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칼럼] 김기종과 폭탄테러… 인정욕구의 폭주를 경계하자

입력 2015-03-16 10:19
수정 2015-03-19 10:25
▲ 마크 리퍼트 주한미 대사가 지난 10일 오후 세브란스병원 로비를 걸어나오며 시민들의 응원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사진 = 한경DB)

최근 김기종 씨가 미국 대사를 테러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다. 이 사건을 테러라고 할 것인가, 습격이라고 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있었는데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보면 테러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이렇게 개인적인 원한관계 없이 정치적인 명분을 내걸고 폭력을 자행하는 걸 우린 지금까지 테러라고 규정해왔다.

얼마 전 한 십대가 토크콘서트에 사제인화물질을 투척한 사건도 테러라고 규정됐었다. 그 사건이 테러라면 이번 미 대사 습격사건도 테러가 맞다.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어떤 사건은 테러고 어떤 사건은 테러가 아니고, 이런 식으로 잣대가 왔다갔다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란만을 빚을 뿐이다.

한 쪽에선 토크콘서트 사제폭발물 사건을 테러가 아니라고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반면 반대편에선 미 대사 습격 사건을 테러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상황. 소통사회로 가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범인 김기종은 80년대적 반미의식을 망상적 수준으로까지 발전시켜온 것으로 추측된다. 80년대에 민족주의적 의식을 가지고 자주통일을 내세웠던 학생운동권은 자연스럽게 반미로 연결됐었는데, 그중 많은 사람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했지만 김기종만은 마치 화석처럼 변하지 않고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온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정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과거 일간지 기자와 인터뷰하며 자신이 사찰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다 기자가 그 근거를 묻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하며 테이블을 엎으려고 했다는 것을 봐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외 다른 사정에 대해서는 검찰조사에서 더 자세하게 밝혀질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김기종의 인정욕구에 대해서다. 이번 일을 저지른 동기 중의 하나가 바로 인정욕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기종은 80년대 초부터 문화운동단체를 이끌어왔기 때문에 연배로만 치면 민주화운동계의 대부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의 그는 소외받는 처지였다. 안면이 있는 후배들조차도 김기종을 무시하거나 피했다.

워낙 공격적이며 불안정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모두가 그를 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무시당할수록 그의 분노는 더 커져갔다. 자신이 80년대 초부터 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지켜왔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에선 무시당하기 때문에, 인정받고 존중받으려는 욕구가 커져갔다. 그럴수록 그는 사람들에게 더욱 공격적으로 대했고, 그러면 주위 사람들은 더욱 그를 멀리 했으며, 그것이 그의 분노를 더 키우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든 것으로 추측된다.

평소 무시당하던 그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순간은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 때였다. 특히 일본 대사를 습격했을 때는 애국영웅 대접을 받기도 했다. 당시 누리꾼은 그를 열사로 떠받들었다. 이런 기억들이 그를 또다시 대사를 향한 극단행동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병리적인 인정욕구와 반미망상의 결합이었던 셈이다.

김기종 사건에서 인정욕구의 폭주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빚어내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인정욕구의 폭주는 김기종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제폭발물 테러를 저지른 10대도 자신의 행동을 SNS로 중계한 것을 보면 타인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대단히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 초 부산대를 폭파하겠다는 협박글을 올린 사람도 관심 받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작년에 세월호 사고 피해 여교사, 여학생을 성적으로 모욕한 사람도 주목 받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얼마 전 단원고 교복을 사서 입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묵에 비유한 인증샷을 올린 사람도 관심 받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패륜적인 악플을 쓰는 사람들이나,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들의 동기도 주목받고 싶어서일 때가 많다. 요즘 일부 10대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일탈행위의 인증샷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주목받기 위해서다.

우리 사회가 거대한 인정투쟁의 전장이 돼가는 느낌이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과시하고 타인의 관심을 받으려고 황당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주로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를 통해 그런 일들이 벌어졌었지만, 사제폭발물 사건을 보면 이젠 실제 현실에서 물리적으로 존재 증명을 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추세다.

한국 사회는 루저를 양산하는 승자독식형 양극화 체제로 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다수가 무시당하며 무력감, 박탈감, 열패감, 분노 등을 느끼도록 구조화됐다. 20대가 되면 무력감이 폭발한다. 50대 이후에도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사회적 기여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퇴물 취급당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치솟는다. 지난 대선 때 나타난 50대 이상의 놀라운 투표열기나, ‘국제시장’ 열기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인정욕구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스스로 자기자신의 존재의 의의를 충만하게 느끼고 싶은 마음, 과시하고 싶은 마음 등이 병리적으로 자라나면 꼭 테러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큰 문제들을 일으킬 수 있다. 인정욕구의 폭주를 경계할 때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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