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자사주 매각, 경영권방어 '고육지책'···재계 "제도마련 서둘러야"

입력 2015-06-11 16:14
수정 2015-06-11 16:32
<앵커>

삼성물산이 자사주 전량 매각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현재 상황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그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정은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인데요,

알짜 국내 기업들이 투기 자본의 공격을 막기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유은길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해 뉴욕 증시에 화려하게 등장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는 원래 홍콩거래소에 상장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홍콩거래소는 알리바바의 ‘차등의결권주식(dual class shares)' 도입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알리바바는 결국 홍콩도 중국도 아닌 미국시장을 택했습니다.

‘차등의결권주식’이란 일반 주식보다 의결권이 몇 배 높은 주식으로, 최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입니다.

예컨대 오너는 주당 의결권 1표를 갖는 대신 배당을 조금 받고, 10주당 의결권 1표를 갖는 일반인은 배당을 더 많이 받게 해, 수익과 경영권을 서로 용인하는 방식인데, 실제 미국의 구글과 포드는 이런 제도를 활용해 경영권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적대적 M&A 시도자의 지분확보를 어렵게 해, 경영권을 방어하게 하는 ‘포이즌필(poison pill)’이라는 제도도 있습니다.

이것은 적대적 M&A나 경영권 침해 등이 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회사 신주를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주는 방식으로,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사회 의결만으로도 이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 같은 제도가 없어 주요 기업들이 경영권 위협에 늘 시달리고 있고 몇 년 전 논의를 끝냈던 것 조차 ‘경제민주화’ 명분으로 도입이 없던 일이 됐습니다.

<인터뷰> 신석훈 전경련 기업정책팀장

"2009년과 2010년 정부에서 이미 법무부와 국무회의 통해 포이즌필 제도 도입은 자본시장 안정과 기업 경영권방어에 좋다고 판단해 도입하기로 했으나 이후 경제민주화 논의 속에 흐지부지되면서 지금 기업들이 다시 경영권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됐다. 경영권방어를 위해서는 포이즌필같은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결국 경영권 위협을 받을 때 제3자에게 자사주를 매각해 의결권을 늘리는 방법 외에 딱히 다른 방안이 없게 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SK는 지난 2003년 소버린 공격에 대응해 하나와 신한은행 등에 자사주를 매각했고, 이번에 삼성 역시 KCC에 자사주 전량 매각이라는 고육지책을 택했습니다.

해외 투기자본에 무방비 상태인 국내 알짜기업 지키기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한국경제TV, 유은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