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야기를 품고 돌아온 음악”…뮤지컬 ‘드림걸즈’

입력 2015-03-11 16:44


음악의 황홀경에 감탄, 또 감탄이다. 뮤지컬 ‘드림걸즈’는 쇼 뮤지컬이다. 1960년대 속스럽고 비정했던 쇼 비즈니스 세계를 바탕으로 번쩍번쩍한 무대와 리듬이 오간다. 하지만 그 화려한 덮개 이면엔 음악이라는 진심이 담겨있다. 에피가 “음악은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것”이라고 외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뮤지컬 ‘드림걸즈’는 보아야 하는 작품이 아닌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작품의 모티프는 1960년대를 풍미했던 여성 R&B그룹 ‘슈프림스’다. 노래하고 싶은 디트로이트 출신의 아가씨 에피, 디나, 로렐과 작곡가 씨씨가 세일즈맨 출신의 커티스를 만나 본격적인 쇼 비즈니스의 세계로 뛰어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엇갈린 사랑, 여자들의 우정과 꿈, 쇼 비즈니스의 명암을 절묘하게 뒤얽는다. 2006년 제작된 영화는 ‘제니퍼 허드슨’, ‘비욘세’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뮤지컬 ‘드림걸즈’의 힘은 역시나 음악이다. 1982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을 수상했던 음악은 이 ‘작품 그 자체’다. 영화를 통해 익히 알려진 ‘Listen’을 비롯해 ‘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 ‘Steppin' To The Bad Side’, ‘I'm changing’ 등은 전주만 흘러도 전율이 오른다. 배우들의 절절한 가창이 더해질 때면 관객은 음악의 중력에 휩쓸리고 만다. 가끔은 듣는 즐거움이 보는 즐거움을 압도하는 지점도 몇몇 있다.



‘음악’과 ‘가창’은 다른 일면이 있다. 같은 멜로디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드림걸즈’도 그렇다. 작품의 음악은 흑인 특유의 ‘소울’을 전제로 한다. 물론 커티스가 ‘드림스’를 백인들의 입맛에 맞는 ‘상품’으로 만들려 할 때, 그들의 음악은 ‘팝’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시작했던 음악도, 하고자 했던 음악도, 표현의 정서도 본질은 모두 ‘소울’에 있다. 후에 작곡가이자 에피의 동생인 씨씨가 자신의 음악을 탈색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에피에게 찾아가는 것도 그러한 맥락 중 하나다. 특정 인종의 감성이 녹아있기 때문에, 이를 무대에서 다른 인종이 똑같이 구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서편제’의 한 대목을 흑인이 부른다고 하자. 그것은 ‘서편제’의 리듬과 멜로디를 갖고 있더라도 전혀 다른 감성으로 관객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 배우들의 ‘소울’ 구현은 우려보다 훨씬 탄탄했다.

차지연은 그 ‘소울’의 구심점 역을 해냈다. 한국의 ‘한’이 소울의 DNA에 전이된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는 객석 전체를 울림으로 감싸 안았다. 특히, 온몸으로 불러내는 ‘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은 응어리진 에피의 상처를 거침없이 토해내며 입이 쩍 벌어지게 했다.

뮤지컬 ‘드림걸즈’는 보여줄 것도 많은 작품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도 많은 작품이다. 예를 들면, 늘 ‘자기중심적’이었던 에피는 여러 갈등을 겪으며 가족과 같은 사람들과 멀어지게 된다. 이후 그녀는 ‘딸’을 통해 서서히 변화를 겪게 되고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고 생각했던 이들과 극적인 화해를 하게 된다. 음악과 쇼가 관객의 눈과 귀를 매혹한다면,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는 가슴을 어루만진다.

하지만 초연은 ‘쇼 뮤지컬’로 자리를 틀면서 이야기의 비중이 다소 묵직하지 못했다. 얽히고설킨 인물들 사이에서 응집되고 폭렬하는 감정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2015년 뮤지컬 ‘드림걸즈’는 이야기에 조금 더 바짝 다가선다. 거의 송스루 뮤지컬에 가까웠던 초연에 비해 대사의 양이 많아졌고, 인물들 사이의 간격도 좁아졌다. 각 인물들의 캐릭터가 매끄럽게 살아나면서 자연스럽게 메시지의 힘도 훨씬 몸집을 키웠다.



6년 만에 돌아온 재연 무대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무대다. 초연 당시 작품은 LED 화면을 활용해 쇼 비즈니스계의 화려함을 그려냈지만, 다채로운 무대 활용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반면, 올해는 훨씬 더 감각적으로 다시 돌아왔다. 무대는 단편적으로 실제 장소를 눈앞에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축약적인 이미지를 통해 추상적이고 효과적인 무대를 보여줬다.

압축적인 무대 세트 구현의 일등공신은 66개의 ‘셀’이다. 여러 가지 사각형 모형들이 불규칙적으로 배열된 ‘막’은 무대를 상하로 누비며 다양한 공간을 창출해 낸다. 각각의 ‘셀’은 다양한 색을 입고 무대 위 화려한 조명으로 분하거나, 때로는 영상이 흘러나오는 스크린으로도 활용된다. 간혹 무대 배경에 영상이나 세트가 없을 경우, 빈 공간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커티스가 좋은 호텔의 출연권을 따내려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장면에서 무대 위의 소품은 전화 부스가 거의 전부다. 허전한 뒷배경은 바로 이 다양한 모양의 ‘셀’들이 채운다. 공간의 비어 있는 느낌은 줄이면서 전화부스 소품 하나만으로 장면을 구현해낸 영리한 무대 연출이다.

‘셀’의 이미지는 작품 전체에서 폭 넓게 활용된다. 극중 등장하는 라디오 부스나 녹음실도 간소화 된 사각형 틀로 형상화 되어 있고, 디나의 모습이 보이는 대형 전광판도 셀들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곳곳에 등장하는 ‘셀’들의 이미지를 찾는 것도 작품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아쉬운 점도 있다. 배경의 정의는 ‘사건이나 인물 주변의 정경’을 말한다. 전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셈이다. 뮤지컬 ‘드림걸즈’의 배경에도 다양한 무대장치가 등장한다. 그중 주요한 이미지를 그려주는 것이 바로 ‘영상’이다. 뮤지컬 ‘드림걸즈’ 속 영상은 지나치게 튀는 구석이 있다. 작품은 실제 배경은 1960년인데, 영상은 마치 21세기 최첨단 기술을 보는 듯 이질적이다. 특히, ‘Steppin' To The Bad Side’에서 흘러나오는 차가 도로를 질주하는 영상은 자동차 게임 ‘이니셜D’를 보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다. 영상에도 조금 더 시대적인 뉘앙스를 반영했다면 극중의 상황적 배경과 더 잘 어우러지지 않았을까 한다.

군데군데 비어보이는 부분도 있다. 특히, 아쉬움을 남겼던 것이 ‘Steppin’ To The Bad Side’다. 이 뮤지컬넘버는 커티스와 씨씨 등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하겠다’라고 다짐하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1막 후반부 갈등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극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장면은 뒤에 영상을 깔아놓고, 안무로 넓은 무대를 채운다. 안무의 동작은 다양했지만 주변과 섬세하게 조응하지 못했고, 무대는 화려한 조명, 영상, 배우들을 입고도 휑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뮤지컬 ‘드림걸즈’의 히든카드는 배우들이다. ‘에피’ 역의 차지연은 독보적인 포효로 관객을 제압한다. 눈빛, 제스쳐, 성량, 기교, 울림 등에서도 압도적이지만, 관객과의 기 싸움에서도 절대 물러서질 않는다. 말하자면 차지연한테 진 기분이다. ‘디나’ 역의 윤공주는 안정감 있는 연기력으로 극의 중심을 잘 잡았고, ‘커티스’ 역의 김준현은 다른 공연에서 보여주었던 노래와 연기의 폭발력을 제대로 발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뮤지컬 ‘드림걸즈’는 5월 25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