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광구 행장의 '낭패불감(狼狽不堪)'··· '자발적' 연봉반납의 그늘

입력 2015-09-08 10:42
수정 2015-09-08 14:08


[사진] 이광구 우리은행장

“우리도 연봉반납 배포하라는 지시 직전까지 몰랐습니다.” (3대 금융지주 홍보 임원)

“난감하기만 합니다. 연봉 자진반납 하기도 뭐하고 안할 수도 없고...” (우리은행 홍보 임원)



“이제 우리은행은 지주사가 아니쟎습니까. 이종휘·이순우 행장이었다면 모를까, 3대 금융 회장단이 연봉반납 사전조율에서 이광구 행장을 끼워주기가 힘들었을 것...” (금융권 고위 관계자)

흡사 007 작전을 방불케 하며 지난 주후반 금융권을 들썩이게 했던 신한·KB·하나금융 회장단의 연봉 자진반납 공동 발표를 전후로 각 금융지주와 은행권내 ‘막전막후·설왕설래’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광구 행장, 지주 회장단 연봉 반납조율 ‘소외’

특히 사전논의·조율 과정에서 회장단으로부터 귀뜸조차 받지 못하고 연봉반납 발표를 기사를 통해서야 접하게 된 이광구 우리은행장의 심경은 누구보다 복잡하고 난감했을 것입니다.

이어 다음날 BNK금융과 DGB금융, JB금융 회장단의 연봉 자진반납 소식도 모 행사장에서 홍보임원·실무진과 함께 확인할 정도였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3대 금융 회장단의 연봉 자진반납 발표 이후 부랴부랴 실무 부서에 동참 여부와 규모, 방법 등을 논의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마저도 지방은행금융그룹 회장단에 선수를 빼앗기고 맙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와 홍보담당 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하기는 해야되는 데 난감합니다. 은행장 연봉이 3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반납하는 수준 정도인데, 부담된다. 그래도 하기는 해야할 텐데”라며 당혹감과 함께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지방은행금융그룹에 20% 연봉 자진반납 선수 빼앗겨

3대 금융지주 회장단이 30%를 반납하기로 한 직후 BNK금융, DGB금융, JB금융 회장이 전격적인 전화 회동을 통해 20% 자진반납을 발표하면서 이광구 우리은행장의 상황은 더욱 애매한 상황이 된 셈입니다.

우리은행의 설명처럼 우리은행장의 연봉이 경쟁사 부행장 수준이고 부행장이 경쟁사 본부장급 수준인 상황에서 회장단의 반납 수준인 30%는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더우기 우리은행장 20%, 부행장과 10%정도 반납하려던 방안마저 BNK·DGB·JB 회장단이 20% 자진반납을 먼저 공표해 버리면서 타이밍마저 놓친 셈입니다. 이 행장의 고심이 클 수 밖에 없는 것은, 경쟁은행 대비 많지 않은 연봉을 감안할 때 동참은 해야겠는 데 30%는 부담되고 지방금융그룹 회장단보다 적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하기는 해야 하는 데”에서 “충분히 검토”로 입장 선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우리은행 측은 “연봉 자진 반납은 어쩔수 없이 해야겠죠”라는 초기 반응에서 한 걸음 물러나 “동참 여부, 방법 등에 대해 시간을 두고 충분히 검토하겠다”며 뉘앙스와 스탠스를 달리 취하고 있습니다.

한 때 4대 금융의 한 축이자, 여느 지주와 달리 행장이 지주 회장보다 더 관심받고 제 목소리를 내던 우리은행장이었지만 이제 기업은행, 농협의 경우처럼 연봉 자진반납 형태가 아닌 채용 확대 등 고용에 포커스를 맞추며 여론의 동향에 주목하는 모양새입니다.

연봉반납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자발적인 행동으로 평가를 받는 분위기로 가면 적정 수준의 연봉반납에 동참하고 정치권·당국의 압박에 따른 비자발적 행보로 무게의 추가 기울면 성의는 보이겠지만 채용에 주안점을 둔 후속책에 무게를 두는 시나리오라는 것이 금융지주와 은행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우리은행장 위상‥‘격세지감’

우리은행장의 연봉자진 반납 여부 이슈와 더불어 우리은행이 당혹스럽고 구성원들의 상실감을 더하는 것은 이전과 달라진 CEO의 위상 또한 한 몫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지주사의 고위관계자는 “이광구 행장의 위상이 이전의 우리은행장의 중량감을 따라가지 못하고 같은 반열에 두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지주사 해체, 회장단·은행장 연배, 서금회 논란 등 취임 전후 왈가왈부, 민영화를 위한 기업가치 제고의 경우 이익보다 자산증대 쏠림, 핀테크·인터넷은행 등 보여주기式 행보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종휘·이순우 행장이었다면 지금과 상황 달랐을 것”

이어 이 고위관계자는 “계열이 분리됐어도, 역사와 전통, 상징성 등을 볼 때 우리은행은 역시 우리은행”이라며 “이종휘, 이순우 전 행장이라는 중량감과 무게가 있었다면 상황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최근 금융권 안팎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이광구 행장이 이번 금융지주 회장단의 연봉 자진반납과 관련해 일단은 “충분히 검토해 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이, 금융당국의 연봉 반납 관련 반응은 또 한번 고민을 가중시키는 대목입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7일 “지주 회장들의 자율적인 연봉반납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사회적으로 평가받아야 하고 선례로 남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한 만큼 뭔가 액션을 취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로 전개되고 있는 이유에서입니다.

*연봉 반납이냐 채용창출 성의표시냐 ‘난감’

연봉 자진반납을 하려고 했으면 3대 금융과 함께 합을 맞춰 동참하거나, 아니면 3대 금융지주 발표 이후 곧바로 후속 조치를 취했어야 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여론 추이에 따라 끌려다니거나 뒷북만 쳐야 하는 난감한 형국이 된 것입니다.

은행권 내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고 주도적인 위치에 서 있던 우리은행과 우리은행장의 위상이 온데 간데 없어진 마당.

사실상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발적인 연봉 자진반납 행보에서 한걸음 밀려나게 된 우리은행, 그리고 제반 과정의 마지막 결정권자인 이광구 행장이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 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당분간 금융권과 여론 추이를 보겠다며 사실상 ‘눈치보기’에 들어간 이광구 우리은행장의 고심이 깊어가는 사이 이미 보험업권 등 일부 2금융권에서도 연봉반납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이광구 행장, 자발적 연봉반납 사실상 ‘물 건너가’

‘장고 끝 악수’라는 말처럼 이광구 행장의 선택이 늦어질 수록 ‘자발적인’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사회적책임 동참은 물건너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낭패불감 (狼狽不堪)’, 즉 어떤 상황에 닥쳐 이렇게 하기도 어렵고 저렇게 하기도 어렵고, 어쩔 수 없는 처지에 처해 있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연봉 반납과 관련해 금명간 어떤 형태로든 결정의 수순을 밟아야 하는 이광구 우리은행장의 처지에서는 선뜻 반납을 하기도, 안 하기도 낭패인데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를 해야 하는 지, 이전과 달라진 우리은행장의 위상 등 고민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