를 손질하는 야무진 손만큼은 울릉도 토박이 못지않다. 아무렇지 않게 오징어를 만지는 그녀의 손길엔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던 울릉도의 삶이 깃들어있다. 쾌속선이 없던 시절, 배 바닥에 누워 머리도 채 들지 못하고 속을 게워내며 12시간이나 걸려서야 울릉도에 발을 디뎠다. 바다 생활이 익숙지 않던 육지 아가씨에게 울릉도는 적응해야할 것이 너무 많은 야속한 섬이었다. 누른창이라고 불리는 오징어 간의 쿰쿰하고 골골한 냄새는 지금까지도 적응하지 못 했다고. 하지만 울릉도 사람들에겐 손질하면서 나오는 간을 따로 모아 소금에 절여 보관할 정도로 즐겨 먹는 음식! 시래기와 함께 진하게 끓여내면 겨울 내내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묘한 매력을 가졌다. 시원한 맛이 일품인 오징어내장탕은 오징어의 생식소인 흰창과 고추만 넣고 맑게 끓여내면 울릉도 겨울 양식 한 상이 차려진다.



▲곰소 바다 소금과 내장이 만들어 낸 하모니, 갈치속젓 (사진 = KBS)

곰소 바다 소금과 내장이 만들어 낸 하모니, 갈치속젓



염전으로 유명한 전북 곰소마을은 가까이에 있는 소금 덕택에 내장 젓갈이 다양하게 발달한 곳이다. 아들 내외와 손주들까지 3대가 함께 살고 있는 병섭씨네는 오늘, 갈치 손질에 나섰다. 갈치 내장으로 젓갈을 담그기 위해서다. 시어머니 성자씨와 며느리 은숙씨가 호흡을 맞췄다. 손질한 갈치 내장은 소금을 뿌려 삭혀낸다. 시간이 지나 숙성된 갈치 내장은 덩어리는 위로 뜨고 액체만 밑에 가라앉게 되는데 이 때 덩어리는 갈치속젓, 액체는 갈치액젓이 된다. 갈치속젓은 고춧가루로 버무려 무침을 만들면 매콤하면서 쿰쿰한 풍미를 자랑한다. 내장을 제거한 풀치조림과 얼갈이 겉절이는 갈치 액젓을 넣어 깊은 맛을 더하는데. 사이도 좋아 맛도 좋은 고부의 젓갈한상에 손주들까지 온 가족이 둘러앉으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바다의 인삼이 애끊어 만들어내 귀한 맛, 해삼 내장 (사진 = KBS)

바다의 인삼이 애끊어 만들어내 귀한 맛, 해삼 내장



부안 격포는 한창 때 “발에 치이는 것이 해삼이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삼이 많은 때에도 해삼 내장은 쉽게 맛 볼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해삼 배를 가르면 실처럼 생긴 것이 내장의 전부였으니 귀할 만도 하다. 일본에서는 삼대 진미로 꼽힐 만큼 그 맛에 오묘한 매력이 담겨 있다. 해삼 내장을 다져 넣은 양념장과 제철 채소에 밥까지 넣어 비벼먹으면 향긋한 바다 내음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해삼 내장이 들어차는 시기는 4, 5월로 그 때 먹어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해녀가 직접 잡아와 싱싱한 격포 해삼의 속맛은 어떨까?



▲구수하고 진득한 부산 사나이의 맛, 붕장어 내장 (사진 = KBS)

구수하고 진득한 부산 사나이의 맛, 붕장어 내장



3일 전 기장 대변항을 떠났던 청신호가 입항했다. 1500kg이나 잡아온 붕장어를 100kg씩 그물로 들어 올려 수차에 옮겨 싣는 장면은 쉽게 볼 수 없는 신기한 광경! 이 붕장어의 내장은 기장사람들도 마을 잔칫날에나 맛 볼 수 있었던 귀한 음식이다. 청신호 선장 박종만씨와 기장 토박이 박성수씨는 무뚝뚝한 바다사나이들만 알고 있는 붕장어 내장의 건강한 맛 덕분에 세찬 바닷바람을 견디어 왔다는데. 된장만 풀어 넣은 물에 끓여낸 쫄깃쫄깃한 장어 내장 수육과 고소한 냄새 폴폴 풍기는 장어 내장 구이는 질리지 않고 담백한 맛- 고추장 풀어낸 물에 각종 채소와 장어 내장을 넣어 끓인 장어 내장탕은 진득하고 깊은 맛으로 쓰린 속을 달래준다. 부산 기장에서 무뚝뚝하지만 진득한 바다 사나이들을 닮은 붕장어 내장 맛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