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레바논 3-0 완파.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국가대표축구팀이 레바논을 3-0으로 꺾고 22년만에 레바논 징크스를 깼다.(사진 = 대한축구협회)
레바논 공격수는 사기꾼이나 다름없이 한국 선수들을 속이며 야비하게 프리킥을 얻어냈다. 쓰러져 있는 한국 골잡이 석현준을 보호하는 페어플레이 정신도 실종된 순간이었다.
이것도 모자라 레바논 관중석에서는 초록빛 레이저빔도 날아와 한국 골키퍼 김승규를 몹시 괴롭혔다. 이 모든 비열함을 이겨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선수들은 대견스러웠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8일 오후 11시 레바논 사이다 시립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레바논과의 원정 경기에서 미드필더 기성용과 권창훈의 빼어난 활약 덕분에 3-0으로 완파하고 1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슈틸리케 감독은 레바논 선수들의 거친 경기 태도를 상대하는 전략으로 수비 쪽에만 중점을 두고 소나기를 우선 피하기보다는 공격과 수비의 균형을 항상 유지하는 방향을 택했다. 한국이 레바논을 3-0 완파하는 과정이나 결과를 놓고 보면 이 판단이 백 번 옳았다.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에게 까다로운 역할을 맡기며 4-1-4-1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 한국은 '구자철-권창훈-기성용-이청용'으로 이어진 공격형 미드필더 라인을 최대한 활용하며 매우 정상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다.
그 덕분에 22분에 페널티킥 선취골을 얻어낼 수 있었다. 기성용의 기막힌 패스를 받은 석현준이 과감한 돌파를 시도하다가 레바논 수비수 둘 사이에서 넘어졌다. 명백한 걸기 반칙이었다.
이에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은 오른쪽 풀백 장현수는 자신감 넘치는 오른발 인사이드킥으로 그물을 흔들었다. 경기 전체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레바논 선수들은 조급하게 공격라인을 올렸고 여기서 한국에게 역습의 기회가 더욱 자주 만들어졌다. 단 4분만에 추가골을 얻어내는 원동력이 거기서 나왔다.
이 역습 과정에서 권창훈의 드리블 실력과 타이밍 좋은 패스 능력이 돋보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쉼 없이 국내외 축구 현장을 돌며 유능한 재목을 발굴하는 이유가 권창훈(수원 블루윙즈)에게서 또 한 번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권창훈의 날카로운 패스를 받은 구자철이 공을 몰고 들어가다가 상대 수비수의 자책골을 얻어낸 것이다. 하맘의 반 박자 빠른 걷어내기 시도가 그만 레바논 골키퍼 압바스 하산도 손 댈 수 없는 골로 연결된 것이다. 우리 선수들은 구자철의 득점이 아니었지만 함께 모여 기뻐하며 26분만에 완전히 승기를 잡은 상황을 공유했다.
그리고는 예상되는 경기 양상이 이어졌다. 레바논 선수들의 거친 반칙과 비겁한 경기 운영이 바로 그것이었다. 32분, 레바논의 오른쪽 날개공격수 모하메드 하이다르는 혼자서 공을 몰고 한국의 왼쪽 측면을 위협했다. 하지만 바로 직전에 한국의 석현준이 중앙선 부근에 쓰러진 일이 있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은 당연히 석현준이 쓰러진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하메드 하이다르는 달랐다.
상대 선수의 부상 악화를 우려해 공을 밖으로 내보내는 아량을 베풀었어야 했다. 하지만 하이다르는 오른쪽 옆줄 바로 앞까지 공을 몰고가서 멈췄다. 이 순간 한국 선수들은 그가 석현준을 위해 터치라인 밖으로 공을 밀어낼 줄 알고 있었나보다. 하지만 하이다르는 번뜩이는 방향 전환 드리블로 한국 골문을 위협했다. 누가 봐도 사기꾼 캐릭터가 떠올랐다. 그것도 모자라 위험 지역에서 직접 프리킥까지 얻어낸 것이다.
우리 선수들은 하이다르의 사기꾼 기질에 농락당했지만 어쩔 수 없이 프리킥 세트피스에 대비해야했다. 마침 이 프리킥을 하이다르가 왼발 감아차기로 연결했다. 유효슛이었지만 한국 골키퍼 김승규는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며 잘 쳐냈다. 그 과정에서 김승규의 눈을 향해 레바논 관중석에서 초록빛 레이저가 연거푸 날아오기도 했다. 레바논은 축구 경기 내용이나 결과도 완패했지만 관중들의 수준 낮은 응원 문화까지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생겼다.
한층 그 실력을 뽐내고 있는 한국 미드필더 권창훈은 후반전에도 펄펄 날았다. 60분, 쐐기골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기성용의 기막힌 전진 패스를 받은 권창훈이 예상을 깨고 오른발 돌려차기로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레바논 수비수들이나 골키퍼 압바스 하산 모두가 권창훈의 왼발에 주목하는 순간에 허를 찌른 셈이었다. 역시 최고의 자리로 인정받을 선수는 양발 재능이 모두 수준급 이상이라는 사실을 잘 가르쳐준 명장면이었다.
레바논을 3-0으로 완파한 한국은 9점 3승 무패(13득점 0실점)의 성적을 올렸다. 골 득실차에서 1골이 앞서나가며 쿠웨이트(9점 3승 무패 12득점 0실점)를 G조 2위로 밀어낸 것이다.
이제 22년만에 레바논 원정에서 레바논을 3-0으로 완파한 한국은 10월 8일 쿠웨이트시티로 원정경기를 떠나서 진짜 1위 싸움의 진면목을 펼치게 된다.
※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G조 결과(8일 오후 11시, 사이다-레바논)
★ 레바논 0-3 한국 [득점 : 장현수(22분,PK), 하맘(26분,자책골), 권창훈(60분,도움-기성용)]
◎ 한국 선수들
FW : 석현준(76분↔황의조)
AMF : 구자철(46분↔이재성), 권창훈, 기성용, 이청용
DMF : 정우영
DF : 김진수, 김영권, 곽태휘, 장현수(80분↔임창우)
GK : 김승규
★ 라오스 0-2 쿠웨이트
◇ G조 현재 순위표
한국 9점 3승 13득점 0실점 +13
쿠웨이트 9점 3승 12득점 0실점 +12
레바논 3점 1승 2패 2득점 4실점 -2
미얀마 1점 1무 2패 2득점 13실점 -11
라오스 1점 1무 3패 2득점 14실점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