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익경기자가 만난 세계의 건강한 한국인-9]‘이란태권도의 영웅이자 이란태권도협회 전)국가대표 감독이자 기술고문인 강신철씨’

입력 2015-09-16 09:47


고대 세계 최강국으로 아시아와 유럽, 북아프리카에까지 맹위를 떨쳤던 페르시아는 아리안족의 후예라는 의미를 지닌 이란이란 이름으로 팔레비 왕에 의해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간다는 의지아래 바뀌었다.

세계 4대 산유국이자 중동에서 인구를 두 번째로 가진 나라, 이슬람 혁명이후 이라크와의 전쟁, 끊임없는 서방세계와의 갈등 등으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나라로 생각하며 우리와는 먼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 이 나라에 우리의 국기(國技) 태권도가 뿌리내린지 30년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

중심에 관장을 만나본다.

문=태권도에는 어떻게 입문하셧고, 이란에는 어떤 동기로 가시게 되었습니까?

답=경북 예천 출신인 저는 11세때 주월 청룡부대 태권도 교관이셨던 외삼촌의 권유로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국기원 부원장을 역임하셨던 홍종수 무덕관 총관장님의 수제자이자 양아들로써 국내에서 활동하던 중 당시만해도 생소하고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어수선했던 이란에서 태권도를 지도할 사범파견 요청이 왔었고, 타계하신 홍종수 관장님께서 불모지인 이란에 가서 태권도를 알리고 국위를 선양하는게 좋겠다는 말씀을 듣고 망설임없이 이란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문=이란에 태권도가 전파된지 30년이 되었고, 전 세계2위의 실력과 그 인기가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관장님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이란정부에서 ‘강신철 이란 태권도 30주년 기념 행사’가 지난 2014년에 열린 것으로 압니다. 감회가 새로우실 것같으신데요?

답=이란에 30년전에 들어갔을 때 이란에 온 까닭은 이란의 태권도 수준을 종주국인 한국 다음의 실력으로 키우는 일이라고 잘라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로 이뤄진 셈이고, 나와의 약속, 그리고 이란과의 약속을 지킨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태권도가 축구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사랑을 받는 것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종합 2위의 성과를 거두면서 시작되었고, 2004년 아테네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자 68kg급과 80kg급 금메달을 연거푸 따며 한층 인기가 올랐으며, 2010년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이듬해 경주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종합우승을 차지해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런 성과들이 정부의 더욱 더 적극적인 지원을 불러오게 했고, 현재는 이란 전국에 3천 500개에 다다르는 태권도장이 있고, 80년대 3만명 수준이었던 태권도 인구가 지금은 150만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실업.대학팀이 500개가 넘는 등 선수층도 매우 두텁습니다. 이렇다보니 저도 TV 출연도 잦아지고,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면서 길거리에서도 ‘아가이에 오스텃(Mr. Master)'로 호칭하며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태권도 대회가 열리면 경기장에 관중들이 꽉 들어차 선수들을 응원하고, 방송사 등 매스컴의 취재열기도 대단합니다. 무엇보다 이란에 도착하면서부터 저에게 사범교육을 받은 제자들이 메달도 따고, 협회 요직에서 일을 하며 전세계에 걸치어 진출한 제자들의 요청으로 세미나에 초청될 때 뿌듯함을 느낍니다.

문=이란 태권도가 강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우선 이란의 선수나 코치들 대부분이 금연자입니다. 이것은 한국선수와 지도자들보다 훨씬 높은 선진문화라 하겠습니다. 이들의 생활은 무도인으로서의 덕목이라 할 수있는 청렴, 수신, 노력의 생활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데에도 한 가지만을 적용합니다. 실력대로 공명정대하게, 이 원칙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며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란 전 지역에서 리그전을 통해 올라온 최종의 선수들과 비록 등수에는 들지 못한 선수라도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신체적 조건이 월등한 선수는 추천을 해서 합숙훈련을 같이 받을 기회를 줍니다.

이란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많은 실업팀을 보유하고 있고, 전국 규모의 태권도 실업팀 리그전이 매주 펼쳐집니다. 실업팀은 항공사, 통신사 등 16개 팀이 있으며, 청소년은 26개가 있습니다.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도 하지 못하는 실업팀 리그전은 1999년부터 시작 되어 이란 태권도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리그전은 이란 선수들에게 정신적으로나 기량면에서 상당한 향상을 가져다 주었으며 태권도를 향한 이란인들의 열정은 엄격한 이슬람 율법도 가로막지 못합니다. 일례로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이란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이슬람 신자들이 금식해야하는 라마단 기간에도 한달 동안 소집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외 어느나라 선수나 피땀어린 훈련을 쌓지만, 이란 선수들은 100km 구보를 10시간 넘게 하며 지구력을 키우기도 하고, 타고난 체질에 근력도 있거니와 육식이 주식이고 워낙 힘이 좋은데다 그 에너지를 태권도 외에 쏟을 데가 없기도 하기에 그렇게 좋은 성과를 낸다고 생각합니다.

문=이렇게 성장시킨 이란의 태권도가 한국을 위협하고 라이벌로 불리는 과정에서 강관장님을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저는 한국의 태권도를 불모지였던 이란에 전파시키고 이란 태권도를 통해 한국과 더욱 가까워지고 소통하며 한국의, 또 한국의 태권도의 저력을 전세계에 보여줬다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종주국 한국을 위협한다는 일부 비판, 견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이 큽니다. 사실, 이란 대표팀이 한국을 꺾는 순간 ‘태권도가 전 세계로 잘 전파됐다’고 여기며 아량을 보여야 합니다. 이를 계기로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킬 수있도록 더욱 분발하고 선진 기술을 개발하는게 종주국의 성숙한 태권도인의 자세가 아닐까요? 이란 태권도 선수들이 술, 담배를 절제하고 철저히 몸을 관리하는 점, 이란 태권도가 왜 이렇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는지 연구하고 후발주자이지만 배울 것은 배운다는 자세가 무도인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각국에 파견되어 활동 중인 태권도 사범은 5천명이 넘습니다. 타국 지도자로 활약하는 태권도인들이 한국의 태권도를 위협한다거나 마치 한국을 배신한 매국노로 보지 말고, 태권도 발전을 위해 정말 노력하고 있다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봐 줄 것을 인터뷰를 빌어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나 자신도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스승에게 태권도를 배우며 성장했지만, 저같이 타국에서 태권도를 전파하고 위상을 드높이는게 결국에는 한국의 태권도 발전을 꾀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문=정말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으실 것같은데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뭐가 있을까요?

답=숱한 국제대회에서 영광스러웟던 적도 많았지만, 몇가지 경험들을 떠올리면 실수도 많았고, 부끄러운 사연도 많습니다.

수천명이 운집한 곳에서 시범 중 실수하여 수치스러움에 몸을 떨며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하던 일, 사범 교육을 마치고 귀가 중 협회 근처에서 대낮에 거한으로부터 총검으로 테러를 당할 뻔한 일, 주 이란 한국대사관 안기부 직원과의 갈등, 한국 교민체육대회 주관, 급여의 20를 이란내 빈민 태권도인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한 일 등 이루 헤아릴 수없는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장면은, 1986년 호주에서 열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 참가를 위해 북경-광주-싱가폴-호주로 가는 여정중에 싱가폴에서 비행기편 관계로 1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솔자를 붙여 자유시간을 준 후 정해진 시각까지 올 것을 지시했으나 2명이 약속시간까지 오지 않고, 나머지는 먼저 공항에 보냈습니다. 40여분이 지나고 팀 주장과 다른 한명이 20인치 텔레지변을 한 대씩 안고 택시에서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보는 순간 내가 이렇게 밖에 가르치지 못했구나 하는 자괴감과 회의가 일어났으나 일단 참고 도착지에 도착할 때까지 침묵과 삭막한 분위기는 계속되었죠.

선수들이 숙소 방배정이 끝나고 잠자리 들기 전 주장과 부주장을 불려 앉힌 후 선수들에게 50달러씩 걷어오게 했고, 내가 100달러를 합쳐 500달러가 되었습니다.

이어 이런 정신상태로는 게임에 임해봐야 소용이 없음을 강조한 후 코앞에서 달러를 태우기 시작하자 놀란 선수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란의 경제 사정상 단돈 10달러가 아쉬운데 500달러를 재로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결국 선수들은 시합전엔 절대로 물욕을 내지 않기로 다짐하고 시합에 임했으며 그 결과 제7회 아시아 대회에서 이란팀음 남자 3위의 쾌거를 올렸습니다. 또한 이 소동이 이란 태권도인 사이에 화제가 되어 가을에 있을 86아시안 게임때까지 근신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문=끝으로 태권도 후학들에게 한말씀 해주시겠습니까?

답=이란에서의 여러 가지 체험 중 흥망성쇠의 무상함과 권력과 승패는 일시적인 바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고, 사람도 나름대로 맡은 역할이 있다는 것도 체득하였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자기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지 명예와 재물을 가지고 척도를 잴 수는 없는 것입니다. 특히나 해외에 진출한 태권도 사범들은 언어도 실력도 물론 중요하겠으나 무엇보다 바른 자세, 바른 마음, 바른 행동이 근본이라 하겠습니다. 올바름이 갖춰지면 어느 곳에 있더라도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태권도 사범들은 민간외교의 대표인물로 세계속에 우리 민족을 바르게 알리는 정신적 지도자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마음을 맑게 하여 태권도뿐만 아니라 생활의 지도자가 되도록 노력하여, 큰사람, 큰사범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후배들보다 못나고, 못배운 선배들의 허물과 미련을 거울삼아 종교, 지역주의, 관의식, 학연을 초월하여 우리의 정신문화를 되찾고 화합할 수있도록 더욱 진력해야 합니다. 후배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넓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태권도 후배들에게 당부드립니다. 넓고 큰 세상으로 나가라고, 이 좁은 구석에서 우물안 개구리처럼 아웅다웅 다투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고, 마땅히 갈 곳이 없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1만명의 사범이 나가있다해도 갈 곳이, 할 일이 널려 있습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했던가요? 끊임없이 스스로를 새로이 가다듬고 큰 세상으로 나가기를 선배사범으로써 당부드립니다. (현장인터뷰 강효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