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대상 화장품전문점 '탈세 자유 구역 우려'

입력 2015-05-08 15:38
수정 2015-05-08 16:29
카드 결제 시 수수료 요구, 현금영수증 발행 거부 등 탈세 우려


이대, 동대문 등 관광 상권 속속 등장…최대 80% 할인 지역 상점 울상

한지은(29, 가명) 씨는 최근 이대 상권에 놀러 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3만원짜리 화장품을 구입하면서 카드를 내밀었는데 점원이 3만 900원을 결제한 것이다. 이유를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카드 결제는 무조건 수수료가 붙는다"는 말이었다. 한지은 씨는 "카드 결제 시 수수료를 붙이는 건 위법 아니냐"며 "점원의 적반하장 태도에 불쾌함을 느꼈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최근 이대 등 관광 상권에 '파격 할인'을 내세운 중국인 대상 화장품전문점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가운데, 카드 결제 시 별도 수수료를 요구하거나 현금 영수증 발행을 거부하고 있어 소비자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하루에도 수백명의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 하는 이 같은 업체들의 경우 1일 현금결제 규모가 수백만원이 넘지만, 현금 매출에 대한 추적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화장품전문점이 탈세 자유 구역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6일 이대 상권에 위치한 A 화장품 도매 전문점. 기자는 수십 명 고객으로 북적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최근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B사 메이크업 제품을 골랐다. 정가 4만원인 해당 제품은 이 곳에서 3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한참 줄을 선 끝에 '카드' 결제를 시도하자 점원은 계산기로 '30,000*0.03'을 누르기 시작했다. 명시된 금액에 0.03을 곱하는 이유를 묻자 "카드 결제는 그렇다"는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점원은 이어 "혹시 한국인이냐"면서 "여기는 중국인 대상 도매가게다. 한국인에게는 안 판다"고 말하며 다음 고객에게 시선을 돌렸다.

A 매장 근처에 위치한 모 화장품 브랜드숍 점주는 "이전에 여성용품을 구입하고 현금 결제를 했는데 영수증이 없다면서 안 줬다. 손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반품도 안 된다고 하더라"며 위법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로 신용카드를 거부하거나 별도의 수수료를 받는 것은 여신전문금융업법 제19조 가맹점의 준수사항에 저촉되는 행위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또한 소득세법에 따라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현금영수증 발행은 의무이며, 거부 시 과태료를 부과하게 된다.

이 점주는 또한 "2년사이 매장 크기가 두 배로 커졌다. 하루에도 화물트럭이 5~6대가 왔다갔다 한다"며 "실제 수입에 비해 내는 세금은 얼마일지 궁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광 상권 내 중국인 대상 화장품전문점 등장의 더 큰 문제는 시장 가격을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C매장 점주는 "화장품 도매 전문점이 생긴 이후 상권 화장품 매출이 급하락 했다"며 "똑같은 제품을 50% 이상 할인 판매하니까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A 매장의 화장품은 기본 30%에서 최대 80%까지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었다.

중국인 유학생 소호무역 증가…관광 상권 위주 영업 활발


무너진 시장 가격…공정거래법상 재판매가격유지행위 저촉

동일 상권에 위치한 또 다른 화장품 도매 전문점을 찾았다. 중국인 관광객에게 인기라는 S사 마스크팩을 구입하고 카드를 내밀자 명시된 금액 그대로 정상 결제됐다. 금액은 1+1에 2만 9,000원. 바로 옆에 위치한 O 화장품 매장에서는 동일 제품이 1개 3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정직하게 영업하는 매장이었지만 큰 폭의 할인 정책에 주변 매장이 타격 입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문제는 이런 화장품 도매 전문점이 이대뿐 아니라 명동, 동대문, 홍대 등 중심 관광 상권과 중국인 집성촌으로 꼽히는 가산디지털단지역 부근에 속속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장품 유통에 정통한 D사 대표는 "한국 물품을 중국 현지에 파는 보따리상, 일명 '따이공'의 중국 진입이 막히면서 중국인 유학생들의 소호무역(구매대행 개념)이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중국인 대상 도매 전문점 등장 이유를 분석했다.

이어 이 대표는 "중국에서 팔아야 할 물품이 도매 가격으로 다시 한국에 들어오면서 유통 구조가 크게 흔들리고, 시장 가격이 무너지고 있다"며 "크게는 탈세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 단속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모니터링 강화를 촉구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카드 결제 시 별도 수수료를 요구하거나 현금영수증을 거부하는 등의 행위는 현행법상 위법 행위"라며 "경우에 따라 조세포탈죄가 성립돼 처벌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가격 부분의 경우 공정거래법상 재판매가격유지행위 내용에 따라 제품 본사에서 통제 시 처벌 가능하다"며 "판매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제재는 현행법상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