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할머니부터 워킹맘까지...여의사, '그들과의 동행'

입력 2015-06-08 18:38
수정 2015-06-08 18:41


여의사의 이미지란 어떤 것인가? 주변 혈연관계 또는 가까운 친구 중 여의사를 두지 못한 이들은 트렌디 드라마 속 시크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돈과 능력까지 있는(?) 이른바 '엄친딸'을 떠올린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전문직인 데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무거운 일에 자신있게 "내가 의사입니다. 맡기세요"라고 주장할 수 있는 여인. 그러한 여의사라 해도 사람마다 각양각색일 테지만, 아무튼 자고로 대중으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집단이 틀림없다.

그들이 사람의 죽음을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야 하고,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가 기승을 부려 전 국민이 불안해 하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도 최전방인 병원 응급실을 지키는 전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쉽게 잊는다.

무턱대고 부러움이나 경외의 대상으로 의사, 특히 평소 트렌디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완벽한 여의사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에 대해 궁금했다면 읽어볼 만한 다섯 여의사의 수필집이 출간됐다. '그들과의 동행-다섯 여의사의 사랑법'이다. 8명의 손주를 둔 '할머니' 여의사부터 막내딸의 중학교 졸업식 참석을 위해 어렵게 시간을 빼는 '워킹맘' 여의사까지 나름대로 폭넓은 연령대를 아우르고 있다.

수필이라는 장르는 아주 넓게 볼 때 '마음 가는 대로 쓴 글'이다. 가벼운 주제부터 무거운 주제까지 얼마든지 섭렵할 수 있고, 문학적일 수도 전문적일 수도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수필들은 그러한 수필의 특성에 딱 맞는 폭 넓음을 자랑한다. 전문적인 지식부터 가벼운 농담, 사회 문제 진단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상 죽음에 대한 언급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글은 죽음을 다룬 어떤 글보다도 담담하면서도 큰 울림이 있다.

난치병을 앓다 젊은 나이에 떠나간 환자에 대한 연민('그녀와 함께한 21년', 김화숙)부터 갑자기 세상을 하직한 배우자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환자 이야기('마음의 감기', 김태임), 노환으로 정신이 맑지 못한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맡겨 두고 자식으로서 하는 여러 가지 생각('황홀한 노년'(유혜영), '창 안의 풍경'(임선영))...대부분의 환자에게 '나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공감을 자아내면서도 긴 인생, 생명의 여정에 대해 조언을 던지는 듯한 느낌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의사들의 내면을 엿보고, 환자가 되었을 때 의사에게 어떻게 대하는 것이 이익(?)인지를 시사하는 재치 만점의 수필도 찾아볼 수 있다. '핀잔쟁이 환자'(유혜영) 등이 그런 글이다. '의사도 사람이다'라는 무미건조한 말보다는 이러한 수필 한 편이 훨씬 더 사람다운 의사의 인간적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워킹맘 여의사의 아이 중학교 졸업날의 풍경을 그린 '교영이의 졸업식 날', 자녀의 학교에 청소년 금연 교육을 하러 다녀온 이야기를 쓴 '졸리지 않은 금연 교육' (이상 김금미)등은 엄마와 직장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한 여의사의 훈훈한 자화상이자, 다른 학부모들에게 전하는 실감나는 경험담이기도 하다.

여의사들은 가벼운 수다처럼 일상을 풀어 놓다가도, 묵직한 사회적 이슈를 던지고 모든 독자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성매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극적이고 마음 아픈 결론으로 치닫는 내용을 담은 '신이 준 가장 큰 선물', 외면하고 싶지만 씁쓸함을 자아내는 성매매 피해 청소년들의 진료 경험담 '내 진료실의 아이들'(이상 임선영) 같은 글들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어둠에 대해 한 번 더 일깨워주는 의미가 있는 귀한 수필이다. 또한 의사로서, 직업인으로서 가장 마음 아프고 힘든 일을 음지에서 묵묵히 수행하고 있음이 글 속에서 티 내려고 하지 않음에도 엄숙하게 묻어난다.

글쓴이들은 의사로서 늘 최선의 치료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은 환자들을 통해 자신들이 치유와 평안을 얻었다고 머리말에서 고백하고 있다. 일반 독자들은 혹시나 의사들이 환자를 '돈벌이 수단' 또는 '귀찮지만 일이니 치료해야 하는 존재'라고 여기지 않을지 불안하지 않았을까. 다양한 연령, 그러나 푸근한 엄마 같다는 점은 똑같은 여의사 5인의 수필은 등을 토닥여주는 부드러운 손길처럼, 읽은 것만으르도 그러한 불안감을 잠재워 준다.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더 이상 내용을 압축하면 왠지 이 글들이 담고 있는 다양한 주제와 의식을 흐리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여의사라는 직업적 특성은 있지만, 이 글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노력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세대 여성들의 자화상이다. 여기에 평소에 궁금했던 불치병이나 전염병, 피부 건강에 대한 상식까지, 전문가들만이 줄 수 있는 깨알 같은 팁은 덤이다.

322쪽, 1만4000원, 북인 펴냄.

한국경제TV 이예은 기자

yeeuney@blu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