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섹남’과 ‘쿡방남’이 주목받고 있다. 왼쪽부터 ‘뇌섹시대 - 문제적남자’의 하석진, ‘삼시세끼-어촌편’의 차승원, ‘냉장고를 부탁해’의 정경호(사진 = tvN, JTBC)
과학이나 심리학, 마케팅에서 뇌가 핫트렌드라더니 이상적인 남성상에도 뇌가 각광받고 있는 모양이다. 바로 ‘뇌섹남’이다. ‘뇌아남’ 즉 뇌가 아픈 남자들이 유행을 하더니 이제 ‘뇌가 섹시한 남자’가 대세라는 말이 매체를 오르내린다.
뇌의 생김새가 섹시하다는 말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까 난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상 ‘뇌섹남’은 뇌의 생김새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알려진 대로 말을 재치 있게 하거나 뼈있는 말을 적절하게 집어내는 남성일 수 있다. ‘킹스맨’의 콜린 퍼스의 경우가 어떻게 보면 뇌섹남에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요즘 자주 언급되는 뇌섹남은 주로 예능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점에서 콜린 퍼스가 훨씬 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매너도 매우 섹시하면서도 점잖기 때문이다.
예능에서는 주로 대부분 웃겨줘야 한다. 예능에서 아쉬운 것은 항상 웃음과 재치 위주의 남자가 뇌섹남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이러한 뇌섹남은 집안 배경이나 학벌, 그리고 천재적인 우월자의 개념으로 확장지고 있다. 원래 뇌섹남이 의식 있는 개념남을 표방했던 예능코드에서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요즘에 대세남으로 떠오르고 있는 또 하나의 남성상은 ‘쿡방남’이다. 이 쿡방남도 뇌섹남과 같이 예능프로그램에 주로 출현(?)한다. 뇌섹남이 뇌가 섹시하다면 쿡방남은 손이 섹시한 남자들이다. 그런데 손이 섹시하다는 것은 손 자체의 생김새와는 거리가 있다.
식재료를 요리해내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차줌마, 차승원을 통해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손놀림이 섹시한 것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낸다.
뇌섹남이 주로 청각적인 말을 통해 뇌에 즐거움을 준다면, 쿡방남은 청각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시각적 그리고 미각까지도 건드리며 뇌를 즐겁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쿡방남이 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는다. 반드시 따라하듯 음식을 만들어 먹지는 않는다. 비록 일상의 식재료와 요리 종류를 통해 생활밀착형 음식을 보여줘도 말이다. 요리 이미지를 너무 많이 흡입을 하여 맛에 대한 피로증이 생겼는지 모른다. 이미지로 소비하는 차원에서 볼 때, 쿡방남은 훈남이거나 섹시가이일수록 선호도가 높다. 하지만 뇌섹남은 외모의 섹슈얼리티는 거리가 멀어도 되는 듯 싶다.
이렇게 살펴보면, 뇌섹남이 더 강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하면 뇌섹남은 허구적이며, 그 범위도 매우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쿡방남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기호들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유리하다.
쿡방남은 평균적인 남성들이 못하는 요리를 자유자재로 하지만 웬만한 여성들보다 더 낫기 때문에 선호의 대상이 된다. 사실상 남성들에게는 스트레스를 주는 비호감의 대상이 되기 쉽다. 쿡방남은 그야말로 여성들이 소비하는 기호품인 것이다. 요리만이 아니라 물리적인 육체의 섹시함도 즐기는 측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원초적이다.
이에 비해 뇌섹남은 원초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원초적인 본능을 더 강하게 가질수록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뇌섹남은 실제적이기보다는 관념적이다. 예능프로그램의 캐릭터에서 약간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자신의 존재적 가치도 높이고 보는 이들의 품격도 높여줄 수 있을 것 같은 남성상이기는 하지만 강력한 매력의 포스를 갖고 있지는 못한다.
어떻게 보면, 이미 쿡방남에게 뇌가 섹시한 점이 느껴질 수 있다. 관념적인 섹시함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의 지혜를 알고 있는 뇌섹남인 것이다. 마치 쿡방이 일상생활 속으로 밀착해서 요리를 끌고 내려왔듯이 말이다. 뇌섹남이 항구적으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결국 일상 생활 속으로 얼마나 깊이 들어 앉아있는가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뇌섹남들의 뒷배경에 더 관심을 집중하는 형태로 변화해가는 것은 뇌섹의 허구성을 함의한다. 현실 속에서 그들을 받쳐주는 경제적인 토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국 이미지로 소비될 가능성이 많으며, 경제적 토대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하나의 기호품에 머물 가능성은 언제나 충분하다. 쿡방남들이 치열한 일상의 샐러리맨들의 삶과 완전히 분리돼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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