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성의 The Stage] 뮤지컬 ‘아리랑’

입력 2015-07-20 18:46


뮤지컬 ‘아리랑’은 한민족의 끈질긴 생존과 투쟁의 이민사를 다룬 민족의 대서사시다. 일제 수탈기 소작농과 머슴, 지식인의 처절한 삶과 투쟁을 사실감 있게 다룬 소설가 ‘조정래’의 대하 장편소설 ‘아리랑’이 원작이다. 작품은 소설에 등장하는 수백 명의 인물들 중에서 감골댁 가족사를 중심으로 주요 인물 7명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로 재편됐다. 뮤지컬 ‘아리랑’은 10년을 꿈꾸고 준비한 ‘박명성’ 프로듀서의 뚝심을 통해 뮤지컬로 재탄생 하게 됐다.

원작자 조정래는 “우리 역사는 지울 수도 없고 지워서도 안 된다”, “식민지배하를 극복하고 살아냈었던 그것이 바로 우리 민족 정체성의 뿌리이고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뮤지컬 ‘아리랑’을 통해 “다시 한 번 국민이 응집되고 단결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며 “일제 강점기 시절의 민족적 증오와 울분을 공감하고, 선조들의 힘든 인생사를 통해 눈물 흘리게 하는 그런 작품이 탄생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또한 “그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아픈 역사를 망각하지 않는 것이고, 슬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다”라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되새기며 소설 ‘아리랑’을 집필했다 한다. 이에 각색 및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호시절 만나 사는 청춘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하며 연습을 진행했고, ‘애이불비(哀而不悲)’, 즉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작품을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작품은 고선웅 특유의 연극적 상상력으로 스피드하게 전개된다.



작품은 전라북도 김제읍 죽산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7명의 얽히고설킨 파란만장한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사이인 수국과 득보, 그리고 득보의 동생 옥비는 양반출신 송수익을 흠모한다. 송수익 역시 옥비를 좋아하지만 표현하진 않는다. 송수익네의 노비였다가 우체국 소사로 일하는 양치성은 수국이를 좋아하며 어떻게든 차지하려한다. 감골댁의 아들이자 수국의 오빠인 방영근은 빚 20원에 하와이에 역부로 팔려간다.

작품은 이러한 사람들의 관계와 일제 침탈로 빚어진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 속에 놓인 가정과 사회의 파탄을 다뤘다. 또한, 개인의 운명을 거스른 치욕의 역사 속에서도 끈질기게 통한의 소리로 탄식하듯 읊조리던 ‘아리랑’ 가락에 우리 민족의 한의 정서를 풀어냈다.

객석에 들어서면 메인 샤막에서 ‘아리랑’이라는 타이틀이 바람에 휘날린다. 타이틀은 억새풀처럼 결코 스러지지 않는 민족혼처럼 끊임없이 일렁이고 이어져 간다. 작품은 공연 시작과 함께 자막을 통한 간략한 시놉시스로 공연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려준다. 그리고는 가난했지만 정이 넘치고 사랑이 있던 진달래와 사랑이 넘실대는 무대가 된다.

등장인물들은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가는 좋은 호시절이 있겄제’를 희원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곧 그들에게는 침탈의 역사가 시작된다. 인물들은 숨통이 막힌 듯, 목구멍이 메인 듯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애써 막연한 희망을 노래하면서도 허탈한 감정들로 인해 순식간에 꼬이고 얽어진 실타래로 엮여지거나 풀어진다.

무대는 LED 스크린과 무빙워커를 사용한다. 작품은 카메라 조리개의 셔터처럼 위아래로 발 같은 흑벽의 변화와 조합으로 장면별 공간 설정을 신속하게 한다. 리프트와 웨건을 활용해 상하수만이 아닌 센터까지 사용함으로서 등퇴장 용이하게 했으며, 원근법을 이용한 3중 샤막 장치로 깊이 있고 동시 장면 전환과 신 구성을 원활하게 했다. 특히 상징적으로 엄청난 크기의 대들보와 폐허속의 대들보를 통한 이미지의 구축은 탁월했다. LED의 활용은 배경이나 장면 전환을 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으나 매 장면마다 보다는 집중과 선택이 있었으면 효과가 더 배가 될 것 같았다.

음악은 유려했다. 작품의 음악은 드라마의 정서를 리드하거나 흡수하며 악기 구성이나 편곡에 세심한 배려가 있었다. 특히, 사건을 증폭시키는 화성과 선율의 어울림에 많은 정성을 들인 듯 했다. 음악이 나오는 타이밍도 매우 적절했다. 단지 음향에서 배우의 음성과 연주의 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몇 군데에서 음악적 완성도를 빚어내는데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극중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쑥대머리’나 ‘진도아리랑’, ‘사철가’, ‘신아리랑’ 등이 그대로 연주된다. 낯익은 것에서 오는 편안함과 정겨움도 있지만 부분 변주하거나 8소절 정도만 인용하여 재창작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더불어 배우들이 우리 소리의 감칠맛 나는 시김새를 몇 군데만이라도 더 찰지게 활용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국악과 오케스트라의 적절한 어울림에 오랜만에 듣는 드라마틱한 음악적 향연에 귀가 호강했다.

무대와 조명, 영상의 시각적 어울림도 좋았다. 무대는 계산된 공간에 빛을 미묘하게 분산시키면서 질감으로 상징적이고 정서적인 발현을 선보였다. 특히, 영상을 통한 간결하고 모던한 절제의 미학을 추구하며 세련된 미장센을 구축했다. 연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객석 옆면까지 활용한 프로젝션 맵핑 또한 효과적이었다.

‘아리랑’은 1927년 일제 강점기 때 금지곡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민초들의 민족적 수난과 투쟁을 통한 한이 서린 ‘아리랑’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슬픔과 고통을 이겨냈고 힘을 냈으며, 마음을 정화하고 힘과 용기를 얻고 신명나게 불러 제끼기도 했다. 즉,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뼈 속 깊이 스며든 정신이자 영혼이며 자존감 있는 생명이고 희망의 메시지이다.

뮤지컬 ‘아리랑’에서 배우들의 열연은 이 작품의 백미였다. 모두가 독립투사들처럼 비장미가 흐르는 기운을 갖고 무대에서 장렬하게 에너지를 쏟아 냈다. 특히 감골댁 역을 맡은 ‘김성녀’ 배우의 혼신을 다한 열연과 존재감은 저절로 경의를 표하게 했다. 옥비 역의 ‘이소연’ 배우의 우리 소리와 절창은 가슴을 뜨겁게 했다. 양치성 역의 ‘김우형’ 배우의 묵직한 존재감은 저절로 시선을 강탈하고도 남았다.

공연은 2015년 7월 11일부터 2015년 9월 5일까지 LG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