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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규수 해피런(주) 대표> 한국이 급격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노인들의 '끼니' 걱정을 하게 된다. 전체 노인의 67.5%는 혼자 살거나(독거노인) 부부만 살고 있다는 정부 통계 때문이다.
<p class="바탕글">그래서 가끔은 외로운 사람들끼리 모여 '한솥밥'을 지어먹는 자활공동체를 꿈꾸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노인 수용시설을 기피하는 젊은 사람들도 자신의 노후생활을 위한 대안으로 그 같은 생산 공동체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p class="바탕글">실제 '한솥밥을 먹는 사람'과 같은 정다운 말도 없다. 한 집에 살며 밥을 같이 먹는 친가족적인 표현이어서 그렇다. 그래서 직장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거나 공동체에 새 회원이 들어오면 한솥밥을 먹게 됐다고 반가워하는 것이다.
<p class="바탕글">그만큼 한국인에게 '밥'과 '밥 문화'가 중요했다. 밥을 먹고 내는 힘, 즉 '밥심'으로 살아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밥을 나타내는 우리말 단어가 무려 170여 가지에 이른다.
<p class="바탕글">그중에 재미있는 말이 '메'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제사 때 신위(神位) 앞에 놓는 밥" 또는 "궁중에서 밥을 일컫는 말"이다.
<p class="바탕글">어느 국어학자는 '며느리'라는 말도 밥이라는 뜻의 '메'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형인 '메나리'에서 나온 말로 '메'+'나리'의 합성어, 즉 "메를 내려 받는 사람"의 뜻이 '며느리'로 됐다는 것이다.
<p class="바탕글">지금도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메를 올리라"는 말을 쓰는데, 조상신에게 밥을 드리고 그 밥을 다시 내려 받는 사람이 바로 '며느리'라는 것이다.
<p class="바탕글">원시 모계사회의 전통이 유전되어 온 현상이다. 그래서 '며느리'라는 말은 한 가정의 '제사장을 이어받는 사람'이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옛날에는 할머니, 어머니 등 여성의 지위가 그만큼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p class="바탕글">따라서 밥이란 단어도 격에 따라 달랐다. 기독교 기도문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들은 '끼니'라 불렀다.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 또는 그렇게 먹는 일이라는 뜻이다.
<p class="바탕글">계층별로 보면, 신(神)이 먹는 '메'를 어린아이가 먹으면 '맘마'다. 대신 임금님의 밥은 '수라'다. 어른들이나 양반들이 먹으면 '진지'요, 하인이 먹으면 '입시'며, 거지가 먹으면 '동냥'이고, 죄수가 먹으면 '콩밥'이다.
<p class="바탕글">그렇게 나이나 신분에 따른 밥 이름이 8종이다. 그 외도 수두룩하다. 밖에서 먹는 밥 이름이 '객짓밥' '눈치밥' 등 5종, 담긴 모양이나 그릇에 따른 명칭이 '고봉밥' '공기밥' 등 15종, 일하면서 먹는 밥이 '곁두리' '기승밥' 등 7종이나 된다.
<p class="바탕글">밥 이름 중 가장 많은 것이 '콩나물밥'과 같이 '재료에 따른 밥'으로 64종이다. 김밥 꽁보리밥 비빔밥 볶음밥 약밥 등 흔히 먹는 밥이 있는가 하면, 애벌 찧은 쌀로 지은 '날반'이나, 흰밥을 매홍지(梅紅紙) 위에 뒤섞어서 불그스름한 복숭앗빛으로 물을 들인 '도화반' 등 처음 들어보는 밥도 있다.
<p class="바탕글">이러한 밥 이름들은 우리 민족의 생활상을 그대로 나타내는 또 하나의 지표다. 한 가정에서나, 한 고을에서나, 한 나라 안에서 임금님과 백성들이 모여 한솥밥을 먹으며 살아온 5천년 역사가 바로 우리의 '밥'이었으며, 그 '밥'을 '며느리'들이 준비해왔다.
<p class="바탕글">우리 조상들은 비록 보릿고개 등 어려운 생활을 겪기도 했지만 "나 혼자 먹자"고 밥을 짓지는 않은 것이 한민족의 여유이자 멋이었다.
<p class="바탕글">그 증거가 바로 '까치밥'이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고 믿었던 것처럼 까치라는 짐승도 한 가족이기에 그들이 먹을 수 있도록 수확기에 높은 나무위의 과일을 전부 따지 않고 몇 개 남겨 놓게 되었다.
<p class="바탕글">가을이 가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이 왔을 때 먹이를 찾지 못하는 새들이나 작은 짐승들이 한 끼의 먹이라도 해결하라고 남겨 놓은 인정의 발로다.
<p class="바탕글">또 '고수레'도 있었다. 산이나 들에서 밥을 먹을 때 산신(山神)이나 지신(地神)에게 먼저 바친다는 뜻으로 음식을 조금 떼어 던지는 것이다.
<p class="바탕글">이렇듯 인간과 짐승, 산과 들, 하늘과 땅이 모두 한솥밥 가족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우리의 역사였고 홍익인간(弘益人間)들의 생활철학이었다.
<p class="바탕글">그래서 한 방송사(MBC)에서는 지난해 추석특집으로 '남북한 화합 프로젝트-한솥밥'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했다.
<p class="바탕글">몇몇 연예인 가족들이 탈북자들과 한 가족을 이루며 사는 모습을 통해 문화와 이념을 뛰어넘어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린 프로그램이었다.
<p class="바탕글">필자 역시 외로운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얼마 전부터 거대한 '한솥밥' 프로그램을 준비해오고 있다. 젊은이들은 물론 장년들에게도 미래를 향한 인생 설계를 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밥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p class="바탕글">그래서 밥 이름도 지었다. 야생의 농장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약초 100가지를 넣은 비빔밥이 '백초(百草) 밥'이고, 100가지의 야생화로 비빈 밥이 '백화(百花) 밥'이다. 2년 전부터 매년 행사를 개최하고 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야생의 맛, 인간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친지들의 말을 듣고 있다.
<p class="바탕글">'백초밥'과 '백화밥'의 재료는 기본적으로 무공해 자연환경이나 농약 비료 등 화학물질이 개입되지 않은 곳에서 자란 산나물과 꽃이다.
<p class="바탕글">따라서 인간보호가 '백초밥'에, 자연보호가 '백화밥'에 있다는 사실을 많은 친지들이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p class="바탕글">글_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