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비수사 유해진, 김중산 도사는 1978년 부산유괴사건 범인 어떻게 잡았나

입력 2015-05-14 01:00


▲ 극비수사 유해진, 극비수사 유해진 김중산 도사, 1978년 부산유괴사건

극비수사 유해진의 김중산 도사와 1978년 부산유괴사건은 어떨까?

극비수사 유해진은 실화 캐릭터 김중산 도사 역을 맡았다. 유해진은 13일 영화 '극비수사' 제작보고회에서 실화 김중산 도사 역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극비수사 유해진은 "부산 세트장에서 촬영할 때 따님 세 분 중 두 분이 오셨다. 대쪽같이 살아오셨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참 부담스러웠다. 촬영하면서 만난 분들(김중산 딸)에게는 모두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 이야기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 아버님이 저랬구나'를 느낄 것 같아서 더욱 조심스럽다"고 털어놨다.

극비수사 유해진의 김중산 도사와 함께 배경에 관심이 모아졌다. '극비수사'는 1978년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던 사건, 사주로 유괴된 아이를 찾은 형사와 도사 김중산의 33일간의 실화가 배경이다.

'1978년 부산유괴사건'은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던 사건이다. 1978년, 그리고 79년에 부산의 한 초등학생이 두 차례에 걸쳐 유괴를 당하는 사건이 '극비수사'의 출발이다. 79년에 발생했던 2차 사건의 경우, 아이의 몸값이 유괴사상 최고 액수였던 1억 5천 만원에 달했다. 범인 검거를 위해 국내 최초로 최면 수사가 도입되었으며,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할 정도로 놀라운 사건이었다.

'1978년 부산유괴사건'은 1차 사건에서 아이를 구한 사람이 따로 있었다. 아이 부모의 특별 요청으로 수사를 의뢰 받았던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가 그 주인공이다. 대다수의 어린이 유괴사건이 공개수사로 전환될 경우, 아이의 생사가 위험해지는 전례가 많았기 때문에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는 오로지 '아이를 찾기 위해서' 수사관할을 벗어나서 비밀리에 특별 수사를 진행했고, 두 사람의 노력 덕분에 78년 1차 사건에서 아이는 무사히 33일만에 부모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비공개로 진행되었던 수사였던 만큼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의 이야기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고, 수사가 종결된 이후에도 두 사람의 공적이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다.

'극비수사' 곽경택 감독은 "소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소신이 결국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극비수사'는 6월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