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 요물이다. ‘병맛 드립’을 수시로 날리고 ‘동심파괴’를 일삼는데 밉지가 않다. 작품 전체는 유머로 점철되어 있지만, 풍자의 끝은 둔중하고 육감적이다. 눈물을 훔치게 될 땐 웬일인지 약간의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입으론 실실 웃음이 나는 것이 참으로 희한하다. 기존의 뮤지컬과는 전혀 다른 신선함과 독창성으로 찾아온 뮤지컬 ‘난쟁이들’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동화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곳의 난쟁이 마을에는 ‘찰리’와 ‘빅’이 살고 있다. 하루 종일 광산에서 보석만 캐는 답답한 생활에 신물이 난 ‘찰리’는 동화나라에 무도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백설공주를 그리워하는 난쟁이 할아버지 ‘빅’과 함께 길을 떠난다. 마녀의 도움으로 ‘9등신 청년’으로 거듭난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무도회에 참석하게 된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젊다. 젊은 창작진들이 마음먹고 만든 재미있는 작품답게 생기가 ‘제주산 직배송 활어급’이다. ‘까놓고 말하기’의 작법은 마치 온몸을 옥죄는 코르셋을 벗어던진 듯 관객의 숨통을 틔워놓는다. ‘있는 체’하지 않아 체할 염려 없이 소화가 잘되는 작품이다.
대사는 화끈하다. 백설공주는 훤칠하고 잘생긴 왕자와 결혼했지만 성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 무도회에 참석한 그녀는 “첫날 밤, 그이는 정말 꿈틀거리기만 하더라. 공든 탑도 무너지더라고” 말하고, 신데렐라는 팔자 탓을 하며 “염병~ 담배 있니?”라고 내뱉는다. 우아한 말투에 얹혀진 거친 공주의 언어들은 극단의 가치들이 충돌하며 불러오는 ‘이질적 재미’를 유발한다.
정형화된 기존 캐릭터의 성격과 어긋나는 대사들의 재미도 크다. 찰리의 아버지는 죽기 전 “절대 가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절박한(?) 유언을 남기고, 마법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마녀는 “돈이 곧 마법이다!”를 주장한다. 그뿐인가. 동화 속 사랑을 간절히 원했던 신데렐라는 “여잔 사랑만 믿으면 안 돼”라고 단호하게 정의한다. 무대에는 ‘가장≠가장’, ‘마법<돈’, ‘사랑=처세’ 등의 다양한 등식이 난립한다. ‘현실 친화적’인 다양한 삶의 등식들은 관객을 제대로 빵 터트린다. 이는, 무대 위 이야기가 ‘현실≠동화’가 아닌 ‘현실=동화’의 등식으로서 관객과의 공감대를 끈끈하게 형성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어른이 동화’를 표방한다. 동화의 정의는 어린이를 위해 동심으로 지어진 이야기이다. 통상적으로 공상적, 서정적, 교훈적 내용이 내포되어 있는데, 뮤지컬 ‘난쟁이들’도 그러한 측면에서 충분히 동화적인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늙은 몸으로 백설공주를 위해 높다란 절벽을 타는 난쟁이 ‘빅’이나, 어리석을 정도로 ‘괜찮아’를 연발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인어공주’는 동화의 클리셰들을 그대로 복사한다. 이들의 희생은 대가 없는 ‘사랑의 산물’로서 교훈적인 의미를 충분히 던져놓는다. 대신, 앞서 보여주었던 우리 사회에 퇴색된 본질로 인해 이들이 보여주는 순수한 ‘사랑’의 가치는 더욱 환하고 눈부시게 다가온다.
작품 속 메시지는 결국 ‘사랑’에 대한 것이다. 수많은 동화가 다뤄왔고, 앞으로도 다뤄질 불변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루하진 않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꾸어야 하는 꿈에 대해, 우리가 해야 할 사랑에 대해 저들만의 방식으로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해피엔딩을 그린다.
뮤지컬 ‘난쟁이들’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난쟁이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또 다른 히어로는 ‘왕자 1, 2, 3’이다. 이들은 블론드색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끼리 끼리 끼리끼리 만나 사람들은 끼리끼리 만나”를 외치고, 허세 어린 말투와 사랑스러운 골반 튕기기로 객석을 초토화시킨다. ‘왕자 1, 2, 3’을 맡은 배우 우찬, 전역산, 송광일은 개개인으로도 좋은 역량을 보여줬지만, 함께할 때는 ‘삼체합일(三體合一)’ 수준의 케미스트리로 폭발하는 시너지 효과를 보여줬다. ‘찰리’ 역의 조형균, ‘빅’ 역의 최호중, 백설공주 역의 최유하, 인어공주 역의 백은혜도 고르고 조화로운 연기로 극의 흐름을 잘 어루만졌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4월 26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