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칼럼] ‘압구정백야’, ‘무한도전’으로 쌓은 명성 ‘임성한월드’로 깎아먹는다

입력 2015-02-13 09:49
수정 2015-02-18 01:02
▲ ‘압구정백야’는 최근 육선지(백옥담 분)의 갑작스러운 노출신을 등장시켜 질타를 받았다.(사진 = MBC)

MBC가 120회로 예정됐던 ‘압구정백야’를 29회 더 연장해 149회까지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임성한 작가의 전작이었던 ‘오로라공주’도 당초 120회였다가 30회를 더 연장했었다.

‘오로라공주’는 갈팡질팡 스토리로 악명을 떨친 바 있다. 남자주인공이 극 중반부에 갑자기 사라지고 다른 출연자가 주연으로 바뀌었다. 여주인공의 오빠들은 처음엔 재벌2세 한량 캐릭터였다가 중간에 갑자기 책임감 있고 매력적인 중후남 캐릭터로 변했다.

PD는 말도 못할 찌질남 캐릭터였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마성의 훈남 캐릭터로 변했다. 러브라인도 중반부에 혼란스럽게 이어졌다. 스토리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막 전개된다는 느낌이었다.

주요 인물들의 뜬금없는 하차도 논란을 일으켰다. 오빠들이 갑자기 사라졌고, 여주인공의 아버지를 비롯한 출연자들이 유체이탈을 한 후 죽어갔다. 그렇게 사람들이 맥없이 죽어간 드라마에서 마지막엔 ‘암세포도 생명’이라며 절대생명주의를 외쳤다, 도무지 앞뒤가 안 맞았다.

이런 드라마를 연장방영했을 때부터 이미 질타가 쏟아졌었다. 그런 일을 겪고도 이번에 또다시 연장방영으로 응수한 것이다. 사회적인 논란엔 아예 신경을 끄기로 한 것일까?

‘압구정백야’도 벌써부터 황당 반전 스토리를 선보이고 있다. 여주인공이 결혼식까지 올린 상태에서 갑자기 남편을 죽인 것이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 사이의 러브라인과 남편될 남자와의 러브라인이 얽혀있었는데, 이 상황을 치밀한 전개를 통해 하나하나 풀어간 것이 아니라 한 쪽을 갑자기 죽여버리는 것으로 해결해버렸다.

삼각관계 설정은 많다. 그러나 한 쪽이랑 결혼할 것처럼 내용을 전개해 시청자의 관심을 고조시켜놓고 갑자기 상대를 죽이는 것으로 판을 뒤엎는 작법은 매우 보기 드물다. 범죄스릴러도 아닌 일일, 주말 가족드라마에선 더욱 그렇다. 갈등을 심화시키다 갑자기 캐릭터를 죽여서 상황을 해결해버리는 드라마가 방송사로부터 환영받는다면 어느 작가가 치밀한 이야기전개를 만들어내기 위해 숱한 밤을 지새우겠는가?

▲ ‘압구정백야’의 백야(박하나 분)를 중심으로 왼편의 장화엄(강은탁 분)과 오른편의 장무엄(송원근 분)(사진 = MBC)

작품의 재미도 깊은 통찰과 완성도를 통해 이끌어내기보단 자극적인 소재들을 배치하는 것으로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툭하면 등장하는 초자연적 설정들이 그렇다. ‘오로라공주’ 땐 유체이탈하고 죽는 설정이더니 ‘압구정백야’에선 귀신 보고 죽었다. 죽은 남자가 죽기 전에 어머니의 귀신을 본 것이다. ‘오로라공주’ 땐 식당에서 여자들이 집단난투극을 벌렸는데 ‘압구정백야’에선 수영장에서 여자들이 집단난투극을 보여줬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노출 장면들도 여전하다. 가장 최근엔 백옥담이 갑자기 수영복을 입어 질타를 받았다.

인간의 가장 1차원적이고 저열한 부분을 세세하게 드러내 시청자를 자극하는 방식도 여전하다. 여주인공의 새신랑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모녀가 그 비극에 혀를 차다가, 갑자기 어머니가 죽은 남자의 탄탄한 상반신을 상상하는 기괴한 장면도 나왔다. 양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비통해하던 양어머니는 갑자기 방귀를 뀌었다. 자기 딸이 며느리로 들어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여주인공에게 죽은 아들의 돈을 넘긴다고 하자 ‘꽤 될 거구만 그걸 다 준다고?’라며 그 스트레스의 와중에도 저열한 속마음을 드러냈다.

임성한 작가는 이렇게 1차원적인 자극과 함께 기가 막힌 설정으로 시청자에게 잔재미를 주면서 이목을 사로잡는다. 이번엔 친딸이 어머니의 며느리로 들어가 시어머니 노릇을 하며 어머니를 괴롭힌다는 기막힌 설정을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여주인공을 친어머니의 며느리로 들여보내야 자극적인 스토리가 생기는데, 동시에 남주인공과의 러브라인도 놓칠 수 없기 때문에 남편을 갑자기 죽여 ‘처녀-며느리’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또 어떤 황당한 설정이 시청자를 자극하는 수단으로 등장할지 알 수 없다. ‘오로라공주’의 전례를 보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등장할까 무섭다.

MBC는 방송사의 브랜드 가치는 이미 포기한 것일까? 과거 SBS가 기념비적인 드라마 ‘모래시계’로 방송사의 가치를 한순간에 올렸었다. 반면에 MBC는 거듭된 임성한월드 연장방영으로 브랜드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다.

이해하기 힘든 행보다. ‘무한도전’으로 쌓은 브랜드 위상을 임성한월드로 무너뜨릴 셈인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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