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귀신, 점쟁이, 절, 전생, 예지몽, 팔자는 임성한 작가 작품의 단골 소재다. MBC '압구정백야'에도 지금껏 이같은 소재가 여러 번 등장했다. 특히 극 중 인물들은 크고 작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신'을 찾는다. 조나단(김민수)이 죽은 친모의 꿈을 꾸고 데자뷰를 겪는다거나, 백은하(이보희)가 죽은 아들을 향해 "혼백이 있다면 도와다오. 나중에 저승에서 용서 빌게"라고 읊조리고, 박하나는 남편 조나단과 친오빠 백영준(심형탁)의 죽음 앞에서 '혼백이 있으면 아들로 태어나줘', '신이 있다면 나랑 맞짱뜨자'라고 외쳤다.
임성한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람의 삶과 죽음, 팔자가 모두 신의 소관이라고 여기는 듯 하다. 이는 현대 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영역이니 제쳐둔다 하더라도 좀 지나치다. 많은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음에도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죽음, 미신, 귀신, 저승, 전생이 흥미로운 소재임은 분명하다. 작품에서 한 두 번 언급되면 귀를 쫑긋하고 신선하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계속 반복되니 이제는 실소가 나온다.
11일 방송된 '압구정백야'에도 어김없이 '신'이 등장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장화엄(강은탁)의 청혼을 거절하고 조나단의 집으로 들어가는 백야의 모습이 그려졌다. 백야는 자신을 붙잡는 화엄을 향해 "신은 내 행복 바라지 않아"라며 이를 거절했다. 이에 화엄은 "살고 죽는 거 빼곤 우리 할 탓이야. 각자 의지, 노력으로 개척해 나가는게 우리 몫이야"라며 백야를 설득했지만, 백야는 "맞아. 살고 죽는 거 신의 영역이야. 내가 오빠 잡으면 신이 오빠마저 데려갈거야"라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쯤되면 임성한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바로 이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 실제 임성한 작가가 모시는 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작가의 관점이 작품에 투영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생각과 관점을 시청자들에게 주입시키려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는 점이다.
파격적이다 못해 파괴적인 소재와 대사들이 연이어 등장하니 시청자들은 점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임성한 작가는 이러한 반응에 눈과 귀를 닫은 듯 하다. 물론 작가 입장에서 이 같은 의견들을 모두 수용할 이유는 없다. 분명 임성한 작가의 이같은 전개와 독특한 소재를 좋아하는 시청자들 역시 많고, 이는 꾸준히 기록하고 있는 높은 시청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임성한 작가가 대단한 저력을 가진 스타 작가임은 틀림없다. 일명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고 불리는 그의 작품은 논란 속에서도 매 작품 높은 시청률과 화제몰이를 해왔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말이 있듯, 그의 작품에서는 임성한 자신이 신이다. 평일 저녁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소중한 30분을 책임지고 있는 '압구정백야'의 '신'이 시청자에게 자극과 불편함보다는 제대로 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고마운 '신'이 되어주길 바라 본다.(사진=MBC '압구정백야' 화면 캡처)
한국경제TV 박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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