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효신, 실로 놀랍다”…뮤지컬 ‘팬텀’

입력 2015-05-26 20:41


원작의 아우라를 지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이 ‘세계 몇 대 000’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더욱더. 뮤지컬 ‘팬텀’은 한국 초연 발표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에는 화려한 캐스팅, 웅장한 무대, 유려한 음악 등이 있겠지만, 핵심에는 고전에 가까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있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가스통 르루의 원작 소설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고전 명작이다. 뮤지컬 ‘팬텀’은 개막 전부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필연적인 비교를 당해야만 했다. 이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보다 1년 먼저 제작을 발표했지만, 사정상 몇 년 늦게 개막해야 했던 뮤지컬 ‘팬텀’의 어찌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뮤지컬 ‘팬텀’은 확실히 원작의 아우라를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원작을 성실히 옮겨냈다면, ‘팬텀’은 원작을 틀을 따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프리퀄’이 있다.

프리퀄은 원작 속 이야기 이전에 일어났었던 일을 담아내는 것을 말한다. 뮤지컬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의 숨겨진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들려주며 작품에 철학적인 힘을 더했다. 할리우드에서는 열풍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영화들이 ‘프리퀄’을 앞 다투어 내놨다. 프리퀄은 인기 원작의 숨겨진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는데 높은 성공률을 자랑한다.

뮤지컬 ‘팬텀’ 역시 마찬가지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크리스틴’과 ‘라울’, ‘팬텀’의 입장을 고루 다루고 있다면, 뮤지컬 ‘팬텀’은 절대적으로 팬텀에 의한 이야기다. 팬텀의 비극과 상처는 서사 속에 구체적으로 나열된다. 원작 속 인물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들은 그 위에 덧대어 뮤지컬 속 인물들을 한층 구체적으로 받아들인다. 즉, 원작 ‘오페라의 유령’에 ‘팬텀’의 숨겨진 이야기가 오버랩 되면서 캐릭터와 감정선이 풍성한 숲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뮤지컬 ‘팬텀’은 이야기 구조가 그리 탄탄하지 않다. 극의 중반에 이르면 서사는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고, 숨겨져 있는 비밀도 충격적이지 않다. 하지만, 익숙한 이야기 구조가 주는 설렘과 알심은 관객을 드라마로 몰아넣는데 외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작품의 여러 장면 중, 단연 괄목할 만한 것은 ‘팬텀’의 과거가 켜켜이 드러나는 벨라도바와 카리에르의 ‘발레신’이다. 안무가 제이미 맥다니엘은 정통 발레의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드라마의 리듬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국내 내로라하는 전문 무용수들이 펼치는 절정의 연기력이 눈을 호강하게 한다. 반면, 작품 전반에 녹아 있는 앙상블들의 발레 장면들은 합이 맞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무대는 영상과 함께 호흡하듯 움직인다. 특히, 팬텀이 크리스틴을 배에 태운 채 지하 호수를 가로지르는 장면은 섬세한 영상과 무대 세트가 어우러져 마치 3D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유동성이 극대화된 무대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실을 관객 앞에 가져다 놓는다. 무대 전환은 순식간이다. 세트들은 관객의 눈앞에서 자리를 바꾸지만, 관객이 쉽게 눈치 채기 어려울 정도로 유연하다.

음악은 클래식한 오페레타의 음율들로 나부낀다. 특히, 이번 공연은 작곡가 모리 예스톤이 4개의 신곡을 추가해 한층 더 풍부한 질량의 무대로 빚어낸 것이 특징이다. 음악은 주로 이야기의 이미지를 새겨 넣은 듯한 곡이 많다. 크리스틴의 실력이 빛을 발하게 되는 ‘비스트로’는 흥겹고 낭만적인 파리 사교계의 이미지를, ‘넌 내 아들’은 마침내 비밀의 사슬을 풀어낸 부자의 눈물을 그리게 만든다. 줄곧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 보다는 ‘그 음악이 흐르는 장면을 다시 보고 싶어’지는 식이다.

박효신의 ‘팬텀’은 실로 놀랍다.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뮤지컬계에 데뷔한 지 3년, 그는 굴곡진 팬텀의 감정선을 소리로 그려내며 이야기의 깊이감을 조성했다. 특히, 격렬한 움직임 속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성량과 호흡은 또 다른 호흡 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소프라노 김순영의 연기 변신도 놀랍다. 풍부하고 힘 있는 소리를 가진 그녀는 때로는 순수한 숙녀로, 카리스마를 지닌 프리마돈나로, 따뜻한 음색의 어머니로 이야기를 품었다. 또한, 카리에르 역의 박철호는 묵직한 저음과 절절한 감성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부성애를 연기했다.

뮤지컬 ‘팬텀’은 7월 26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의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