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오락가락 기업구조조정 정책···신뢰 훼손 '자가당착'

입력 2015-09-17 18:42


[사진설명] 6월4일 한경밀레니엄 포럼에서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을 언급중인 임종룡 금융위원장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 ‘없던 일로’

-전문회사 신설 백지화 ‘탁상공론’ 전형

-유암코 확대 개편 정치권 로비설 ‘흉흉’

-은행권 “출자 따른 BIS비율 하락 우려”

-“초기 출자후 개별PEF 추가출자 부담 ”

-“유암코 확대 개편 금융위원회 의중”

-당국 '말 바꾸기' 최대 수혜자 유암코



“채권단 위주의 구조조정은 이미 은행권의 범주를 넘어선 지 오래다. 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신설해 시장친화적인 구조조정을 정착시키겠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6월4일 한경밀레니엄 포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취임 3개월 즈음에 참석한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 언급한 이후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은 TF 구성 등 발빠르게 진행이 됐고 다음달 기정사실화 되는 것처럼 보이기만 했습니다.

6월 언급 때까지만 해도 금융감독기구, 채권단 위주로 전개됐던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해, 당시 경남기업 사태 등 채권단과 정부, 관이 깊이 관여하는 구조조정의 민낯과 치부, 병폐는 상당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임종룡 위원장의 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 발언은 기업구조조정 변화의 신호탄이 될 것 처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NH농협금융 회장을 하다 금융위원장에 취임한 지 3개월 되던 시기로 임 위원장이 금융업계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는 금융사가 자의반 타의반 자금 지원에 나서야 했던 기업구조조정, 여신 지원의 문제가 한 둘이 아니었을 것 임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업계를 거친 관료 출신 임종룡 위원장이 보기에도 채권단이 결론도 잘 나지 않는 협의를 통해 만기 때 마다 부실기업 회사채를 틀어 막아줘야 하고 채권단 합의가 안되면 당국이 개입해 매번 논란이 양산되는 상황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기업구조조정은 그럴 듯 해 보였을 것입니다.

임종룡 위원장은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과 관련해 "당국의 중재기능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법에 명문화할 것"이라는 뜻도 분명히 하는 등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출범은 얼마지나지 않아 곧 윤곽을 드러낼 듯 한 기세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덧 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 언급 이후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당장 다음달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을 앞두고 임 위원장이 언급한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출범은 손바닥 뒤짚듯 백지화됐습니다.

이제와서 바꿔야 하는 당국은 면이 서지 않았는 지, "TF와 공청회 등을 통해 제기된 은행권의 건의를 십분 반영해 유암코의 기능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민간 주도의 기업구조조정에 변화를 줄 것"이라고 포장했습니다.

*금융위, 다음달 신설 임박해 구조조정 전문회사 ‘백지화’



TF에 참여했던 은행권에서는 임종룡 위원장이 야심차게 제시했던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는 신설을 앞두고 제반 문제점만 드러낸 채 '탁상공론'식 정책의 전형을 노출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시중은행과 국책은행 등 8개 은행과 캠코의 출자, 여기에 대출을 통한 3조원 규모의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은 사실상 물 건너 가고 부실채권 관리회사인 유암코만 웃음짓게 되는 양상으로 추가 기울은 셈입니다.

대부분 은행권 관계자들은 애초에 은행·금융위 실무진 선에서 차근차근 검토돼 위로 올라간 ‘버텀 업 (Bottom Up)’ 방식의 민간 주도의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 추진이 아닌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 온 ‘톱 다운(Top Down)’방식의 정책이 막바지 한계에 봉착하며 급선회하게 된 것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최종 단계에 임박하자 각종 제반 문제점이 드러났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유암코’라는 당초 계획과는 거리가 먼 방식이 나오게 됐다는 것입니다.

*유암코 확대 개편 정치권 이해관계 로비설 '흉흉'



여기에다 최근 유암코 지분 매각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당국, 개별 사업자들과의 이해관계·역학관계까지 얽히며 결국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 논의는 오간 데 없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지분 매각으로 각 업권과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얽혀 있는 유암코와 관련해 은행권에서는 일반 NPL채권이나 부도난 부실채권 처리 전문인 유암코가 워크아웃 채권 사업진출 전략을 지속 모색해 왔다는 점에서 급작스럽게 차선책이 됐다는 것입니다.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과 관련해 출자하게 돼 있던 모 은행 실무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금융 수장의 섣부른 판단이 이같은 결과를 초래했고 결국 '유암코만 좋은 일'로 귀결되게 됐다고 말합니다.

이 실무자는 “TF 회의 등을 들어가서 보면 은행이 출자하고 전문회사를 설립하는 데 여러 가지 애로사항, 부작용이 많은 방안이었는 데 매각가격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 지, BIS 비율을 어떻게 맞출 것인 지 등 은행이 부담을 모두 떠 안는 구조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회사를 설립하더라도 기업구조정의 경우 결국 가격 이슈를 배제할 수 없는 데 향후 향후 파산시 ‘제로(0)’ 또는 정상화시 ‘백(100)’ 등 가격의 갭을 어떻게 극복할 지 여부, 건전성 부담이 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시중은행 실무 책임자는 “일반 NPL 채권이나 부도난 부실 채권,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기업회생 채권 등이 부실채권 시장에서 거래되는 데 일반 NPL채권은 부동산 담보가치를 산정하면 그 담보가치를 근거로 할인해서 입찰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워크아웃 채권 같은 경우는 매각 가격 산정이 청산이냐 정상화냐 파산이냐 등 너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동안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 이야기 전부터 시장에서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매각 시도가 수 차례 있었지만 이같은 요인 때문에 대부분 무산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은행권 “출자 따른 BIS비율 하락·매각가 산정 방식 우려”

또 하나의 문제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에 대한 출자를 하게 될 경우 은행들이 떠안아야 하는 BIS비율 하락 문제입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초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을 꺼냈고 금융당국에서 은행권의 1조원 출자, 2조원 대출 등 3조원을 근간으로 신설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BIS 비율 하락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기업구조조정 담당 임원은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이 되레 기업 정상화를 어렵게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은행권에 팽배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임원은 “금융기관이 부실을 털어내는 순간 부실기업 정상화, 여신지원 등이 필요할 때 더더욱 개입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며 “부실기업이 정상화 될 때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전했습니다.

한 국책은행 기업구조조정 실무 책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매각 가격, 은행건전성도 우려되는 부분이지만 엑시트 즉 자금회수 부분에서도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의 경우 워크아웃 기업을 예로 들면 정상화한 뒤 자금 회수에 오래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NPL은 매입을 해서 경매를 통하면 길어야 1년 내외 정도면 다 회수 되는 데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워크아웃 기업 정상화 작업시 시간도 오래 걸리는 구조인데다 회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되는 데 은행이 다시 대출을 하든 누군가는 이를 사가야 하고 부실을 떠안아야 한다“며 은행들이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에 적극 나서지 않았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결국 금융당국 수장의 공식 언급 이후 당국이 은행권에 TF 회의를 급하게 소집하고 로드맵, 타임스케줄을 제시하며 실무진들이 회의를 해보니 적지 않은 문제가 계속 드러나기만 할 뿐 은행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없었는 데도 시중은행들은 일부 우려를 표출하고 국책은행들은 따라가기만 하는 모양새로 진행이 됐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은행권 “초기 출자이후 개별 PEF 추가 출자 부담”



은행권에서는 은행들이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 초기에 출자하는 것 외에도 추후에 개별 PEF 건 마다 출자를 또 다시 해야하는 문제 또한 단추를 잘 못꿴 접근이라고 지적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최고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 초기 은행별로 1,200억원 출자에, 대출 2,500억원씩 3,700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출자해야 하는 데 그 많은 돈이 묶이게 되는 것"이라며 "이후 사안마다 PEF 별도록 설립을 하고 그 PEF에 구조조정 회사가 50% 출자, 민간이 5~10% 출자하고 나머지를 채권은행들이 현물출자 방식으로 출자를 하는 방식은 모든 것을 은행에 전가하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은행권 일각에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채권을 털어냈는 데 완전히 깔끔히 털어내지 못하고 얼마를 또 출자해야 하는 구조이다보니 그 부분에서 또 BIS 등 건전성 문제가 불거지고 ‘트루 셀(진성매각)’ 문제마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을 나타낸 것입니다.

*“정상화 가능 기업만 하면 기존 채권단이 맡아도 가능”



한 국책은행 구조조정 실무 책임자는 “구조조정 전문회사는 살아날 만한 정상화 가능성 있는 기업을 매입하겠다는 것이 당국의 이야기 인데 은행입장에서는 정상화 가능 기업을 위주로 할 거면 굳이 매각을 안해도 기존에 채권단 시스템으로 해도 가능한 것 아니겠냐 "며 "실효성 문제가 은행권 내부에서도 불거져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에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 방안이 사실상 백지화 된 것에 대해서도 놀랍다는 반응을 내비쳤습니다.

TF에 참석했던 한 은행 실무 관계자는 “TF 회의나 공청회 등에서도 약간 은행권에서 이러한 우려를 담은 이야기 나왔지만 이렇게까지 갑자기 무산이 될 지 몰랐다”는 반응 일색입니다.

*"유암코 확대 개편 은행권 개진?‥그게 가능하다고 보나”

은행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은행권에서 유암코 개편 의견을 개진했고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언급하는 데 당국의 정책이 잘 못됐으니 기존에 부실채권 전문인 유암코를 위주로 확대 개편해 달라고 시중은행이나 국책은행들이 건의한다는 게 말이된다고 생각하냐"며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 방안의 유암코 개편 선회가 금융당국의 의중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한 시중은행 구조조정 실무 책임자는 "은행들이 TF 회의 등 기업구조조정 회사 신설에 대해 불만은 있었지만 문제점이나 우려를 강하게 표출하지는 못하고 있었고 그냥 당국이 시키니 따라가는 모양새였는 데 금명간 설립이 당연할 것으로 알고 준비중이었다"며 "갑작스럽게 바뀐 것을 보면 당국이 문제를 자각하고 서둘러 대안을 제시한 것 아니면 또 다른 그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 아니겠냐"며 의문을 내비쳤습니다.

은행권에서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을 서두르던 금융당국이 제반 문제를 인지하게 되고 마땅한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던 상황에서 아예 없던 일로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진 만큼 대안으로 유암코 확대 개편을 선택한 것 아니겠냐고 풀이합니다.

17일 오후 유암코 개편 TF 회의 등을 통해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백지화에 따른 방안을 논의하게 되는 상황에서 금융위원회는 은행권의 지적과 세간의 의문에 대해 “알려진 바 대로”라며 “은행권 내에서 유암코 기능을 확대 개편하자는 건의가 올라와서 그대로 하는 것 일 뿐”이라며 선을 긋는 모습입니다.

*섣부른 기업구조조정‥결국 유암코 좋은 일만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이 백지화 되고 유암코 기능 확대 개편으로 방향을 급선회 한것과 관련해 금융권에서는 결국 유암코 측에서 가장 바라던 시나리오대로 가는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한 시중은행 기업구조조정 실무 부서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때 유암코가 금융시장 부실 NPL 시장에서 재미를 보던 시절이 있었는 데 이게 요즘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유암코가 최근 몇 년간 은행권의 워크아웃 채권 시장 쪽 뚫어보려고 노력을 많이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부서장은 “유암코도 NPL 시장이 어느정도 한계에 봉착해 있었는 데 은행에 있는 워크아웃 채권 구조조정 채권을 PEF 설립해서 관리한 뒤 이를 정상화하고 엑시트 하는 안을 최근 연구하고 추진도 하고 했지만 잘 안되던 상활 이었는 데 이게 단번에 해결된 셈"이라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기업구조조정 부서장 역시 “부실기업 채권, 워크아웃 채권 처리를 통해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것으로 정리가 된다”며 “결국 유암코만 좋은 일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유암코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증한 은행권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2009년 6개 은행이 출자해 설립한 부실채권 전문회사로 자산유동화와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영위하는 조직입니다.

*임종룡의 ‘줄탁동시(茁啄同時)’

:당국은 밖에서 쪼고 은행권은 안에서 쪼고 결국 노른자는 유암코로



지난 6월 4일 임종룡 위원장이 금융개혁을 강조하며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해서도 전문회사 설립 카드를 꺼내 든 이후 다음달 출범키로 윤곽이 잡혔던 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은 하루아침에 없던 일이 돼 버리는 양상입니다.

기업구조조조정 전문회사 신설을 언급하던 6월 4일 임종룡 위원장이 끝 마무리 멘트로 인용한 사자성어는 ‘줄탁동시(茁啄同時)’라는 사자성어였습니다.

‘줄탁동시(茁啄同時)’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은 밖에서, 병아리는 안에서 동시에 쪼아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금융당국이 밖에서 쪼고 금융사들이 안에서 자구적인 노력을 해달라는, 그래야 금융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었는 데 민간주도의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출범과 관련해서 보니 당국이 밖에서 쪼고 은행들은 안에서 껍질을 쪼고 알이 깨지기는 했는 데, 결국 알짜배기 노른자는 ‘유암코’가 어부지리 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수출과 내수가 모두 부진한 상황에서 부실기업과 부실징후기업들이 늘어나는 시점에서 이들에 대한 구조조정은 엄중한 작업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오락가락 하는 정책과 이 과정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이 구조조정시장 참가자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