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신묘한 캐스팅이 있을까.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이하 술 눈물 지킬)에서 ‘빅터/하이드’를 연기하는 배우 이시훈의 얼굴은 작품의 이름처럼 매우 다층적이다. 입술을 꾹 누르고 망설이는 눈을 할 땐 순박한 청년 ‘빅터’이다가도, 괴기(?)스러운 음성으로 무대를 휘저을 땐 영락없는 ‘하이드’다. 무대 바깥에서도 다양한 얼굴의 겹들은 여전하다. 쌍꺼풀 없이 길게 빠진 눈꼬리와 두툼한 눈두덩이는 서늘해 보이고, 바짝 웃는 얼굴엔 개구짐이 다글다글하다. 그의 얼굴은 각도와 표정에 따라 한없이 재생산된다. 그래서인지 이시훈의 얼굴은 자꾸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이시훈은 무대 위에서 노력하는 배우의 ‘성의’를 믿는다. 그래서 그는 매 작품마다 120%의 성의를 쏟는다. 티켓을 구매한 관객의 만족을 위해, 벌여놓은 작품을 책임지기 위해 의상이 땀이 절도록 무대 위에서 소리치고 뛰어다닌다. 연극 ‘술 눈물 지킬’은 그가 오랜만에 원캐스트로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다. 일본 극작가 ‘미타니 코키’가 쓴 이 연극은 공연 내내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관객의 배를 격렬하게 간질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웃음의 에너지로 충만한 무대 한가운데는 몸을 사리지 않는 배우 이시훈이 있다. “못하면 성의라도 껴야 한다”고 말하는 배우 이시훈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 원 캐스트로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공연 보셨죠?(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말 없는 미소를 지었다) 20대 후반까지는 대부분의 작품이 원캐스팅이었어요. 그 이후에는 더블이나 트리플로 무대에 올랐었는데, 오랜만에 두 달 정도 원 캐스트를 하게 됐어요. 아무래도 체력적인 긴장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연극 ‘술 눈물 지킬’이 소리 지르는 장면이 많아요. 아무리 발성을 운용하고 무리 안 가게 연기해도 한계가 있어요. 목이 가버리니까 그런 점이 많이 걱정되죠. 저는 지금 뮤지컬을 하고 있는 게 아닌데도 뮤지컬 하는 사람처럼 지내고 있어요.(웃음) 이비인후과 가면 주로 먹는 약이 있거든요. 먹으면 한 시간 정도 바짝 좋아져서 그 약도 먹어요.
- 작품을 보면서 배우들이 정말 체력적으로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살 빠지는 것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것저것 목에 좋다는 것도 먹고, 체력에 좋다는 음식도 많이 먹고 있어요. 공연 시작과 동시에 많이 챙겨 먹었더니 지금은 4kg 정도 더 쪘어요.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웃음)
- 원래 이현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잖아요. 근래 들어 이시훈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는데
지난해 7월쯤 아예 개명을 했어요. ‘이현응’이라는 이름의 한자가 저와 뜻이 안 맞는다고 하더라고요. 언제 바꿀까 하다가 작년에 기회가 돼서 바꿨어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주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전의 이름으로 활동했던 것들이 있어서 갑자기 바꾸면 못 알아보실까 봐 염려가 됐거든요. 제가 소속사가 있어서 공지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제 생각보다는 관객분들이 많이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요.
- 이시훈이란 이름은 어떤 뜻이에요?
‘옳을 시’에 ‘공 훈’이래요. 결과물을 바르게 낸다는 뜻 같아요. 사실 이현응이라는 이름이 뜻을 떠나서 특이한 편이잖아요. 다들 이름에 ‘응’자를 많이 안 쓰기도 하고. 그래서 이쪽 직종으로는 ‘이현응’이란 이름이 낫겠다 싶었는데, 주변에서도 다들 왜 바꿨느냐고 물어봤었었어요. 처음에 바꿨을 때는 주변 반응이 엄청 심했어요. 절대 안 어울린다고.(웃음) ‘잘 생겨 지고 싶냐’, ‘주인공하고 싶냐’, ‘너만 연기하고 싶냐’ 그랬어요. “그냥 너는 이현응인데 왜 이름을 바꿔서 어색하게 만드냐”고도 했고요.(웃음) 잘 어울린다는 말은 아예 없었어요. 지금도 ‘현응’이라고 저를 알고 계신 분들은 ‘시훈’이란 이름을 어색해 하시는 것 같아요.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낯설었어요. 배역 이름을 받은 것 같고, 막.(웃음)
- 영문과를 전공하다가 연기를 하게 됐는데
대학 2학년까지 영문과를 다녔어요. 보통 남자애들은 그때 군대를 가잖아요. 군대 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진로를 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요. 그때 ‘무엇을 평생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하다가 연기를 선택하게 됐어요. 성우였던 아버지의 영향도 컸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집에서 대본 놓고 더빙연습 하시는 걸 많이 봤거든요. 배우분들도 많이 보고, 방송국도 자주 따라 다녔고요. 연기라는 게 낯설지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제가 안에 있는 걸 드러내려는 성향도 있고, 사람들하고 지낼 때도 다 같이 좋자라는 주의가 있었어요. 그런 점들도 작용한 것 같아요.
- 집에서 반대는 없었나요?
어머니는 반대하셨어요. 아버지는 ‘조금 더 일찍 얘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면서 아쉬워하셨고요. 일찍 말했으면 조기교육도 하고, 준비도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면서요. 군대 다녀오고 이십대 중반에 연기를 시작한다고 하니 안타까워하셨죠.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제가 하는 일을 반대하신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주의시고, 본인도 그렇게 사셨고요.(웃음) 하고 싶은 건 하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저도 그런 마인드고요.
- 데뷔작이 정의신 연출가의 연극 ‘바케레타’예요
정의신 선생님과는 여러 번 작업했어요. 선생님이 직접 쓰고 연출하신 작품은 총 세 작품 했고, 선생님이 쓰시고 다른 분이 연출한 작품은 한 편 정도 했어요. 선생님의 영향이 정말 컸죠. 배우 중에는 정의신 선생님이 연습시킬 때 너무 집요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어떤 배우들은 하고 싶은 대로 열어주니까 정말 편하다고 말하고요. 저는 후자 쪽이었어요. 정의신 선생님은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걸 했을 때 값어치 있게 인정해주세요. 의견에 대해서도 수정을 해주시는 편이지 ‘그거 아니야’라고 말씀하신 적이 거의 없어요.
칭찬의 힘이 크다 보니 무대에서도 조금 더 하려고 해요. 욕심이 아니라 작품에 더 보태려고 하고, 힘들지만 조금 더 에너지 내서 열심히 하려고 하고요. 선생님도 그런 것을 추구하시거든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설 때 에너지가 없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셔서, 배우들이 정말로 땀에 절고 힘이 다 빠질 만큼 열심히 해요. 선생님도 배우가 너무너무 힘들어서 무대가 두려워질 만큼 에너지를 쏟길 원하시고요. 그런 점들이 저한테 좋게 작용을 한 것 같아요. 잘 해 보이려다가 넘어지는 것보다, 넘어지더라도 열심히 하는 게 관객들에게 성의 면에서 더 좋다는 걸 알려주셨어요.
- 필모그라피가 굉장히 다양해요. 영화, 연극 등을 쉬지 않고 해왔는데,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다 기억에 남죠. 하지만 꼽으라면 총 세 작품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데뷔작이었던 ‘바케레타’, 미타니 코키의 ‘너와 함께라면’, 정의신 선생님과 했던 ‘나에게 불의 전차를’이라는 작품이요.
‘바케레타’는 그 작품을 계기로 여러 활동을 하게 돼서 뜻깊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 연출가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내가 이 연출가를 만난 게 정말 행운이구나’를 느끼게 해줬어요. ‘너와 함께라면’은 제가 봤던 코미디 대본 중에 가장 완벽했어요. 어떻게 보면 다수가 나와서 거짓말이 물고 물리는 전형적인 코미디 상황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야기가 전혀 억지스럽지 않고, 완벽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조금 충격이었죠. 사실 저같이 어린 배우들은 자꾸 더 보여주려는 욕심이 있어요. 이 작품은 철저하게 대본 안에서 어떠한 테크닉 없이 상황만을 집중해서 연기하는 게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줬어요.
- ‘나에게 불의 전차를’은요?
누구나 어떤 목표가 있잖아요. 저에게는 나름의 큰 목표가 국립극장 해오름에 오르는 거였어요. 저 같은 배우들한테는 큰 극장, 그러니까 아르코예술극장, 국립극장, 명동예술극장, 남산예술센터 등 오래된 극장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나에게 불의 전차를’은 정말 좋은 작품과 좋은 역할로 빠른 시기에 국립극장 해오름에 오르게 해준 작품이에요. 정말 뜻깊었어요. 배우를 준비할 때 가족들과 뮤지컬 ‘캣츠’를 보러 해오름에 갔는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런 데는 어떻게 하면 설 수 있을까.” 연극은 대극장 작품이 많이 없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때 그 시기에 그 작품에 그 역할로 그 극장에 올라갔던 게 정말 의미가 깊었죠.
- 배우로서 갖고 있는 또 다른 로망이 있다면
되게 단순한데.(웃음) 모든 극장을 한 번씩 서보고 싶어요. 어떤 극장이든지요. 물론 작품도 중요하고요.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무대에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여행을 굉장히 좋아하듯이 이 극장, 저 극장에서 살아보고 싶은 로망이 있는 거죠. 어찌 됐든 여기서 살아가야 하니까요. 어차피 제가 살아가야 하는 공간이라면, 저는 다른 공간이 아니라 이곳에서 즐거움을 찾고 싶어요.
- 이 연극에서는 ‘하이드’의 역할이 정말 커요. 부담은 없었나요?
이 공연이 올라가기 전에 선배님들과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결국 ‘열심히 해야 한다’고요. 저도 처음에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에는 잘해 보이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결국엔 다시 돌아가는 이야기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거예요. 제가 연기를 못한다면 그게 지금의 제 능력치인 거죠. 능력치가 모자라면 더 열심히 해서 성의라도 갖다 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관객들도 저라는 배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 정말 좋았어’ 해주지 않을까 해요.
- 무대에서 드러나는 ‘성의’나 ‘정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이 있어요. 한국에는 초대권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일본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외국에는 초대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더라고요. 할인권이라는 개념도 없어요. 티켓이 4만 5천원이면 딱 그 값을 내요. 우리나라는 다들 특이하다고 하더라고요. 왜 초대권과 할인권이 있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빠른 시일 안에 이러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도 만원이잖아요. 뮤지컬이나 오페라는 비싸더라도 보는 것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고요. 유독 연극하면 할인이나 초대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무대에 서는 사람 입장에서도 객석에 앉아계신 분들이 다 제값을 지불한 관객이라고 하면 절대 허투루 못해요. 관객 중에는 할인해서 보는 분들도 있고, 초대로 보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런 생각들이 은연중에 배우에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부분이 좀 싫어요. 작품을 저질러 놓은 건 기획자, 배우, 연출가 모두의 공동책임이에요. 그래서 작품을 보러 와주시는 관객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야 다음에 관객분들이 공연을 보러 오실 때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고요. 물론 지금 열심히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은 제가 제 무대에 책임을 지고, 관객분들이 연극을 보신 후에 ‘이 작품이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해드리고 싶어요.
- ‘술 눈물 지킬’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단순한 것 같아요. 흔히 코미디하면 떠오르는 수식어들이 있잖아요. 안 좋은 의미로 빠지면 막장일 테고, 다르게 보면 풍자를 하거나 이면에 숨은 뜻이 있다거나요. ‘술 눈물 지킬’은 굉장히 단순하고 명쾌한 코미디라서 매력 있는 것 같아요. 막장이나 저렴한 코드가 아닌 말 그대로의 ‘코미디’ 같아서 좋아요. ‘웃었지만 씁쓸한데?’가 아니라 ‘한 시간 반 정말 재밌었다. 끝!’이요.(웃음)
- 맡고 있는 ‘빅터/하이드’라는 캐릭터가 워낙 격렬하잖아요
의상이 남아나질 않아요. 우선 땀이 정말 많이 나요. 어떤 분들은 ‘정말 고생 많으세요’라고 하시는데, 어떤 분들은 땀을 너무 흘리니까 ‘병 걸린 거 아니냐’고 물어보세요.(웃음) 옷이 빨리 헤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공연 끝나고 나면 무대에 계속 뭐가 떨어져 있어요. 단추가 떨어지기도 하고, 여배우 의상에서 큐빅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어디서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는데 계속 바닥에 뭔가 있어요.(웃음) 구두도 만신창이에요. 무대 팀에서도 배우가 격렬하게 연기하다가 무대를 파손하거나 다친다거나 할까 봐 걱정을 많이 하고요. 조심해서 하고는 있는데, 이 작품은 100%가 최선이면 120~30%를 해야 성의가 보이는 것 같아요. 간혹 ‘조금 더 살살해도 될 것 같은데’라는 말씀을 해주시는데, 그렇게 되는 순간 망가질 것 같아요. 모든 일은 처음과 같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정말 좋은 작품이고 좋은 역할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책임감도 커요. 어느 날은 정말 목이 너덜너덜해요. 2회 공연인데 1회 전부터 목이 너무 안 좋은 거죠. 머리로는 1회에 에너지를 아끼고 2회 때 나머지를 쓰자고 생각해요. 하지만 실제 무대에 올라가면 그게 잘 안 돼요. 차라리 1회에 다 지르고, 2회에 최대한 약을 먹어서 가라앉히고 다시 해요. 몸이 재산인 직업이라 아껴야 하는데, 요즘은 ‘지금은 지금이고, 다음은 그다음’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느낀 작품은 처음이에요.
- 혹시 본인이 ‘하이드’스러웠던 적이 있나요? 말하는 모습은 굉장히 차분해 보여요
차분하려고 노력해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편인데, ‘네 위치에서 어떻게 다 표현하고 살겠니 아니더라도 넘어가라’ 그런 걸 잘 못 견뎌요. 누가 봐도 부당한 사실을 참고 참다가 ‘이건 아니다’ 싶으면 ‘빡’ 나가요. 그런 부분이 ‘하이드’스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도가 넘지 않는 선에서는 표현하고 살고 싶어요. 연극은 사람들끼리 하는 작업이잖아요.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최대한 솔직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그렇게 살고 있다기보다 그렇게 되기를 추구하고 있어요.(웃음)
- 얼굴이 굉장히 다양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본인 얼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무래도 이 직종에 있으면 카메라 쪽 일을 하는 분들을 만나게 돼요. 저를 봐주시는 분들이 그런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이미지가 각도에 따라 정말 많이 다르고, 표정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다고 하시더라고요. 굉장히 악해 보일 수도 있고, 차가워 보일 수도 있고, 바보 같아 보일 때도 있다고.(웃음) 저는 몰랐어요. 단편영화나 독립영화 작업을 하면서 제 얼굴 보는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이렇게 틀면 이런 이미지가 나오고, 저렇게 틀면 저런 이미지가 나오고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잘생기지 않은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여겼어요.(웃음) 어릴 때는 눈이 굉장히 콤플렉스였어요. 눈도 작고, 쌍꺼풀도 없고, 눈두덩이도 두껍고요.(웃음)
- 연극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혹시 있나요?
제 머릿속에 연극하면 떠오르는 ‘내 안의 베스트 3’이 있어요. ‘야끼니꾸 드래곤’,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푸르른 날에’ 이렇게 세 개요. 전형적인 신파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무거운 신파지만 웃겨 버리는 작품들, 하지만 마지막에는 먹먹함이 남아 있는 작품이 좋아요. 이야기를 먹먹하게 만들려고 달리는 게 아니라, 먹먹한 걸 털어내려고 달려가는 그런 코미디를 좋아해요.
- 언급한 작품들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 같은데
정말 정말 해보고 싶죠. ‘야끼니꾸 드래곤’은 제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 같고,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도 마찬가지고요. 연극 ‘푸르른 날에’도 일단은 올해로 마무리가 됐다고 해요. 이 작품을 하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세 작품 다 정말 에너지가 꽉꽉 들어찬 작품들이에요.
- 배우로서 가진 목표가 있어요?
요즘은 ‘나중에 어떻게 되고 싶다’ 보다 지금 ‘무슨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요. 목표라고 한다면 제가 오르는 무대를 보는 사람들이 ‘아, 이래서 이걸 봐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관객이 5~6만원 연극 티켓을 ‘뮤지컬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비싸?’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분이 5~6만원을 내고 공연을 보시고 ‘이래서 연극을 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게요. 그게 엄청난 재능이 됐든 혹은 부족한 재능을 메우기 위한 200%의 성의가 됐든 어떤 방식으로라도 만족하게 해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