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망 한정판 리셀러 얼마 남기는지 보니 '경악'

입력 2015-11-05 13:56
수정 2015-11-05 13:57


노숙으로 시작한 기다림이 결국 고성과 몸싸움으로 끝나는 모양새다.

발망과 스웨덴 제조·유통일괄형(SPA)브랜드 H&M의 협업(콜라보레이션)제품이 출시되는 5일 오전 7시쯤.

서울 중구 명동 눈스퀘어 1층 H&M 매장 앞에 있던 수백명의 대기자들은 1시간가량 뒤 열릴 매장 문을 바라보며 추위에 몸을 움츠렸다.

이들은 협업제품 출시를 기다리며 길게는 일주일가량 노숙을 한 대기자들이다. 대기 고객 중에는 남성 고객이 더 많았다.

앞쪽에 줄을 서 있던 남자 대학생은 언제부터 줄을 섰느냐는 질문에 "닷새 정도인데 날짜 감각이 없어져서 정확히 며칠부터 줄을 섰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명동지점과 압구정지점에는 개장 직전까지 약 400명, 부산 센텀시티점에도 100명 이상이 줄을 서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H&M 관계자는 설명했다.

30명씩 5그룹, 모두 150명이 오전 7시50분쯤 먼저 매장으로 들어갔다. 3층인 협업제품 매장으로 뛰어가다가 다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H&M이 매장 안에서 대기하도록 방침을 바꿨기 때문이다.

나머지 인원은 입장순서를 보여주는 팔찌를 받아들고 근처 카페 등으로 흩어졌다.

쇼핑은 8시 정각에 시작됐는데 첫 그룹 30명이 8시10분까지 10분간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면 5분 뒤인 8시15분에 두 번째 그룹이 다시 10분간 쇼핑을 하는 방식이었다.

안전상의 문제로 취재진의 매장 내부 접근이 제한됐지만 8시20분쯤 쇼핑백을 한아름 들고 나온 첫 구매자는 내부가 '아수라장'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에서 와서 닷새간 노숙한 끝에 첫 그룹에 포함됐다는 이모(19)씨는 "쇼핑을 시작하자마자 전부 달려가 물건을 집어들었다"며 "동시에 물건을 집은 사람들이 서로 가져가겠다고 싸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 역시 원하는 물건을 절반도 건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씨는 "기대를 많이 했는데 수량이 너무 적어 물건을 못 샀다"며 "계획대로라면 600만∼800만원어치를 사야 하는데 13점밖에 못 샀다. 150만원어치 정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고객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매대 위 물건을 '쓸어담는' 등의 행동을 하자 재고가 있어도 물건을 다시 매대에 채워넣기 어려운 상황이라는게 H&M 관계자의 설명이다.

노숙까지 감행한 이들은 대부분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웃돈을 얹어 되파는 '리셀러'라는 주장도 나왔다.

8시30분쯤 쇼핑백 4개가량을 들고 나온 김모씨 역시 텐트를 치고 주말부터 노숙을 해 250만원어치를 샀다

그는 "앞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리셀러라고 보면 된다"며 "사는 사람 마음에 따라 값은 몇 배 올라간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시된 제품 가격은 티셔츠 4만9천원, 블라우스 11만9천∼13만원, 재킷 13만∼54만9천원 등인데 발망이 흔히 말하는 '명품'인 점을 고려하면 4∼5배의 웃돈을 기꺼이 지불할 소비자들이 있다는 게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리셀러의 설명이다.

또 다른 남성 리셀러는 금전적으로 얼마나 득이 되기에 닷새나 노숙을 하느냐는 질문에 "기자분 같은 직장인이 닷새 일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번다"고 답했다.

일부 리셀러들은 쇼핑백을 4∼5개씩 들고 나온 뒤 삼삼오오 모여 어떤 제품을 구매했는지 이야기를 나눴지만 취재진이 다가가자 격렬하게 항의하며 욕을 하기도 했다.

H&M 관계자들 역시 대기자 중에 지난해 알렉산더 왕 협업제품 판매 당시에도 줄을 섰던 '낯익은 얼굴들'이 있다거나, 대기자 가운데 먼저 직원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들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들 리셀러들은 팀으로 와서 줄을 선 뒤 제품 종류별로 역할을 분담해 구매를 한다고 H&M의 한 관계자는 귀띔했다.

정해진 H&M 마케팅실장은 "첫 그룹이 들어가자마자 2분만에 남성복은 물량이 모두 없어졌다"며 "리셀러도 상당수 있겠지만 이들도 고객이기 때문에 제지할 방법은 없고, 대신 1인당 구매 수량을 스타일별 1개로 제한했다"고 말했다.

오전 10시가 갓 넘어 매장에서 나온 한 고객은 이미 남성복의 경우 대부분 물량이 동났다고 전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일반 고객들은 놀랍다는 반응이다.

오전 8시부터 대기 행렬에 가세한 문화센터 강사 윤모(59·여)씨는 원래 패션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번 협업제품 출시가 워낙 화제여서 현장을 구경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이 광경(노숙 행렬)을 보고 직접 보고 싶어 왔다"며 "점심 전에 들어갈 수 있으면 어떤 종류든 겨울 옷을 한 벌 사고 싶다"고 웃었다.

재킷을 사기 위해 회사에 연차를 내고 이날 오전 명동에 왔다는 서모(26)씨는 "뉴스로 봤지만 (구매 경쟁이) 예상보다 훨씬 치열하다"며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쇼핑백을 몇개씩 들고 나오는 리셀러를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며 "하지만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은 웃돈을 주고 옷을 살 수밖에 없고, 수요가 있으니 이 사람들(리셀러)도 노숙까지 해가며 장하사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