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AI 를 비롯해 가격폭락까지 더해져 양계농가의 시름이 깊어만 가는 가운데 지난 주 생닭 시세는 마리당 900원까지 하락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다음 뉴스입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서 연중 최저가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밤...”
(▲사진출처 = 이코노미스트)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뉴스다. 하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물론 동네 자영업 상권에서도 치킨가격을 내린 곳은 찾아볼 수 없고 거리 곳곳의 주유소 판매가 게시판을 보며 흐뭇해 하는 운전자들도 없다.
먼저 이런 상황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 바로 인플레이션 즉 물가상승률이다. 우리 정부와 금융당국에서는 물가하락의 장기화로 귀결되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는데 반해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여전히 부담스럽기만 하다. 물론 이는 최근 유가하락에 따른 착시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1년간 국제유가가 40% 하락한 지금, 이로 인한 소비 진작효과는 사실상 제로에 가깝고 오히려 저성장 · 저물가의 그림자가 ‘글로벌 트랜드’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출처 = 이코노미스트)
이런 잔잔하지만 부담스런 파장의 진앙지는 미국으로 지목된다. 개혁과 진보의 아이콘 오바마 대통령은 친서민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됐고 ‘4년은 짧다, 한 번 더 밀어주자’는 서민들의 지지로 재선에 까지 성공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 경제 · 외교 정책은 기존 민주당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것들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이 가운데서 특히 눈에 띄였던 ‘오바마 노믹스’의 특징은 바로 전통 기득권에 대한 견제를 포함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이들은 지난 반세기 넘게 미 의회와 정치사의 핵심을 차지하며 주로 공화당의 오랜 지지자로 활동해 온 주체들이다. 이 가운데는 미국 공공정책 수립과 주요도시 개발 단계부터 개입해 자동차의 ‘생필품화’를 위해 로비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미국 내 빅3 자동차 업체들, 그리고 이런 자동차의 연료를 만드는 석유재벌들이 포함된다. 또한 미국의 ‘월드 폴리스’ 역할을 든든하게 후원하며 세계평화에 이바지 하는 듯 보이나 때론 불필요한 전쟁을 유발시키고 우리 돈으로 1000조원에 달하는 미 국방부 예산을 떡 주무르듯 해 온 무기제조사, 총기제조사 등도 있다. 이어서 각 종 전염병이 창궐할 때 마다 음모론의 중심에 서는 다국적 제약사들도 포함돼 있다.
(▲사진출처 = 이코노미스트)
이들에게 오바마 대통령이 물린 재갈이 바로 전기차 · 셰일 오일 · 중동평화 외교 · ACA(건보개혁안) 이었다. 하지만 이들 기득권 가운데서 가장 큰 거물인 월스트리트는 메인스트리트(서민경제)를 인질로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커 룰’ 같은 형식적인 규제안을 마련해 오히려 이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모양새다. 아무튼 아무리 명약이라도 부작용은 있는 법. 요즘 미국의 걱정거리는 이런 기득권이 손을 놓아버린 고용과 성장 그리고 물가의 탄력둔화 여부다.
물론 지난 30년간 활발한 소비주체로 활동했던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 주요 선진국들의 고령화, 기술발달에 따른 생산성 향상 또한 한정된 자원에 대한 효율적 활용 등에 따라 이제는 당연시 돼 버린 공급과잉 문제 등도 최근 글로벌 경제의 교집합인 물가하락과 저성장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요즘 인터넷 쇼핑몰과 할인점을 보면 도대체 저 많은 옷과 신발, 그리고 나라 안팎에서 생산된 먹거리 들이 과연 제 때 주인을 만날 수나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봤자 사람은 하루에 세끼 이상 먹을 수 없고, 양말 한 켤레, 바지 한 벌, 그리고 손목시계도 고작 하나만을 소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과정에서 선택을 받지 못한 초과공급 물량은 대체 어떻게 소진될 것인가. 일단 여기서 제조업체들의 설비가동률 하락을 필두로 고용과 생산감축이 ‘저혈압’이라는 세계경제의 지병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고 미국의 중앙은행인 ‘Fed’의 장기 인플레 목표치 2% 는 ‘허구’에 가깝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게 된다. 그렇다면 아무리 봐도 장밋빛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 같은 글로벌 경제 ‘Japanization(일본화)’에 가능한 대처수단은 ‘미증유’의 영역에 가까워 보인다.
(▲사진출처 = ChartsBin)
시중의 통화량이 증가하면서 국민들의 소득과 지출이 동시에 증가한다는 ‘Wealth Effect(부의 효과)’ 라는 말은 이제 ‘공염불’이 돼 버렸다. 앞으로도 글로벌 경제는 이런 저성장, 저물가 그리고 체감경기의 격차 확대라는 현실을 보다 처절하게 반영하게 될 것이다. 이에 우리도 상대적 눈높이를 낮추고 내실을 기하는 경제주체로서의 자세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김희욱 한국경제TV 전문위원 hwkim2@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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