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오다 주웠다”라며 내 앞에 툭 선물을 내놓는 이성에게 묘한 감동을 느껴본 적 있는가. 이 성의 없는 멘트 속 감동 포인트는 투박한 따뜻함이다. 까칠한 겉과 달리 달콤한 속내를 갖고 있는 파인애플 같은 사람, 최근 흔히 언급되는 ‘츤데레’다. 이는 일본어로 쌀쌀맞게 구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 ‘츤츤’과 달라붙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 ‘데레데레’가 결합해서 나온 신조어로 ‘쌀쌀맞게 굴지만 사실은 따뜻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 독특한 캐릭터들은 어느덧 브라운관까지 점령하며 특유의 매력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른바 ‘츤데레 전성시대’를 맞이해 “널 위해 준비했어” 보다 “주운 건데 갖든가 말든가”에 끌리는 당신을 위한 2015 드라마 속 츤데레 캐릭터를 모아봤다.
[“버릴건데 먹든가 말든가” 요리하는 츤데레라니, 완벽해] tvN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강선우(조정석)
올해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 ‘오 나의 귀신님’은 최근 대세인 ‘요리하는 남자’와 ‘츤데레’ 성격의 결합으로 마성의 매력남 ‘강선우’를 완성했다. 극 중 자존심 센 스타 셰프 강선우는 아픈 나봉선(박보영)을 위해 뭘 해줄지 고민하다 양배추 죽을 만들어 건넨다. 그는 “그냥 재료가 많이 남아서”라며 “안 먹을거면 개나 주든가”라고 무심한 듯 말하지만 이를 받아든 나봉선의 얼굴엔 미소가 번진다. 방금 만든 죽 만큼 따뜻한 그의 진심 앞에 봉선의 마음도, 시청자의 마음도 활짝 열렸다.
[이런 ‘남자사람친구’ 있으신 분? 부럽네요] SBS 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최원(이진욱)
‘로코킹’ 이진욱의 등장만으로 “오늘부터 친구말고 애인!”이라고 외칠 법도 한데, 여기에 츤데레 매력까지 더하니 이 남자의 매력은 극대화됐다. 극 중 최원은 실연으로 힘들어하는 오랜 친구 오하나(하지원)에게 “하긴 이제 아줌마 소리 들어야 하는 나이지, 너희 어머니는 네 나이에 학부모셨을걸?”이라며 나이 공격을 가한다. 그러다가도 “그 자식이 애송이였던 거지. 걘 오하나 너 같은 애 절대 못 만날걸?”이라며 위로하고 “감기 걸리는 거 아니냐? 이 상황에 몸까지 아프면 진짜 주책 맞은 아줌마 되는 거다”라며 은근 슬쩍 진심을 건넨다. 둘 중 한쪽이 다가서는 순간 어색해질 수 있는 친구사이, 이보다 더 담백한 고백은 없다.
[차가운 도시 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 tvN 드라마 ‘두번째 스무살’-차현석(이상윤)
극 중 유명 연출가이자 연극과 교수 차현석에게 하노라(최지우)는 고교 시절 첫사랑이다.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노라에게 현석은 일부러 차갑게 대하지만 늘 한 걸음 뒤에서 몰래 돕는다. 어느 날 현석은 “먹고 버리든 그냥 버리든 해라. 근데 버리면 후회할 걸”이라며 노라에게 뜬금없이 떡볶이를 건넨다. 어리둥절했던 노라는 이내 자신이 그리워했던 할머니 가게의 떡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는 노라가 할머니 떡볶이를 그리워한단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던 현석이 노라의 할머니 비법을 전수받아 장사를 하고 있는 친구의 떡볶이를 선물한 것. 어디서 샀는지 묻는 노라에게 끝내 가르쳐주지 않는 모습을 보니 고단수 츤데레다. 생색내지 않아 더 멋있다.
[착각하지마. 너 좋아하는 거 아니니까]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지성준(박서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지성준. 김혜진(황정음)에게 유독 냉정했던 이유는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끌리는 마음을 애써 부정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누구보다 빠르게 혜진을 위해 움직이며 츤데레 매력을 발산했다. 단 둘이 떠나온 출장지에서 식당 외상값으로 소똥을 푸게 된 두 사람. 열정적으로 일하던 혜진은 애지중지하던 사원증을 잃어버리고, ‘그까짓 사원증 재발급 받으면 되지 않냐’라며 툴툴거리던 성준은 이내 어디선가 사원증을 찾아서 나타났다. 어디서 찾았냐는 혜진의 질문에 “바닥에 굴러다니던데”라고 대답한다. 이후 ‘왜 소똥을 다 뒤져놨냐’라는 식당 주인의 말에 혜진의 감동은 두 배. 내 감동도 두배.
[하반기, 츤데레 끝판왕이 온다]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백인호(서강준)
올해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 ‘치즈인더트랩’의 백인호는 이국적인 외모에 반항기 넘치는 모습으로 앞에서는 틱틱대면서도 뒤에서는 여주인공 홍설(김고은)을 몰래 보호하는 츤데레 기질이 다분한 캐릭터다. 까칠한 성격과 거친 입담으로 언뜻 나쁜 남자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준다. 치명적인 매력의 서브 남주 캐릭터는 메인 주인공을 넘어서는 인기를 얻기도 한다. 이에 서강준표 츤데레에 거는 팬들의 기대가 크다.
한 때 화려한 언변의 나쁜 남자가 대세였던 시대가 있었다. 열 마디 달콤한 말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진심을 보이는 이에게 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 각종 메신저의 발달로 의사 전달은 쉬워졌지만 진심을 전하는 것은 더 어려워진 현실에 그 어느때보다 진심을 그리워하는 우리의 모습이 츤데레 캐릭터의 인기를 잇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진=tvN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SBS 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 tvN 드라마 ‘두번째 스무살’,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웹툰 치즈인더트랩, 서강준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