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게 내공을 쌓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언젠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았지만 ‘오만과 편견’ 속 배우 정혜성의 연기는 과하게 튀지도, 존재감 없이 묻히지도 않았다. 그동안 다수의 드라마에서 개성 또렷한 연기를 보여줬던 경험이 녹아났다.
최근 M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을 마치고 지난 22일 한국경제TV 와우스타와 만난 정혜성은 맑은 눈빛과 상큼한 미소가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배우였다. 중요한 건 마스크의 분위기를 넘어서는 그 자체의 매력이었다. 더없이 솔직하고 꾸밈없는 말들로 듣는 이를 매료시켰다.
“많이 섭섭하고 다시 촬영장에 나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아요. 촬영장에 있을 때가 참 행복했는데, 감독님, 선생님, 동료배우들과 헤어지기 싫었거든요.”
정혜성은 ‘오만과 편견’에서 일과 사랑 모두에 있어 거침없고 당찬 5년 차 수사관 유광미 역을 맡아 극에 활력소를 불어 넣었다. 비중과 분량은 크지 않았지만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에 100% 녹아들어 제 몫을 톡톡히 하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실 준비시간이 많지는 않았어요. 드라마 ‘기분 좋은 날’ 촬영 막바지에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여자 주인공은 아닌데 분량이 있어 욕심이 났어요. 감독님이 다른 작품 오디션 보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그때 느낌이 왔죠. 그래서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바로 합류하게 됐어요. 유광미 캐릭터는 내 성격과 70% 정도는 비슷해 연기하기 편했어요. 다만 나와 다른 점은 유광미는 밀당을 잘한다는 거죠. 저는 연애를 진짜 못 하는 초짜거든요. 좋아하면 막 티가 나요. 그동안 썸 타는 정도는 몇 번 있었지만 연애다운 연애를 못 해 봤어요.”
정혜성은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연기를 보여줬지만 초반 캐릭터를 잡는데 고생 했다. 그 때마다 김진민 감독과 선배 최민수의 애정 어린 충고가 큰 보약이 됐다.
“첫 미니시리즈라 초반에는 감을 잘 못 잡았어요. 그 때마다 김진민 감독님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죠. 초반에 제 분량이 많은 날이었는데, 전날 늦게까지 촬영하느라 대사를 못 외우고 NG를 내니까 10분 쉬는 시간을 주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감독님이 다가와서 귓속말로 ‘광미는 너 밖에 못 한다’라고 용기와 격려를 해 주셨어요. 최민수 선배님도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최민수 선배님과는 전체 7명이 모두 모여 촬영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각자 캐릭터의 대본을 파악하고 계신 거예요. 본인의 캐릭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확실히 잡아 주셨어요. 현장에서 대본을 보는 법, 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어요. 그래도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정혜성과 이장원 역할의 최우식과의 환상 호흡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사내 커플로 호흡을 맞추며 무거운 전개 속에 웃음을 선사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많은 장면에서 함께한 최우식은 정혜성에게 새로운 경험과 교훈을 선사했다.
“(최)우식 오빠에게 배울 점이 참 많았어요. 사적인 얘기는 안했어요. 드라마에 집중하기 위해 서로 캐릭터 이름을 불렀죠. 오빠를 붙잡고 궁금한 게 있으면 계속 물어봤어요. NG를 많이 내서 촬영장에 긴장감이 돌면 장난을 치면서 풀어줬어요. 에너지 넘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덕분에 안정감 있게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혜성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최우식과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다 취중 키스하는 장면을 꼽았다. 극중 장원은 술기운에 광미에게 입을 맞추고 시원하게 따귀 한 대를 맞았다. 하지만 광미는 곧 “이런 못된 버릇은 어디서 배웠냐. 하다가 마는 게 어디 있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장원에게 키스를 한다.
“포장마차 취중 키스 장면은 여의도 MBC 앞에서 찍었어요.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아서 한 번에 가야한다고 생각하며 최면을 걸었어요. 사실 당시에는 촬영이 많이 밀려 있어서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시트콤 ‘감자별 2013QR3’에서도 진구와 키스 장면이 있었는데, 남자파트너 복이 있나 봐요.”(웃음)
정혜성은 출연이 결정된 후 유광미 역에 녹아들기 위해 진짜 수사관을 만나 말투, 의상, 표정 등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하는 열정을 보였다. 특히 168cm, 48kg의 우월한 비주얼의 그는 미니스커트와 타이트한 의상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자극했다.
“촬영을 앞두고 진짜 수사관을 만났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 놀랬어요. 귀걸이, 하이힐에 가방을 메고 나왔더라고요. 언니가 ‘일반 회사원과 다르지 않다. 치마도 많이 입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수사관과 제가 만난 수사관 사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고민했어요.”
어릴 때부터 성악과 국악 등을 익힌 정혜성은 중학교 때 대형 연예기획사에 길거리 캐스팅되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포기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예체능에 관심이 많았어요. 바이올린과 플루트에서 대금, 꽹과리, 장구를 배웠죠. 무용과 성악도 공부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엔터테이너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부모님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죠. 다행히도 어머니는 호의적인 반응이었어요. 제가 예체능 하는 걸 좋아하셨거든요. 문제는 아버지였어요. 대형 기획사에서 캐스팅을 당했을 때도 불같이 화를 내셨죠. 어머니가 아버지를 밤낮으로 설득한 후에 연기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한 기회로 현빈 주연의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을 통해 연예계에 입문한 정혜성은 이후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에 진학했고, 소속사에도 들어갔다. 지난 2012년 SBS ‘아름다운 그대에게’ 출연을 시작으로 2013년 OCN ‘특수사건 전담반 TEN2’, tvN ‘감자별 2013QR3’, 2014년 SBS ‘기분 좋은 날’, SBS ‘엄마의 선택’, MBC ‘오만과 편견’까지 종횡무진하며 팔색조 매력을 펼쳐보였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며 입에 붙은 찰진 사투리 덕분에 ‘친구, 우리들의 전설’에 캐스팅 됐어요. 연기가 참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입시를 준비해 관련 학과로 진학했죠. 배워보니 더 흥미가 생겼어요.”
정혜성은 욕심이 많다. 욕심이 많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하는 노력파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기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렇다고 결코 연기자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2012년 소속사에 들어갔어요. 레슨을 받으면서 데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데 뜻대로 안 되서 그런지 원인모를 병에 걸렸어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죠. 6개월 정도 앓았어요. 병원 다니며 약도 먹고, 인터넷 불치병 카페에 들어가서 검색도 해보고 다양한 방법을 찾아봤어요. 근데 시간이 약이더라고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걸 깨달았죠. 18살 때 데뷔를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한 건 2013년부터라고 봐야죠.”
‘오만과 편견’으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게 된 정혜성에게 어떤 연기 인생을 꿈꾸고 있는지 물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달리 보면 가장 현명한 답을 내놨다.
“지난해에는 3주 정도 쉬었던 것 같아요. 올해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고 싶어요. 열심히 연기하면서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 보여 드릴게요. 비중이 크든 작든 작품을 하고 싶고, 많은 분들을 만나고 싶어요.”
정혜성은 ‘오만과 편견’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KBS2 새 월화드라마 ‘블러드’ 촬영에 합류하며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혜성이 맡은 최수은은 태민 암병원 혈액종양내과 펠로우로 전문의 유리타(구혜선)의 가장 친한 친구다. 좋은 학벌과 집안에 세련된 외모의 소유자로 수많은 남자들이 줄을 서서 애정 공세를 펼치지만 눈 깜짝 하지 않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신선한 마스크에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연기력까지 겸비한 정혜성이 ‘블러드’에서는 또 어떤 매력의 의사를 완성해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다음 작품에 곧바로 캐스팅 돼서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 큰 행복이고 행운이죠. 제가 어떤 연기를 보여주는지 지켜봐 주세요.”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고 했다. ‘오만과 편견’의 유광미는 준비된 정혜성에게 찾아온 선물 같은 기회였다. 그는 2015년 어떤 기회를 잡고 어떤 연기를 펼치게 될까. 정헤성은 경험한 것보다 경험하지 않은 것이 더 많기에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배우다.
(사진 = 스튜디오 아리 이한석)